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 P50
언닌 그대로다. 정윤의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너도 그래. 그렇게 말하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 P50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당신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으니까. 포기할 수가 없던부분이 있었으니까. 얼마나에서 귀한 - P54
우리는 시류를 읽어야 해. 그렇게 말한 건 용욱이었다. 용욱은 예비역 복학생으로 사회학과 2학년이었다. 그는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개인의 윤리 문제를 다룰 지면은 없다고 했다. 타락한 개인의 윤리는 개인의 문제일 뿐, 그것을 정치와 사회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지면에서 굳이다룰 필요는 없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 P57
희영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편집실은 고요했다. 낭독이 끝났는데도 편집실을 채운 팽팽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고 지금의 당신은각한다. 희영에게는 타고난 관찰력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끌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지력이 있었다. - P59
이번 주제 같이 준비해볼래? 희영은 두번째 교지에서 아내 폭력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법이 없어.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어. - P64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듣고 희영이 입을 열었다. 넌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네. 희영은 창가에 서서 당신을 바라봤다. - P68
언닌 정말 그렇게 믿어요? 희영이 입을 열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그런 일이 없어질 거라고, 통일 조국이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여자들이 맞고, 강간당하고, 죽임당하는 일이 없어질 거라고 믿어요, 언니? - P72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P75
‘언니,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요.‘ 그러나 정윤은 메일을 읽고, 당신에게 답하지 않았다. - P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