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청자(靑瓷)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 P51
아무려나 50년 나와 함께 하여, 헐어진 책등같이 된이름, 금박(金箔)으로 빛낸 적도 없었다. 그런대로 아껴 과히 더럽히지나 않았으면 한다. - P81
애도를 멎게 하는자장가가 되고 싶다.2013년 11월김소연
벚나무는 곧 버찌를 떨어뜨리겠지벌써 나는 침이 고이네 - P9
모두가 천만다행으로 불행해질 때까지 잘 살아보자던 맹세가 흙마당에서 만개해요, - P11
내가 하는 말을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나 혼자 듣습니다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눈동자도 없이눈꺼풀도 없이 - P9
버찌는 잠시 돌옆에 머물겠지개미는 버찌를 하겠지혓바닥도 없이사랑도 없이 - P10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 P12
나 잠깐만 죽을게삼각형처럼 - P14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 P15
왜 하필 벌레는여기를 갉아 먹었을까요 - P46
산타클로스의 표정을 짓는다 - P47
이미 이해한 세계는 떠나야 한다 마치 고향처럼이미 이해한 사람을 떠나듯이 마치 부모처럼 - P50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 P71
우리의 눈은 생활의 관심에 따라 넓게도 보고 좁게도 본다. 서울 거리는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번잡한 곳이지만, 그 번잡함은 지상 여섯 자 내외에서의 일이고, 웬만한 지붕 위에만 올라도 우리는 거리 위에 서려 있는 고요에 놀라게 된다. 우리의 관점을 좀더 높이 우주 공간의 한 점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사람의그것에 옮겨놓으면, 지구의 번잡한 삶은 완전히 적막속으로 사라지고 지구 그것도 하나의 죽은 별처럼 보일 것이다. - P11
내무릇 모든 아름다움은 우리 자신의 삶의 자서응하는 것이다. 금아 선생의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협소한 세계는 아니면서, 선생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 든 많은 것들은 깨끗하고 부드럽고 조촐한 느낌에 대응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조그맣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의 이미지들이다. -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