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 2학년으로 구성된 우리는 학교를 마치고 성전에모여서 세 달 내내 <기쁘다 재림 예수 나의 왕 필성주>를 연습했다. 우리가 뽑힌 기준이 초경을 하기 전의 여자아이들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 P248

세주는 낯을 가리는지 나를 보지도 않고 더듬더듬 말했다.
"그냥, 조금. 나는 이런 게 처음이거든. 그래서 너무 어렵고, 따라가기 힘든 것 같아." - P249

"우리가 찬양을 올리는 순간만큼은 총재님께서 우리만 보시잖아. 예수님의 옷에 잠시 손을 댔던 사람도 죽을병을 고쳤는데 총재님의 축복을 듬뿍 받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지 않아?" - P250

"너는 총재님이...... 재림하신 예수님...... 이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었어? 그게 바로 믿어졌어? 그리고 총재님..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영생불멸하신다는 것도 믿을 수 있어?
그게 말이 돼?" - P251

역전교는 총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을 강조했다.
‘역전‘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의 신분이 보잘것없더라도 총재가 주인이 될 새천국에서는 언제든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는의미였다. - P253

"이게 진리가 아니면 안 돼. 나랑 엄마는 이걸 지키기 위해서 모든 걸 다 걸었어."
세주는 자주 무언가에 취한 듯 중얼거렸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세주의 손을 잡아주었다. - P255

그날 그는 화려한 금발 가발을 쓰고 있었는데 무거운 왕관까지 머리에 얹은 탓인지 가발이 밀려 반 정도민머리가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감격하며 눈물을 찔끔했던 것이다. - P256

나는 5분위 약속 세대라는 이유로 역전교가 세계의 주인이되었을 때를 대비해 일찍부터 통치자 교육을 받았다. 약속의날이 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총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고 그때 예비 사도들은 나라를 분배받아 치리하게 될 거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치리라는 단어를 풀면임금이 마을을 질서에 맞게 다스린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훌륭한 왕이자 좋은 백성이 되고 싶었다. 내 안의 넘쳐흐르는 사랑과 자비를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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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지 얼마 안 됐어?"
"아니. 곧 이년 돼. 집이 좀 휑하지." - P211

최근 들어 연지는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놓고 너에게 필요할것 같아서 샀다는 식으로 수영의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물건들임에도 수영은 고맙게 받았다. 그 소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걸까. 그게 어떤 의미든 수영이 참견할 권리는없었다. 쌓아둔 물건 중에 한두 개를 몰래 가방 안에 넣어가도연지는 몰랐다. 수영은 죄책감 없이 참기름과 휴지와 클렌징폼을 챙겼다. - P217

한참 머뭇거리다가 결국 수영은 연지가 하라는 대로 설명이라는 것을 했다. 거슬러올라가니 그동안 잊고 있던 효소가 나왔다.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린 곡물 효소. 그리고 재광초총동문회장. 카페에서 나눔 거지로 통하던 자신.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 계기. 그리고 연지를 만난 후 달라진 생활. 시간이가면 갈수록 고백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 - P227

수영은 문득, 자신이 훼손한 것이 정확히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 P232

매번 미세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내게 알려주는 듯했다. 이미 망가진 지 오래이니 애쓸 필요 없다고 - P241

나는 세주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의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고내가 먹은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체험학습 때 내 도시락을 싸고 우리집 변기를 뚫고 내 교복을 다리는 모습을 당연하다 여기며 자랐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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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소파 쿠션 틈새에 들어간 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고, 괜한 생각하지 말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라는 말로 딸을달랬다. 그날 밤 영실은 결심했다. 돈을 한곳에 모아야겠다고. - P166

할머니가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를 풍기며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 자체가 현진의 마음에 어느정도 위안을 주었다. 본받을 만한 부모는 없어도 우아하고 강인한 할머니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떠올리면 세상을 강단 있게 살아갈 용기가 조금 생기곤 했다. - P168

현진은 기습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거기까지는 미처상상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동시에 왜 그런 부분까지 함부로누설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이 전신을 강타했다. 요양보호사에겐 아주 사소하고 별스럽지 않은 사실일 수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집에서 매일 발생하는 쓰레기의 목록이 오래도록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 P173

어머니에게 모성이라는 게 있을까. 그것은 자신이 짐작하는것보다 더 얄팍한 감정임이 분명하다고 윤미는 생각했다. - P180

그 말에 감동했던 자신이 이제는 바보 같았다. 돈을 건네받은 후에 어머니가 이전보다 더 편하게 자신을 부린 것 같다는느낌이 드는 건 과한 피해의식이겠지. 윤미는 어머니의 의도를 곡해하지 않으려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야만 했다. - P181

윤미는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보았다. 그러면서도 충동을 못 이기고 여러 사고를 저질러 영실을 당혹스럽게 했다. 일을 쳐놓고 쭈뼛쭈뼛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윤미를볼 때면, 한없이 낙담이 되고 망연해졌다. 영실은 윤미를 위해끝없이 인내하고 정신을 다잡았다. 홀씨처럼 가볍고 희끄무레한 영혼이 손이 닿지 않는 아득한 곳으로 건너갈까봐 돌을 눌러두듯 잠든 윤미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올려둔 적도 있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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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소파 쿠션 틈새에 들어간 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고, 괜한 생각 하지 말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라는 말로 딸을달랬다. 그날 밤 영실은 결심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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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곁을 지킬 사람이 필요한데, 잠시와서 지낼 수 있겠느냐고 엄마가 물었을 때 연수는 선선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연수가 혹시나 말을 무를까 걱정됐는지마는 그리 길진 않을 거라고, 도무지 차도가 없으면 집으로 모실 거라고 재차 연수를 안심시켰다. - P126

골목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의 묘한 유대감을 알아챈 연수는 불안을 느꼈다. 어린아이가 정황을 읽고 그런 추측을 했다는 게 말이 되는지, 시간이 지나 떠오른 생각을 그때 했던것으로 오해하는 게 아닌지 잠깐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으나 연수는 분명 어렸을 때 그 분위기를 읽었다. 골목집 할아버지를 향한 할머니의 정성이 불온하게 느껴졌고 어떤 방식으로든 훼방을 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 P133

아무것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얇은 커튼으로 가망 없음과 무기력과 불길함이 드나들었다. 병원에서는 옆 환자들과도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연수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무한정 하루하루가 연장되는 것 같았다. - P135

노인들은 전염병만 없었다면 자신을 찾아왔을, 매일 찾아오고도 남았을 소중한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면회 제한이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주었다. - P137

깨진 틀니만이 남아 윤옥의 마음을 곱씹었다. 어둡고 좁은연수의 가방 속에서 정처 없이 흔들리며, 할 수 있는 거라곤오랜 세월 흡수한 윤옥의 감정을 되짚어보는 것뿐이었다. - P153

윤옥이 유일하게 아쉬워했던 아이가 윤옥의 흔적을 품고 어디론가 허정허정 걷고 있었다. 가방 속 틀니가 딱딱 소리를 내며 텅 빈 입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애착을 끊어내고 있었다. - P154

휴대폰이 소파 쿠션 틈새에 들어간 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고, 괜한 생각 하지 말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라는 말로 딸을달랬다. 그날 밤 영실은 결심했다. 돈을 한곳에 모아야겠다고.
언제 어떻게 이런 식으로 눈을 감고 다시는 뜰 수 없게 될지알 수 없었으므로. 그 돈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자 최선의 선택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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