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떴어요!" - P145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이해하는 중이에요. - P147

"어느 집이요?"
"내 집이요. 라파트멍 60층.‘ - P151

‘배우의 상상력은 가짜 삶에 국한되지.
사람들에게 패턴화된 삶을 보여주는 거야.
하지만 진짜 삶에 패턴 같은 건 없잖아.

여자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이마치에게 거짓말했다. 그들은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굶주려 있다는 것을이마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얼굴에 핏기가 없고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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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12일 사쿠라섬에 갔다. 목적은 단 두 가지, 재와 토석류(石流)를 보고 싶었다. - P150

이 무거운 재가 매일 떨어진다고 한다. 심지어 낮동안 수차례 떨어질 때도 있다고 한다. 연기를 뿜을때마다 떨어지고, 떨어지는 장소도 그날, 그 시각의풍향을 따른다. 정말 성가시기 짝이 없다! - P153

과연 우산이 필요할 법도 하다. 재가 떨어지는소리는 처음 들어봐서 그런지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마음이 침울해지는 소리였다. - P155

자연히 사쿠라섬의 노인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시적인 재해라면 상당한 피해를 입어도 인간은 오히려 용기를 내겠지만, 이라고 했던 그 이야기 말이다. 심경이 복잡했다. - P157

뭔가를 뒤집어쓴다는 말은 높낮이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이고, 높낮이가 없다는 말은 생기가 없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걸까,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 P161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불쌍하다. 8월에 별안간 하늘에서 쏟아진 재를 맞고 나뭇잎이 떨어져나갔을 때는 기절하는 심정이었으리라. 일주일 만에겨우 싹을 틔웠을 때는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 P163

한번 거대한 목재를 다뤄본 젊은이는 그만큼 정신이 안정된다고 한다. 나무는 알게 모르게목수를 키워준다고, 나라지로 씨는 말하고 싶어 했다. 어지간히 나무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 P176

장수하는 나무의 울퉁불퉁한 밑동을 보면 나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아서 도망친다. 더욱이 울퉁불퉁한 밑동이 꼭대기에 은은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면 아름다움과 무서움의 협공을 만난 셈이어서 나는 가위에눌린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 P180

선구자 격 식물이라 악조건에서도 살아가는 힘이 발군이라고 누군가 가르쳐주었다. 선구자라는 단어가 몸에 사무쳤다. 수양버들의 낭창낭창한 모습은 충분히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지만 황무지에 앞장서서 살아가는 씩씩함도 버드나무의 본성이었다. 이후 버드나무는 마음에 걸리는 나무가 되었다. - P183

떠난 지 57년이 되는 고향이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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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렇게 놀라지 좀 말아요! 나야, 진진이라구." - P61

"무슨 책인데?"
갑자기 궁금증이 솟는다. 어머니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우리 집에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책의 내용은 일어나는 혹은 일어난 일의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힘만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문제와 직면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동네서점에 달려가 해결법이 들어있을 것같은 책을 고르곤 했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와 한참 씨름하다문득 뒤페이지의 해답 편을 반짝 떠올리는 수험생처럼. - P63

이모도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읽은 책을 이모가 읽은적이 없고, 이모가 읽은 책을 어머니가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 P63

어머니를 탐구하면, 탐구해서 분석하면, 혹시어머니의 그치지 않는 활력을 표현할 적확한 말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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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하나 이상은 건강에 좋지 않아." - P35

가정환경 조사서에 어머니의 직업을 사업, 이라고 쓴 것이 화근이었다. 사업이라니, 당시 어머니는 시장 바닥에서 싸구려 양말을 팔고 있었다. - P35

"보라색 라일락을 한 무더기 꽂으면 예쁠 것 같아서 사봤어요.
받아주세요." - P37

"저기, 저분, 어머니 맞지? 나는 안진진 엄마예요, 하고 아주 쓰여 있는걸 뭐." - P39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와 똑같은 거짓말을 어쩌면 결혼할지도 모를 남자에게 느닷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먼저버리고 말았다. 그 유명한 4월 1일 만우절, 밤 아홉시 이십분에이 거짓말....... - P40

아버지의 삶은아버지의 것이고어머니의 삶은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번도 어머니에게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예의에 벗어나는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 P42

세상에, 조직이라고? 아니, 조직의 보스라고? - P48

진모가 나 못지않은, 아니, 나를 훨씬 능가하는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애의 삶에 참견하지 않았다. 진모의 삶은 진모의 것이었고 진진이의 삶은 진진이의 것이었다. - P51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말이었다. 그런 말을 준비하지못한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 P51

"누나는 연애를 해봤어?" - P53

진모, 불현듯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런 다음 허공을 향해 헛웃음을 날린다. 이 일련의 동작들은 정확하게 최민수를 표절하고 있다. 이젠 거의 자유자재다. 연습이란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나는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진모, 점잖게 입을 열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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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쇠퇴하여 애석하게도 선구자의 영광은 다음세대의 거름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이 가랑비에흠뻑 젖은 연노랑 버들잎의 사랑스러움은 어떠할까. - P157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떤 힘에 의해 갑자기 붕괴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발밑의 계곡을 내려다보니 섬뜩할 정도로 깊었다. 뒤를 돌아보자 절벽의 단풍은 비단에 수를 놓은것 같았다. - P140

요새 삼나무 모양이라고 해도 그 뜻이 통하는 경우가 적어졌다. 삼나무 모양이란 우뚝 솟은 삼나무처럼 윗부분은 뾰족하고 아랫부분은 넓게 만들어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는 모양을 일컫는다. - P145

차곡차곡 쌓은 것은세월과 나이뿐인데 그것은 내 의지로 쌓아온 것이아니라는 쓸쓸함이 있다. - P147

작년 8월 12일 사쿠라섬에 갔다. 목적은 단 두 가지, 재와 토석류(石流)를 보고 싶었다. - P150

그런 생각을 하자 괜히 재를 직접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때 정말 매력적인 사진을 보았다. 나무도 풀도인가(家)도 없고 휑하니 넓은, 묘한 적막감이 감도는 장소에 남자가 홀로 우산을 쓴 채 서 있는 사진이었다. 비가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를 우산으로 막는 광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자 직접가서 봐야만 수긍할 수 있을 듯싶었다.
토시라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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