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는 지갑에 있던 다섯장의 지폐 중에 구김이 가장적은 것을 골라 아이에게 건넸다. - P234
병원에 허리 수술하러 가셨대. 수술하러요? 그럼 언제 오는데요? 못 오실 수도 있다고 그러던데? 누가요? 그 집 며느리가. - P233
아, 그걸 가져온 게 너구나. 그럼 나한테 줘. 할머니 오시면 내가 전해줄게, 아님 내가 먹어도 되고, - P233
어르신이 이걸 샀던 거구나. 얼마니? 열개 만원이요. 모르는 사람들은 비싸다고 할 때도 있는데요. 이건 그냥 계란하곤 차원이 다른 거예요. - P233
청란이 한알에 천원. 먹어보면 진짜 하나도 안 비쌈. - P235
평범하다는 것은 평면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오히려우리의 일상은 백만가지의 평범함이라고 할까, 역설적인듯하지만 저마다의 사연과 표정을 지니고 있어 어느 하나같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함들이 어울리면서 이루어진다. 작가의 일이란 젠더, 노인, 일자리, 주거 같은 키워드에 의해 추상적으로 뭉개진 대상에 생생한 얼굴과 삶의 사연들을 부여하는 것이며, 그래서 저 평범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풍부한 양태로 이루어진 것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 P238
「달걀의 온기」에 등장하는 위의 구절은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누군가를 쓰다듬고 보듬는지를 보여준다. 이름조차 몰랐던 한 아이를 돕기 위해 얼떨결에 꺼낸 칭찬은 발화자인 선희의 마음에 쌓였던 그늘을 밀어내고 환하게 만든다. 상대를 향한 말이 자기를 되비추는 말이 되어 다시돌아온다는 것, 촉각의 언어가 갖는 이러한 방향성에서어떤 희망을 읽어낼 수는 없을까. - P248
그게 다가 아니었다. 러닝화는 쿠션이 있어서 발바닥에 힘주는 게 어려워요. 바닥이 납작한 신발을 신으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 P43
이런 일련의 일을 통해 그녀는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데에는 두가지 조건이 있음을 배웠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친절과 선의는 있는 그대로 주고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유효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염되고 변질되고 공중분해 되면서 자신 혹은 상대를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누구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취약하고 위험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었다. - P45
그는 의외라는 듯 그렇게 물으며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흔다섯, 여섯. 느슨하게어림잡아도 쉰은 절대 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그의 얼굴은 탄탄한 몸에 비해 약간은 밋밋하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그건 어리숙함이나 의기소침함과는 달랐다. 그는 피로해 보였고, 쓸쓸해 보였고, 얼마간 외로워 보이기까지했다. 아니,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은 그것이 자신의 감정임을, 그러니까 그런 감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그녀가 깨달은 건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 P49
그럼에도 그녀는 여자의 과거를, 미래를, 인생을 현재의 형편 안에 가둬두지않았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여자에게도 지금보다 더 환한 시간들이 있었고, 또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건그녀가 타인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방식 중 하나였다. - P55
아니요. 오늘은 엽서 말고 할 이야기가 있어요. - P63
혹시, 혹시라도 다른 어떤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죠? 아, 오해하진 마세요. 제 말은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으셨다면, 그런 거라면. 그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가능성을 베어내듯 말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없죠. - P65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사소한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알아야 해요.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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