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었으니 곡이라도 해야 하나. - P182

-안방할머니도 엄마가 있었겠죠? 지금쯤 엄마를 만났을까요?
-엄마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
-우리는 모두 엄마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할머니도 저도 제동생도. - P185

‘죽은 자식 불알 잡는 얘기 그만하고, 이제 그만 가서 자기 볼일들 보라고.‘ - P189

길현씨가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을 때, 괘종시계가 울렸다. 깊고 묵직한 자정이었다. 종소리가 멈추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고요가 다정하고 편안했다. 갓난애 옹알이 소리가 간간이 묻어오는봄밤이었다. - P197

줄이 길었다. 그녀 앞으로 여섯 명.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이후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계피와 생강을 어느 상점에서 살지, 어느 회원이 달리아 구근을 더 다양하게 갖추고 있을지. - P201

이내 상황 파악을 끝낸 듯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해한다고, 더러 그런 실수들을 한다고, 안됐지만 자신이 도와줄 것은 없다고. 너그럽지만 조소 섞인 미소였다.
"그럼 준비가 되면 다시 오시겠습니까?"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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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애덤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부탁했다. "삼촌, 저를 그레이스랜드에 데려가주면 안 돼요?" 나는 별생각이 그러겠노라 했다. "약속해요? 진짜로 약속하는 거예요?" 약속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모든 것이 틀어지기전까지. - P11

오랫동안 나는 이러한 위기가 그저 오해라는 말로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이전 세대 역시 자기 집중력이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1000년 전의 중세 수도사들이 집중이 잘 안 돼 괴롭다고불평한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나이 들면서 집중력이 약해질 수 있지만, 그건 이 세상이나 다음 세대의 문제지 자신의 노화문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 P19

이 주제를 숙고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집중력의 분열이 개인에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 P25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량의 엄청난 팽창과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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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어쩜 이렇게 무구한 존재일까, 미움이 스며들틈이 없네. 그러곤 절단면을 보며 환호했다. 단호박과 치즈가 어쩜 이렇게 꽉꽉 들어차 있는지! - P161

글탕종이라는 말의 비밀스러운 느낌은 오래도록 내곁에 남아 있다. 비록 단호박크림치즈 탕종식빵은 하루도 못 가 사라져버렸을지라도. 탕종, 탕종. 나는 단어 하나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 P163

꼭두‘의 마음으로 말이다. 꼭두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을 이르는 말로, 이승과저승, 꿈과 현실을 잇는 존재다. 망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꼭두는 언제나 선두에 있다. 꼭두새벽이 아주 이른 새벽을 부르는 말이듯이 꼭두는 언제나 맨앞에서 길을 내고 불가능한 문을 열며 나아간다. - P167

존재가 깃털 같아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럴 때 인간은 아주 작은 입김에도 날아갈 수 있다.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가버린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당신의 누름돌, 당신의 한 점이 되어줄 수는없을까.
한 점. 딱 한 점만 보고 걷는 것이다. 나도 이쪽에서 딱 한 점만 보며 걸을 것이다. 그쪽의 당신도 그렇게 와주었으면 한다. - P168

내가 쓴 문장들이 징검다리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문장을 딛고 현재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현재의문장을 딛고 미래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말과 사람이 함께, 느리더라도 함께.
그러니 하던 걸 하자. 이런 노래는 이런 노래고,
탁성은 탁성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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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짜 욕망에 휘둘렀던 것일까? - P166

또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때로는 살다 보면 내가주체적으로 선택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저쪽에서 나를 선택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 P172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못 하고 있는 것을 남이 하고 있으면‘ 그것을 말리고 싶어 한다. - P178

나는 그것이 가장 확실한 영역은 오로지 내재능을 활용하고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고생각한다. - P62

단순하게 보면 리스본 여행에세이라 할 수 있는 『다정한 구원』은 리스본에 가기 전에 초고를 다 써놓고 갔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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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구득 가겠습니다." 드라마 <슬기로운의사생활>을 보던 중 흉부외과 레지던트 도재학 선생의 말에 붙들렸다. 구득. 처음 듣는 단어였다. 구득은 말 그대로 구하여 얻는다는 뜻으로 도재학 선생의 그 말은, 곧 있을 장기이식 수술을 위해 뇌사자로부터 장기를 받아 오는 역할을 자신이 도맡겠다는의미였다. - P127

그곳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있다. 당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고 생각될 때에도 당신과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 끝끝내 반짝이는 세계, 당신의 빈야드가. - P126

더 오랫동안, 더 멀리에서 담는다. 두눈물은 같은 눈물이지만 완전히 다른 눈물이다.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는 자의 눈물은 또 다른 의미로그토록 깊다. - P131

그 시간을 관통해온 앨리의 마음에 불투명한 욕망보다 사랑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누군가를 통해, 무언가를 딛고,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떤 시간 속에 자그마한 불씨가 있었고, 그 불씨가 불길로 번졌고,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길은 순리에 따라 잦아들었으며, 밤은 새벽으로 흘러 남은재 위엔 새벽이슬이 맺혔을 뿐. - P141

어제는 문득 이런 것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시든꽃을 어떻게 버리는 걸까.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면 된다는 현실적인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고,
꽃을 버릴 때의 기분과 손에 남은 감촉을 어떻게들감당하며 사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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