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사는 벽장 - P226

조금만 참아. 우리가 갈게.
당연히 와야지.. • 세라는 괜찮아? - P219

전화를 끊은 후에도 재원의 귓가에는 상미의 웃음소리가 남아있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미는 즐거워 보였다. 아니면 모르는사이에 술을 더 많이 마신 걸지도. 재원은 한참을 망설인 끝에 코요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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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어그간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제야그걸 깨닫게 된 자신에, 더는 그 같은 일을 대신해줄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새삼스레 충격을 받았다. - P74

네, 그냥 뭐 괜찮게 살았다는 그런 건 언제쯤 알 수 있나 해서요. - P76

그걸 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 P79

아이, 비가 와서 그런가 다리가 욱신거려 죽겠네요. 오늘도 짐이 있는데 잠깐 태워줄 수 있어요? 날씨가 이래서부탁 좀 할게요. - P91

이 차까지 말썽이구나. 이제 이 차까지.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순간 차가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가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가 손을 떼고 차에서 한 걸음 물러났을 때, - P98

그 사람 이름은 박훈식입니다. 박훈식. 그게 그 사람이름입니다. - P103

출근 전, 어머니에게 차분하게 당부를 건네며 그녀는어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곤 했다. 뭐랄까. 어머니의얼굴엔 전에 없던 뭔가가 있었다. 수상한 것, 불길한 것,
조마조마한 것. 발목이 골절되면서 시작된 구체적인 몸의통증이 어머니 내면 깊은 곳의 뭔가를 깨우고 불러낸 것같았다. - P109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그건 애실이 평생 노력했으나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현서로 인해 잠시 잊었던 일상이었다. - P134

그 메시지에 오타가 났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도심해라, 석정된다. 그날, 고심 끝에 그가 보낸 건 뜻을 알 수없는 이상한 단어의 조합이었다. - P200

계란도 좀 줄까?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고씨는 돌아서려는선희를 불러 세우고 계란 다섯개를 꺼내왔다. 약간 묵직한 느낌이어서 봤더니 멍이 든 것처럼 푸르스름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 P205

묘하게 친숙한, 그래서 단번에 이해할 것 같은 그 뭔가가 무엇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그것이 점점 또렷해지는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자신의 태생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각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 자신이 내내 움켜쥐고 있다가 이곳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뭔가와 닮아 있다는 것을 안 건 시간이 더흐른 뒤였다. - P211

왜 못 잡아요. 비둘기도 잡고 쥐도 잡고 다 잡아요. 우리 닭들은 저밖에 없어요. 제가 보살펴줘야 해요.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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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는 남편 영기에게 가져다줄 전복죽을 포장해 오는길에 그애를 봤다. - P8

집에? 그럼 집에 있지 왜 나와서 기다리니? - P9

무사히? 어떻게? 누군가 아이를 데리러 왔는지, 그 사람이 가족이 맞는지, 아이가 집에 들어가는 걸 직접 봤는지묻진 못했다. 그러면 다시금 유별나다거나 유난하다는 반응이 되돌아올 테니까. - P11

안 추운데요. 우리는! - P17

사정은 무슨. 그래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거야. 무슨 일이 있나 한번 살펴주는 게 뭐가 어려워서. 일이분도 안 걸리는 일을. - P23

-관심도 지나치면 병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세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 P29

정해야, 다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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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선과 냄새.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수컷의 비린내. 게다가 보풀이 인 플리스 집업에 통이 넓은 반바지, 낡은 검정 러닝화 외출을 위해 마지못해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걸친 것들. 아마 담배를피우러 나가거나 마트에 가려는 것이겠지. 앞집에 사는 사람치고자주 마주치는 편은 아니었으나 볼 때마다 그는 비슷한 차림이었다. 양치는 했을까? 재원은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집어들고도어록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 P185

아내나 딸이 수다스러웠던 것도 아닌데, 둘이 떠난 공간에마치 적막이라는 낯선 세입자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 P185

짧은 머리에 수염 자국이 거뭇한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여성용팬티스타킹에 힐만 신은 모습이라니. 역시 기괴한가, 생각했으나그래서 재원은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 P188

너는? 나도 너 레즈 될까봐 걱정인데? 재원은 웃으며 상미의가슴을 쓰다듬으려 했다. 상미는 재원의 손을 잡으며 진지하게물었다. 너, 네가 남자인 거, 그걸 잊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나랑결혼해. 재원은 아무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잊을 수있는 게 아니야. 상미의 손이 느슨해졌고 재원은 상미에게 키스를 했다. 상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재원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우리끼리만이야. - P191

자신의 정체성을 과하게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않는자신감이 재원은 부러웠다. - P195

오프 잡을까요? - P203

아빠. 세라가 재원의 말을 끊었다. 응?
그만하면 안 돼? - P215

그냥, 사람이면 돼요. 저는. - P231

코요의 살이 닿자 재원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피부가 찌릿했다. 재원은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매혹인가 혐오인가. 둘 다인가.
둘은 하나인가. 재원은 은근슬쩍 코요의 팔을 뺐다. - P215

언니 아니라고, 씨발. - P217

작가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위치인 동시에 시대가 부여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경계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의 내면에 감추어진 각자의 소수성을 찾아내고 관찰하는 것이 나의 임무. 그들이 오십대 남성이건, 십대 소녀이건, 나는 꾸준히 그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성실한 작가가 되고 싶다. 힘을 주세요. 내일은 좀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오늘도 잠들기 전에기도해본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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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잃음 사이 - P169

. 우리는 수진을따라 이름 바깥의, 우리가 열어보지 않아 비밀에 부쳐진 면면에머무르게 된다. 머무른다는 것은 멈춰 있다는 것과 분명 다르다.
끝끝내 어딘가에 이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P179

여름에는 장마랄 것도 없이 지나갔는데 10월이 되자 하루건너비가 내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재원은 우산도 쓰지 않고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여자를 눈으로 좇다가 신호가 바뀌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을 때에야 재원은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전방을 주시하고 도로를 달리면서도 재원의 시야에는 좀전에 보았던 여자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 P183

실내는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이 적막이 낯설던 때가 있었다. - P185

그것이 위안이 되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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