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 역사적인 미국 연방대법원 사건들과 숨은 이야기
L. 레너크 캐스터.사이먼 정 지음 / 현암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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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레너드 캐스터, 사이먼 정 / 현암사 (2012)

2016-4-4

김영란의 <판결을 생각한다>를 읽다가 문득 이 책을 사다놓고 재밌게 좀 읽다가 버려놨다는 게 떠올라서 이 책부터 읽었다.

쉽게 읽히는 데다가, 정말 재밌기까지 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책이다. 저자는 두 명의 미국인(적어도 한 명은 이름으로 보아 한국계일 수도 있겠지만)인데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듯 역자가 없다. 아마도 영어로 씌였을 원서를 번역한 것 같지도 않다. 저작권 계약 표시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구글링에서도 L Leonard Kaster 라는 `저자`는 한국어로 된 이 책 외에는 나오는 것이 없다. 두 사람 다 한국인(또는 한국계)인가? 그래서 그냥 한국어로만 책을 썼나? 그렇다면 한국식 이름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영어 이름을? `굳이`라고 물을 필요까지는 없는? 이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까? 물론 이런 궁금증은 `책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튼, 재미있게 쉽게 후다닥 읽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내가 미국과 미국인에게 항상 부러워하는 점은 이런 거다. 기득권 꼰대들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 역사가 겨우 200년 남짓 되지만 `미합중국 헌법`이라는 게 무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이고, 구성원들 사이의 충돌은 법정에서 헌법을 토대로, 즉 미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세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기들이 원했고 또 원하는 국가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들에게는 자랑스런 선조도 없었지만 청산해야할 역사도 없었고, 다행히 현명한 대표자들을 뽑아 토론과 합의와 헌법이라는 첫 단추를 잘 끼웠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의 시공간에서 그럴 기회가 있었다. 무능의 극치였던 왕조는 망하고 왕조 대신 들어서서 더 심한 수탈을 일삼았던 일본은 패전국으로 꺼져버렸다. 거기다 임시정부도 있었다. 새로 헌법을 만들면 되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 평등(기회), 박애(상조)가 바탕이 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런 나라를 위한 헌법을 쓰고 선포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뭐 결과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속으로는) 알고 있는 바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에 밀리고 짓눌린 나머지. 아니, 어쩌면 우리 헌법도 미합중국의 헌법만큼 훌륭한 헌법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라는 선언이 단지 선언 이외의 어떤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결국은 그 법을 손에 들고도 제대로 행사하려고 들지 않는 나 포함 국민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법`하면 생각나는 금언 내지는 격언으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든가 소크라테스가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다`가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말도 금방 떠오른다. 요컨대 법을 `준법의 의무`라는 측면에서 특히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왔고, 그러면서도 일상 생활에서 별 도움은 되지 않는, 힘(권력, 금력, 폭력 등)보다 못한 것이 법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힘보다 법이 못한 국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이고, 그런 국가에서 `준법`을 강조하는 하는 것은 권력자가 시민을 겁주고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악용하는 것이다. 특히 반정부 경향의 시위에 대해 공권력이 `불법`이라는 딱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라. 한편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내지는 투쟁 환경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해소하지 못한, 혹은 해소하려 들지 않는 갈등은 점점 더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먼저 소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서 툭하면 터지는 `묻지 마` 총기 난사 사건이나, 늘어가는 증오 범죄(정말 이런 인간들은 고대로부터 답이 없다)를 보면, 이들도 법정에까지 오는 사건들에서나 `건국의 아버지들의 초심`을 생각할 뿐 실제로는 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도생各自圖生 중인 것 같다.

또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고 할 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들만 법으로 금지를 하여야 하지, 법의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답답하고 숨막히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 뿐 아니라 시내 도로에서 전좌석 안전띠 의무화` 같은 것. 고속도로에서는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크게 속력을 낼 수 없는 시내도로에서까지 전좌석 안전띠라니. 그런 걸 꼭 법으로 강제해야 하나?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사망할 확률이 높으니 매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정도의 캠페인으로 끝나면 안되나? 안전띠를 매지 않는 것은 사고의 순간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이다. 이걸 안 하면 벌금이라고 법을 강제하는 건 법의 오지랖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 관계가 있고 그 때문에 법이 있는 것이다. 관계를 망치는 법, 인간을 망치는 법은 법일 수 없고, 법을 만들거나 적용하거나 해석할 때도 사람과 관계를 살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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