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사이 말라버린 꽃잎 떨어질 때, 침대 밑 구겨진폴라로이드 집어들 때, 미처 떠나지 못한 것, 당신 여기있습니까? 더운 바람이 종아리 곁을 맴돈다 겨울 카페트들어내자 풍장을 끝내지 못한 계절의 잔해 - P17
E가가게를 옮기며 마시다 보니 어느새 막차 시간에 가까워고 있었다. 몇십 년 동안 진보초를 드나들었지만, 언제나 해지기 전에 돌아가는 여행자여서 밤 풍경은 처음이었다. 셔터가 내려진 고요한 고서점가를 걸어가는데, 그게 뭐라고그렇게 행복하던지. 우리는 2주 뒤에 있을 북토크 뒤풀이때 제대로 마시기로 약속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 P71
불현듯 이모에게 내가 느낀 상실감을 말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내게 ‘시간이 흐르면‘으로 시작되는 말을 해준 사람들이많았다. 그런 말은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어이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그 말에 의지했지만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시간은 그냥 흘러갈 뿐이고 마음은 여전했다. 뜨개바늘을 든채 머뭇거리자 나주 이모가 하다보면 나아진다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 P134
언젠가 사람 숨소리에 색과 음을 입혀 만든 게 노래라고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가 숨을 보다 진지하고 아름답게 쉬는 방식이 노래 같다고. 그러니 누군가의 노래를 듣는 건그 사람의 숨소리를 공들여 듣는 일인지 모른다. 나를 에워싼 사람들의 숨소리를 열심히 듣다 적절한 순간에 자기 숨소리를 얹는 일이 합창인 것처럼 말이다. - P169
실제로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는 문학의 언어에자주 기댔다. 그리고 그게 도움이 됐다. 아주 천천히 이뤄지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서 정작 도움받은 사람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도움. 그리고 배움. 행정 언어로도 법률 언어로도 해결 못 하는, 그렇지만 우리 삶에 엄연히 존재하는문제들을 문학은 늘 ‘쉬운 답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건널 수 있게 해줬다. 앞으로도 곤경에 처할 때마다 문학은결코 생색내지 않는 형태로 우릴 도울 것이다.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