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든 가졌든, 슬픈 건 똑같다. 언제부턴가 꿈은 그숲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곳엔 자주 비가 내린다. - P98

코듀로이 corduroy: 골이 지게 짠 피륙. 어원은 프랑스어의 코르드 뒤 루아corde du roi로 ‘임금의 밭이랑‘이란 뜻. - P97

얼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주로는 얼굴을 벗고 싶다는 생각. 얼굴은 목이라는 벼랑 끝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어항같다는 생각. - P99

헬렌, 강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내 손에 물감이 묻어 있는 이유를설명해주십시오. - P103

빨고 널고 마르고 개키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도 나는 빨랫감이 마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아낀다. 다른 과정이야 얼마든 조율할 수 있지만 옷이 마르는 건 내 소관 밖의 일이라 반드시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 - P107

나중에, 두 사람 모두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하모니카를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밤이 추워졌다. 그의 발이 산허리를 구르며 박자를 맞추는 동안, 달빛을 받은 손은 노랫가락이 마치 악기 위에 기적같이 내려앉은 새라도 되는 것처럼부드럽게 출렁였다. 모든 음악은 살아남는 일에 관한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루시는 한 번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마비가 된 엉덩이 쪽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 P115

그럼에도 어떤 연주자는 방사능 피폭 지역에 일부러 찾아가 피아노 연주를 한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파도에 휩쓸리기 직전까지 악기를 포기하지 않는 연주자들도 있다. 우리의 소설 속 하모니카 연주자 역시 언덕에서 굴러떨어진 소곁에서 밤새도록 하모니카를 분다. 이 사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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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다니. 진화는 물론 기진이 지금 일을 쉬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기진이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과 병균,
연쇄 살인마, 교통사고를 무서워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뻔한 사람은 진화였다. - P118

흰 민소매원피스를 입은 진화가 차에 올라탔다. - P119

툭툭 내뱉는 진화의 말투와 직선적 행동이 남자와 기진에게 섬뜩하게 다가오는 건, 침엽수처럼 날카롭고 푸르게 뻗은 진화의속이 그들의 부끄러움을 찌르기 때문이다. - P145

언니에게w
언니, 지금쯤 나를 찾아 난리가 났을 우리 언니. - P182

"딸아이가 이제 열여섯이야."
"후지타는 스무 살로 알던데?"
"그거는 죽은 애 나이고, 호적이지 언니 거야."
"왜 안 바꿨는데?"
"귀찮아서 그랬지. 사는 게 바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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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꾸만 다가가게 되는 고통을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름의 빛깔을고요의 욕망을.*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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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소설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아마 레이먼드 카버와 고든 리시의 사례일 것이다. 그들 사이의 파트너십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너무 알려져서 스캔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 P458

모름지기 원고 청탁서의 주제 항목은 이렇게 제시해주는 게 좋다. "문학은 나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일 것인가?" 그냥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받았다면 엄두가 안 나 원고 청탁을 거절했을 것같다. 아니면 선문답 흉내를 내며 대충 얼버무렸을지도 모른다. 문학은 2013년 여름 밤섬의 개똥지빠귀배설물이다! 왜냐하면 개똥지빠귀는 겨울 철새니까!
그리고 밤섬 엄청 멋져요! 이렇게. - P462

아주 어릴 때 문학은 나에게 ‘자유‘였다. 동화와 소설은 부모나 학교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는, 그러면서도 안전한 모험이었다.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문학이그런 역할을 하지 않나, 소위 ‘영 어덜트 소설‘이 대체로 판타지나 SF의 탈을 둘러쓴 현실 탈출물인 이유도그래서이지 않나 생각한다. - P462

글자들의 세계는 의미의 세계였고, 그 안에 들어가있으면 정돈된 방에서 쉬는 것처럼 편안했다. - P464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문학이란무엇인가‘만큼 어렵다. 다만 나는 좋은 문학이란고통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희미한 추정을 한다. - P468

그러나 이 시스템은 다문화 가정 문제는 놓쳐버렸다. 농촌 지역의 초등학교를 출입처로 둔 기자는 없다. 또한 기자들은 대부분 도시 거주자이며, 대체로사회·경제적 배경상 대학 동창회나 친척 모임에서 동남아 출신 여성과 결혼한 지인을 만날 가능성도 낮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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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견디는 몸은 어딘가 비어 있다. 물고기의 부레.
새의 기낭같이. 그렇다면 시간의 유속을 버티는 마음에도빈 구석이 있을까. 오래전 나는 내 안의 빈 곳을 매만지며 언젠가는 이곳이 들어차길 바랐다. 텅 빈 수레처럼 어딘가에닿으면 소란한 여기가 이제 그만 고요해지기를 내벽에 손을 댄 채로 질감을 전부 외울 때까지 맴돌았다. 참다못해 비명이라도 지르면 그 소리가 며칠이고 안에서 울리곤 했다.

유대와 기억, 시간, 죽음이 별개였으면 좋겠다. - P22

기억이 나를 데려다 놓는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전부 떠난 자리에.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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