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머리를 뒤로 묶은 오동통한 몸매의 공인중개사는 첫느낌이 매우 부드러웠다. 남편은 이 공인중개사를 택하길다행이라고 했다. 집을 구하러 왔는지 공인중개사를 만나러왔는지 헷갈리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계약서에 도장을찍고 싶어 하는 남편과 달리 계속 망설이는 내가 신경 쓰였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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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 P50

언닌 그대로다.
정윤의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너도 그래.
그렇게 말하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 P50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당신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으니까. 포기할 수가 없던부분이 있었으니까. 얼마나에서 귀한 - P54

우리는 시류를 읽어야 해.
그렇게 말한 건 용욱이었다. 용욱은 예비역 복학생으로 사회학과 2학년이었다. 그는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개인의 윤리 문제를 다룰 지면은 없다고 했다. 타락한 개인의 윤리는 개인의 문제일 뿐, 그것을 정치와 사회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지면에서 굳이다룰 필요는 없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 P57

희영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편집실은 고요했다. 낭독이 끝났는데도 편집실을 채운 팽팽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고 지금의 당신은각한다. 희영에게는 타고난 관찰력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끌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지력이 있었다. - P59

이번 주제 같이 준비해볼래?
희영은 두번째 교지에서 아내 폭력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법이 없어.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어. - P64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듣고 희영이 입을 열었다.
넌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네.
희영은 창가에 서서 당신을 바라봤다. - P68

언닌 정말 그렇게 믿어요?
희영이 입을 열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그런 일이 없어질 거라고, 통일 조국이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여자들이 맞고, 강간당하고,
죽임당하는 일이 없어질 거라고 믿어요, 언니? - P72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P75

‘언니,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요.‘
그러나 정윤은 메일을 읽고, 당신에게 답하지 않았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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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예쁘지 않았다. 그녀는 예쁘다고 하기는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이와 유사한 아첨 중에서 자신이 들으면 특히 기분좋을 만한 게 있나 생각해보았다. 둘이 함께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아이 같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참 아는게 많다든가 태도가 느긋하다고 지절거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 P176

"헐, 아니죠."
그는 미소를 지었다. 전화 대화 중에 예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마도요, 라고 말했는데 말하는품으로 보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추측했었다. 그들은 환상을 즐겼고, 아닌 것을 그런 척했다. 뭐, 물론 다들 그러고 산다. - P178

이제 일흔넷이 된 조이는 키가 작고 날씬한 여자로 허리는 아주 조금밖에 굽지 않았다. 한때 칠흑같았던 곧은 머리칼은 이제 거의 백발이 되었다.
스스로 편지함 입구 같다고 생각하는 긴 일자 입매로 인해, 젊었을 때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매력적이라고 묘사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제멋대로‘라는말과 ‘예측 불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며, 두 단어모두 그녀의 성미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제는 제멋대로라거나 예측 불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P322

예전에는 옛 친구 아무개를 만나야 한다고 했지만이제 그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런 인물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설을 해버리지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로이드 사람‘을 만나야한다고 하거나, 연금 보험을 담당하는 핸슨과 필립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모두 하나같이 너무 자주써먹어서 이제 남은 것은 쇼핑이라는 허술한 핑계뿐이다. 그가 은퇴하기 전에는 아무런 언급도 할필요가 없었다. - P335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여자 편지, 내가 열어봐. 전화 통화할 때도 내가 들어.’ 그레이스가 죽었다고, 자기친구가 이제 홀로되었다고 남편이 말할 수 있으면좋겠다. - P340

그레이스가 죽었다. 달라진 것은 그뿐이다. 조이는 속으로 말한다, 왜 용서를 해야 하나? "왜 그래야 하지?" 그녀가 중얼거린다. "왜 그래야 해?" 하지만 <맨발로 공원>이 시작되기 전,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늙은이의 주책이야, 그녀는 속으로그렇게 말하고, 눈물 따위는 사라지라고 명한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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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가 공감력을 강화한다고 믿을 근거가 있다면, 오늘날 소셜미디어처럼 소설을 크게 대체하고 있는 형식이 우리에게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려져 있을까? 레이먼드는 잘난 체하며 소셜미디어를 비웃고 도덕적 공황 상태(어떤 유해한 요소가 사회의 가치와 안녕을 위협한다는 믿음 때문에 사회 전반이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옮긴이)에 빠지기 쉽지만, 자신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어리석게 여긴다고 말했다. - P137

그러나 내가 혼자 너무 흥분한 게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어쨌거나 이건 내 예감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심리학 교수인 레이먼드마Raymond Mar를 인터뷰하러 요크 대학을 찾았다. 레이먼드는 독서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많이 연구한 사회과학자중 한 명으로, 그의 연구는 이 문제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을 마련했다. - P133

아네의 연구는 사람들이 화면으로 글을 읽을 때
"대충 훑어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정보를 재빨리 훑어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려 한다.
(・・・) 읽기는 더 이상 다른 세상으로의 즐거운 침잠이 아니라,
붐비는 슈퍼마켓을 마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잡아채서빠져나가는 행위에 가까워진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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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다시 현장에 들어가니, 캡틴이라 불리는 관리자가 "리빈 업무를 하고 계신데, 포장 업무를 받은 분이 최종 합격을 해놓고 출근을안 해서 업무 변경을 해야 할 것 같다"며 대신 포장 업무로 가셔야 되는데 괜찮냐고 물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종적으로 포장 업무를 배정받았다. - P155

바삐 일하는 날들이 쌓여 내 몸에도 흔적이 남았다. - P157

원장에게 얘기했더니 "사무실 일은 생각 안 하나 봐요, - P165

아무리 새로 지은 시설이라고 해도 요양원 특유의 냄새는 있었다.
24시간 근무를 마치면 아침에 퇴근해서 씻고 쉬었다가 오후에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의 냄새를 맡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앞사람에게는 "나한테서 냄새 안 나?"라며 물어보곤 했다.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해주어도 내 코끝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곤 했다. 석 달정도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츰 요양보호사 업무에 익숙해져갔다. - P169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어느 일터가 안 그렇겠느냐만은 내가 일하는 곳은 덥다거나 춥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을 정도다. 건물단열이 잘 안 된다고 한다. - P173

비정규직에게도 호봉제와 유사한 등급제가 있지만, 사측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으로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1등급 근로자‘가 된다고하더라도 ‘4등급 근로자‘와 비교해 하루에 1920원가량을 더 받을 뿐이다. 게다가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1등급 근로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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