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더욱 더워진다. 덥다는 말을 예전엔 별생각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얼굴이 떠오르고만다. 뙤약볕에서 농사 지어 작물을 보내주는 외할머니. 트럭 몰고 다니며 사시사철 야외에서 일했던 아빠여름에 더 많이 소비되는 축산 현장의 닭들, 폭염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기후난민들…. 내 더위의무게와 그들 더위의 무게는 다르다. 더위는 모두에게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 P98

가족들 사이에서 장덕준 씨는 다정한 아들이자오빠였다. 그런데 가끔은 아버지와 부딪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뉴스에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욕을 하는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저러느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런 아버지에게 장덕준 씨가 물었다. 아버지, 제가 죽어도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 P108

정혜윤은 아주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이 슬픔으로 해내는 일들에 대해 늘 주목해왔다. 모든 유족들은 말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 P112

나는 이 기자회견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눈물 훔치며 정주행하듯이. 싸우는 이주여성은 내가 두 주먹 불끈 쥐며 응원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연대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동시에 촘촘해지고 있다. 이주민의 삶이 그들의 목소리를통해 이 나라에 명징하게 떠오르는 것을 본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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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스템이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입시-공채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P19

뭐, 처음부터 이런 질문이나 알리바이들이 다 정돈된 형태로있지는 않았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오줌을 너무 오래 참지 말자‘는 생각은 평소에도 늘 한다만. - P21

그런 의문이 든다면………… 사실 2015년까지 삼성직무적성검사는 응시자 기준으로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시험이었다.
2015년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응시인원이 많은 시험은대학수학능력시험(59만 명)이고, 두 번째는 국가직 9급 공무원 채용 시험(19만 명), 세 번째가 삼성직무적성검사(10만 명)였다. - P25

공채는 고도성장기 한국 기업에 딱 맞는 인재 선발 방식이었다. 일할 사람은 많이 필요했고, 어차피 그들에게 대단히 전문적인업무를 맡기지는 않을 터였다. 구직자들은 먼저 그룹 단위로 실시하는 공채 시험에 합격하고, 나중에 자신이 어느 계열사에서 어떤일을 하게 될지를 통보받았다. 내 아버지도 그랬다. - P31

어떻게 된 걸까? 한은형 작가와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잘못생각했다면 무엇을 잘못 생각한 걸까, 스스로의 스타일을? 아니면문학상의 성향을? - P39

한국 독자에게는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당위성을 줘야 먹혀요.
그 당위성을 위해 문학상이나 명사의 권위가 필요한 거고요. 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책‘ 같은 독서 목록을 받아 왔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르는 것 같아요." - P49

그렇게 뽑힌 작가들은 "등단 이후 단편 청탁이 1년에 한 건,
많아야 두 건이었다."라고, "문학상이라도 받지 않으면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라고 항변했다. 문학공모전이 아니면 원고를구할 수 없다고 울상인 출판사들 앞에서 젊은 작가들은 문학공모전이 아니면 책을 낼 수가 없다고 울고 있었던 셈이다. - P53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흔쾌히 응하겠다고 했다. - P62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경력의 뫼비우스의 띠‘라는 말이행이라고 한다. 경력이 없으니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못하니경력을 쌓을 수 없는 상황을 자조하는 용어라고 한다. - P70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행본 출간 자체가 드물었고, 신인 작가의 한국 소설 출간은 당연히 없었다. 그나마 간신히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건 통속소설이었다. 사진이나 동영상이 드물었던 시대라 책이 그 역할을 했다. 1968년 한국의 책 광고 문구들이 이랬다.
"러쉬아워에 전개되는 섹스의 이색 풍경", "파격적인 섹스의 넌픽숀! 이 풍요한 섹스 파티", "이 책 섹스 그림만 보고 있어도 내가 오...
늘 살고 있다는 것이 기뻐질 것"⋯⋯⋯⋯⋯.*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명함도 못 내민다. - P75

박 회장과 강 대표는 낙선자들, 또는 고만고만한 신인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 문학계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런생각을 한다. 평범한 작가들의 범작 백 권, 천 권을 한데 모았다고해서 그게 『햄릿』이나 『율리시스』가 되지는 않는다.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림 백 점, 천 점을 모았다고 해서 그게 「모나리자」나 「게르니카」보다 귀하다고 할 화가나미술평론가는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자다. - P88

한국에서 신춘문예는 시행하자마자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93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응모자 수는 5300명에 이르렀다.
이 제도가 그렇게 쉽고 빠르게, 확고하게 이 땅에 자리 잡은 이유는 뭘까? 나는 그것이 과거제도의 전통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 P99

그런데 내 생각에 과거제도에는 그 두 가지보다 더 나쁜, 그리고 더 중요한, 세 번째 문제점이 있었다.
과거제도는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았다. - P101

나는 사표를 낸 뒤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집에서 나와 고시원에서 살았다.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동아일보 공채에 합격할 때까지 반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소중한 경험을 한 시기였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으나, 결과가 좋지않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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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을 던지는 동안 문학공모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 P17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入試)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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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동물임을 실감하게 된 건 전염병 때문이었다. 코로나보다 더 먼저, 더 자주, 더 거대한 규모로축산업을 휩쓴 전염병들이 있었다. - P38

이미 죽어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들이지 않아서다. 살아있는 동물은 겁에 질려 있고 안간힘을 다해 탈출하려한다. 본능적인 도망이다. 나 역시 그 본능을 지녔다.
달아나는 동물의 얼굴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유사성이다. 그들과 나는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 그곳에서라면 우리 중 누구라도 도망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대개의 동물은 달아나지 못하며 이런 일은 무참하게 반복된다. - P40

식탁 위 요리나 매대 위 제품에서 동물은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고통 같은 건 매끈하게 닦여 나간 뒤다. 그러나 우리 역시 동물이라 그 고통을 헤아릴 줄 안다. 이 상상력은 아름다운 우유 크림 케이크에서도 가축화된 동물의 생을 그리게 한다. - P44

고기라니, 너무 이상한 말이다.
식재료가 되기 이전과 이후의 이름을 굳이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있던가. 양파는 팔리기 전에도양파라 불리고 땅속에서도 감자는 감자이며 바닷속에서도 미역은 미역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나 닭은 식재료가 되고 나면 이름 뒤에 고기라는말이 붙는다. […] - P54

게 말한다. "수를 세는 단위인 ‘명‘은 현재 ‘名(이름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목숨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 P62

"인간은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인 힘으로 산다." 『절멸』에 적힌 문장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의 입장에서 쓰인 글의 일부를 옮겨 왔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는 ‘박쥐의 입장에서‘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운다. 감히 어떻게 대변할 수 있겠는가. 박쥐의 입장을 말이다. 동물을 의인화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유치한 실패로 돌아간다 - P74

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세 단어이면서도 하나의의미라고 이동시는 말한다. 동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다. 나는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힘으로 살고 싶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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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고 유리창 너머 구름 낀 코펜하겐 하늘을 보자, 저 멀리 은빛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 P10

"두 나라가 하나가 된 것뿐이지 나라가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아니요. 제가 살던 나라는 사라졌습니다." - P11

"당신은 아직 젊은데요. 옛날이야기를 하는 원숙한 인상은 아니시네요."

"어제 있었던 일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제도 오랜 옛날입니다." - P16

"그건 스시가 아니라 Sisu*겠지. 스시는 절대로 핀란드 요리가아니야." - P23

맛은 접어두고 이름으로 정하자. 메뉴판은일종의 문학 장르라고 문학을 연구하는 동료가 말한 적이 있다.
"Sa va?"라는 물고기도 있네." - P29

서예가의 눈에는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글씨를 우리는 매일 쓰고 있으니, 예술가의 눈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림을 그려도 좋을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글씨와 그림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는 듯하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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