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곁을 지킬 사람이 필요한데, 잠시와서 지낼 수 있겠느냐고 엄마가 물었을 때 연수는 선선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연수가 혹시나 말을 무를까 걱정됐는지마는 그리 길진 않을 거라고, 도무지 차도가 없으면 집으로 모실 거라고 재차 연수를 안심시켰다. - P126
골목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의 묘한 유대감을 알아챈 연수는 불안을 느꼈다. 어린아이가 정황을 읽고 그런 추측을 했다는 게 말이 되는지, 시간이 지나 떠오른 생각을 그때 했던것으로 오해하는 게 아닌지 잠깐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으나 연수는 분명 어렸을 때 그 분위기를 읽었다. 골목집 할아버지를 향한 할머니의 정성이 불온하게 느껴졌고 어떤 방식으로든 훼방을 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 P133
아무것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얇은 커튼으로 가망 없음과 무기력과 불길함이 드나들었다. 병원에서는 옆 환자들과도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연수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무한정 하루하루가 연장되는 것 같았다. - P135
노인들은 전염병만 없었다면 자신을 찾아왔을, 매일 찾아오고도 남았을 소중한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면회 제한이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주었다. - P137
깨진 틀니만이 남아 윤옥의 마음을 곱씹었다. 어둡고 좁은연수의 가방 속에서 정처 없이 흔들리며, 할 수 있는 거라곤오랜 세월 흡수한 윤옥의 감정을 되짚어보는 것뿐이었다. - P153
윤옥이 유일하게 아쉬워했던 아이가 윤옥의 흔적을 품고 어디론가 허정허정 걷고 있었다. 가방 속 틀니가 딱딱 소리를 내며 텅 빈 입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애착을 끊어내고 있었다. - P154
휴대폰이 소파 쿠션 틈새에 들어간 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고, 괜한 생각 하지 말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라는 말로 딸을달랬다. 그날 밤 영실은 결심했다. 돈을 한곳에 모아야겠다고. 언제 어떻게 이런 식으로 눈을 감고 다시는 뜰 수 없게 될지알 수 없었으므로. 그 돈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자 최선의 선택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 P1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