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겨우 이 정도였나? 겨우 하프 마라톤을 적당한 속도로 달린 정도로 지쳐버린다면, 마라톤 풀코스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옆에서 달리고 있는 주자는거의 대부분 백인이다. 특히 여성이 많다. 왜 그런지 소수민족출신 주자는 별로 볼 수 없다. - P19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안감은 떨쳐낼 수 없다. 한순간 내 눈앞을 스쳐간 검은 그림자는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버것일까? 그것은 지금도 이 몸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으면서빈틈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닐까? - P202

랜덤하우스에서 내 책을 담당하고 있는 리즈로부터 이메일이왔다. 그녀도 뉴욕 시티마라톤에 참가한다는 내용이다. 그녀로서는 처음 달리는 마라톤 풀코스이다. "즐겁게 달리세요! Have agood time!" 라고 답장 메일을 보낸다. 그렇다, 마라톤 레이스는 즐기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즐겁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몇만 명의 사람들이 42킬로미터를 달린단 말인가. - P203

덧없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저이국적인 풍경에 한숨을 내쉴 거야이것이 뉴욕의 가을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 P204

그러나 어쨌든 트라이애슬론 전의 몇 달은 불평불만을 접어두고, 이것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브라이언 아담스의 <죽는 날까지 열여덟 살>의 후렴을 입속으로 흥얼거리면서, 때로는 세계를 저주하면서, 나는 페달을 힘껏 밟고 또 끌어올린다. 그 회전의 리듬을 내 두 다리에 각인시킨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태평양을 건너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뺨을 세차게 때리고 스쳐 지나간다. - P208

그러나 실제의 인생에 있어서는 만사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손에 든 배달부이다. - P221

다만 이것만은 꽤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다. ‘좋아, 이번에는잘 달렸다‘ 라고 하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라는 점이다. 신체가 나에게 허락하는 한 가령 꼬부랑 영감이 되어도, 가령 주위 사람들이 "무라카미 씨,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라고 충고해도아마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 P227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 P229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오늘의 레이스를 내가 진심으로 즐겼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 자잘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그렇지만 나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고,
그 노력의 보상 같은 것이 아직도 몸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 P255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 P257

무라카미 하루키작가(그리고 러너)1949~20**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 P259

그리고 끝으로, 이제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길 위에서 스쳐 지나며 레이스 중에 추월하거나 추월당해 왔던 모든 마라톤 주자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만약 그 주자 여러분이 없었다면,
나도 아마 이렇게 계속 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2007년 8월 어느 날무라카미 하루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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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버아파트는 전국 최대 규모의 분양형이에요. 중요한 건 대형 병원이 옆에 있는 거죠. 아파트에서 병원까지전용 통로가 있는 데는 아마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그리고저기 보이는 건 장례식장인데,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장례식장이 보이는 동은 별로 좋아하시지 않거든요. 어떠세요?" - P9

"아유, 여기서 살다가 바로 장례식장으로 직행하면 되겠네. 아주 좋아요."
그렇게 우리는 실버아파트에 입주했다. - P10

나의 이야기는 베이비붐 1세대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많은 베이비부머 중 한 명이 늙어 가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은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쳐 줄 어딘가의 내실버 친구들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늙어 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귀한지.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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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통과 추위와 어둠과 슬픔과 아픔을미워하지 않고 살아내는 기쁨이 있단다. - P228

참 이상하지. 죽은 사람의 상 앞에 모여서닮은 사람들이 이마를 대고 웅크리는 게. - P229

한밤중에 잠든 엄마의 얼굴을 보다가 단번에 대답을 하게 된것이다. 그래, 엄마의 이름이라면 쥘 수가 있지. 펄펄 끓는 솥이라도 쥘 수 있지. 어떤 이름은 앞에다 ‘고‘를 붙여도 결단코 과거가 되지는 않는 거라고. 엄마는 영원히 현재지 내 안에 살지.
내가 죽어야 엄마도 과거가 되지. 어쩌면 할아버지도 그랬던 게아닐까. 당신의 엄마고 당신을 키운 사람이니까 뜨거운 걸 당연하게 쥐게 된 건 아닐까. 종이는 배꼽을 향해 말리며 탄다. 종이는 근원을 향해 타들어간다. 그렇게 종이는 뭔가를 지키려는 형태로, 안쪽으로 구부러지며 타들어간다. - P230

별 같은 게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 P235

사람의 귀에서 금이 쏙쏙 나온다는 게귓속말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P236

그러다 특정한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면 우리는 묻지 않고도
‘그 사람의 커피‘를 탈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한 사람의 기호가선명해질 때, 그 사람의 취향이 계량 가능해질 때, 그 기억을 토대로 익숙한 한잔을 만들어 따듯한 물체를 건네곤 했다. - P239

열매는 찬란한 빛의 기억이라서그걸 마시고 나면 당연히 잠들 수 없지. - P241

"이 검은 슬픔을 희게 하기 위해서 갈고 있다"
(나는 슬픔을 강물에 계속 씻어낼것이다.) - P247

귀한 꿈을 꾸고 나면 쉽게 눈뜨지 않고, 조금 기다리는 편이다.
꿈이 아주 느리게 혈관 속으로 흐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는편 며칠 전 아주 맑은 꿈을 꾸었다. 꿨던 꿈은 사실상 한 장면에가깝다. - P249

방앗간 댁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오래 부딪치고뒤섞이고 들끓어야 해. 그래야만 순결한 떡이 나올 수 있어. 고생고생해서 겨우 나오는 거야. 그렇게 만든 떡이 기분 좋은 찰기를지닌 채 우리의 앞니에 닿는 거야. - P251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올 것이 있다. 비와 눈은 오는 것.
기다리는 것. 꿈의 속성은 비와 눈처럼 녹는다는 것. 비와 눈과사람은 사라지는 것. 그렇게 사라지며 강하게 남아 있는 것. 남아서 쓰는 것. 가슴을 쏟는 것. 열고 사는 것. 무력하지만 무력한 채로 향기로운 것. 그렇게 행과 행 사이를 날아가는 것. - P253

. 썼던 시가 마음에 꽉 차지않을 때 내 정신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때 그럴 때 나는 숭늉을 한냄비 끓여서 먹는다. 배가 좀 데워지면 용기가 생긴다. 퇴고하는법을 나는 그렇게 배웠다. - P254

보고 싶을 때마다 이 글을 썼습니다.
마음을 다해 당신 앞에 놓으려고요.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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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찰스 강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찾아와서 각자의 방식으로 강을 둘러싼 각자의 생활을 보낸다. 그저 느긋하게 산책을하거나, 개를 산책시키거나, 사이클을 타거나, 조깅을 하거나,
또는 롤러브레이드를 즐기거나(어떻게 저렇게 무서운 것이 즐거울 수 있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해할 수 없지만) 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자력에 이끌리는 것처럼 이 기슭으로 모여든다. - P139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다시-달리면서 생각한다.
"무라카미 씨처럼 매일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러다가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같은 말을 때때로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외국에 있을 때는 별로 듣는 일이 없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 P148

그러나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어느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체내의 독소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한독소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 P149

나는 되도록 그와 같은 위축 현상을 피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것은 훨씬 자발적이고 구심적인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활력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내적인 이미지를 염두에두고, 나는 언제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 P152

나는 되도록 그와 같은 위축 현상을 피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것은 훨씬 자발적이고 구심적인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활력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내적인 이미지를 염두에두고, 나는 언제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 P152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P171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로 정의 결승점을 통과할 때는마음으로부터 기쁨이 솟구쳤다. 장거리 레이스의 결승점에 들어선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이번엔 뭐니 뭐니 해도 역시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오른손 주먹을 허공에서 꼭 쥐어본다.
시각은 오후 4시 42분 출발하고 나서부터 11시간 42분이 지나고 있었다. - P177

나는 기록에 도전하는 무심한 젊은이도 아니고, 한낱 무기적無인 기계도 아니다.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오래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해가려 하는, 한 사람의 직업적인소설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뉴욕 시티 마라톤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한 달.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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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가장 투명하고 연약한 부위. 인간의 미농지. 사랑의 창호지. 우리는 입을 맞추며 서로의 농담濃淡을 느끼고 수묵화가 된다. 가장 얇고 다치기 쉬운 부위를 맞대어 사랑을 표한다는 놀라운 사실, 사랑할 때 언어는 늘 물러선다. 말하지 말 것. 말을 넘을것. 서로 닿을 것. 눈을 감고 빛나는 미래를 볼 것. - P209

시를 쓸 때 마음은 한껏 벌어진다.
연과 연 사이에는 지중해가 있다. - P210

나는 어렸을 때 집이 폭삭 망해버려서 외할머니의 손에서 크게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감사하게 느껴진다. 세대와 세대를 건너서 손을 탄다는 것. 노인의리듬으로 아이가 살아간다는 것. 그건 산책하는 박자라든가 떡을 씹는 속도 같은 것. 그 속도로 나는 요즘 시를 쓴다. - P219

그렇게 세상에 더는 없는 사람을 말하며그게 증언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살아간다. - P221

. "나한테는 이 얼굴이 우리 엄마야"라고. 이번에도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나도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지만, 오늘의바람은 온전히 엄마에게 부는 것이니까. 오랜만에 찾아와줘서고마웠어요. 언제나 애틋했던 전씨. 늘그막에 나를 키운 사람의 이름. 물을 먹으면 끈적해지는 여름의 전분씨. 당신 딸은 여전히 착하고 아름답고요. 늙을수록 당신을 닮아갑니다. - P223

소처럼 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개나 새나 쥐와 달리 소리가 무겁고 뒷모습은 봉분과도 닮아 있다. 한밤중에 할머니 집에전화가 왔다. 네 아이는 걱정 마라. 잘 챙겨 먹이마. 내가 꼭 반드시, 잘 키워낼 거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전화를 끊고 할머니가 소처럼 울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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