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히 반대했다. 왕손의 이름을 개똥이라고 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이 거하면 인생이 이름에 잡아먹힌다. 그런데도 아내는 순우리말 이름을 고집했다. 1988년 자주민보 대신 ‘한겨레신문‘이라는 제호를 지지했던 것처럼. 첫딸의 이름은 김보미나래. 웬만한 인생 살아서는 이름값 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 P9

센터를 나오면서 아내는 분통을 터뜨렸다.
"왜 남의 애 이름을 함부로 축약해?",
그러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형, 우리 어떡해?" - P11

더이상 미누리들은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정신, 자아, 때론 몸까지 모두 아웃소싱한다. 우리는 주인 자격을 잃었다. 딸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결국 문의 말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었다. 딸들은 사랑하든 혐오하는 우리를 본다. 볼 수밖에 없다. 자식이자 주식-나는 딸의 100퍼센트 주주다―으로서의 운명이다. 하지만 나는후일담이나 꾀죄죄하게 늘어놓으며 추앙받고 싶진 않다. 처절하게 부정되고 가열하게 척결되고 싶다. - P20

해먹에게해먹, 너에게 도배 벽지가 웬 말이냐. 너에게 감겨 레게 머리를 하고, 외국 청년이 한 대 권하면 못 이기는 척, 그러나속인주의엔 유의하며, 마리화나를 피워 물어도 시원치 않을판에 미안하구나. 여기까지 와 아파트 해먹으로 살게 해서. - P31

"좋았어."
"뭐가."
"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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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규희가 사라지고나서야, 여기에 없고 나서야 규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너를이루는 조각과 내 조각들을 맞춰보고 비교한다. 화가 나서 던지기도 하고 소중하게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기이한 모양의 성을 쌓는다. 그게 규희가 떠난 뒤 내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일이다.

그리고 블로그. 나는 규희의 블로그를 통해 너의 블로그를 찾아냈다. 너는 블로그를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두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 불쑥 글이 올라오는 식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난후에는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린 탓에 사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로 이직이 결정된 후, 출근을 기다리는 동안 너의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쫓기는 꿈을 꾼다. 건물에 갇혀 쫓기는데 건물은 내가 아는 건물인 것 같고 나를 쫓는 게 누구인지는모른다.‘ - P55

아주 가끔 울거나 짜증을 내겠지만 그것마저 전화를 끊은 후에 내색할 것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서도네가 이곳에 계속 다니고 있을까? 이 작고 구질구질한 곳에 너는아마 육 개월 만에 이 회사에서 네 능력만큼 대우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 P47

이 동네가 익숙해진 게 신기해서.
천희를 만나게 된 옷가게는 그로부터 반년도 더 전에 취재 때문에 알게 된 곳이었다. 가야지 가야지 다짐하고 실제로 그 상영회에 간 것은 딱 두 번이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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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회장 형수가 알면 난리 날 일이 좀 있어서………… 아무튼 넌 별일 없었다니 그걸로 됐다."
상우는 서늘한 바깥공기에 잠시 진정되었던 속이 다시날뛰는 느낌을 받았다. 뭐라고 더 묻기도 전에 불러둔 택시가 도착했고, 영일 선배는 등을 떠밀어 냉큼 상우를 차에 태웠다. - P204

"여기, 문을 닫는다고요?"
상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 P182

‘분명히 이해해주실 거야?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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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업자를 불러 얘기를 들어보니 옥상 수도는 파열된게 아니었고, 그가 시키는 대로 화장실 밸브를 열어놓자 더이상 배수관으로 물이 새지 않았다. 기온이 영상으로올라가자 폭설이 내리는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고양이들이 다시 골목 위를 거닐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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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씨랑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왜요?
영은씨는 너무 건강해 보여서요.
기분나쁘네.
미안해요. 꽃을 피무슨 수술을 해요?
빨리도 물어보네. - P178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몸에 집중하는 일은영은 그걸 바라서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는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을 악질적으로 즐겼다. 은영의 상사부터가 그랬다. 은영은 회사에서 사람들을 깊이 알아가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저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 그것이 은영의 회사생활 원칙이었다. - P131

아니에요. 괜찮아요. 남자친구 있어요.
오래 만났어요?
아니요, 한 일 년 정도……… 선배는요?
저도 있어요. 남자친구.
하와, 어떤 분이실지 궁금해요. - P51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천희가 앉아 있었다. 다른곳으로 갈까 하다가 천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상한 부분에서 우는 나를 천희가 흘깃흘깃 보는 게 느껴졌다. 손수건을 꺼내주려나? 싶었는데 주지 않았지. 대신 천희는 자신이 가져온 간식을 건넸다. 사또밥이었다. - P9

사자야 사자야, 넌 무얼 먹고 사니?
난 토끼 같은 작은 짐승을 먹고 살아어, 알았어.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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