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 다섯 가지 계율을 차례대로 읊었습니다. 일단살아 있는 것을 해치거나 죽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자신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모두 말입니다. 그리고 남의것을 훔치지 않고, 성행위를 삼가며, 거짓말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 P65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무엇을 준비하는 것인지 잘몰랐지만 말입니다. 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스웨덴을 떠났습니다. 겨울이라 마음먹기가 더욱 쉬웠는지도모릅니다. - P67

아잔 파사노 스님은 제게 나티코Natthiko라는 이름을 제안하며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지혜롭게 성장하는 자‘라는 뜻이지요. 저는 그 이름이무척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좋습니다. - P73

그 고백 자체는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남들의 잘못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우리는 점점 더 결속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잘못을 소리 내어 털어놓는 순간, 내적 압박이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 P77

난생처음으로 세상과 제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같았습니다. - P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르셀로나에 갈 거라고 말했을 때 m은 내게 가우디 평전을 사주었다. 여행 서적도 아니고 웬 평전이냐고 물었더니, 바르셀로나에 가려면 여행 서적보다는 이걸 읽는 편이 좋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읽을 수 있었다. - P151

-왜 그렇게 매번 새로운 취미를 찾는 거야?
라고 물으면-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라고 답했다. 남자친구는 내 물음에 늘 그렇게 말했다 - P154

투어가 끝날 때쯤 가이드는 맛집 몇 군데를 알려주고는 생각났다는 듯이 근처에 플라멩코 공연장이 있다고 했다. 플라멩코의 절정 부분만 삼십 분 분량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 P157

얼마나 여행했지?
-한달.
-즐거웠나?
-잘 모르겠다. 이동의 연속이었다.
-여행이란 원래 그렇게 소문 같은 것이지. - P160

그 아래에 사진이 하나 있었는데, 뇌사 상태의 뇌혈류를 찍은것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건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어떤 도시의 야경 같았다. 중앙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숲이 있는 도시. - P164

‘내가 농담한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는 어때?‘
m은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아마 실제로도 웃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농담도 하지 않고. - P166

-두 시간 반이라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라고 내가 말했고 남자친구는-한 사람의 인생이 사라지는 시간치고는 빠르지. - P169

못본 사이 꽤 수다스러워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답신했다.
m에게 묘비명을 만들어준다면 뭐가 좋을까?‘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메일이 와 있었다.
‘당연히, 단 한 번도 바르셀로나에 가보지 못한 사람, 이지.‘ - P173

나는 맥주를 마시며 존에게 답장을 보냈다.
‘해피버스데이, 존.’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어떤 날은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중국집에서 완탕 수프를 테이크아웃해 집에 가고 있는데 그가 반대편에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추레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뒤돌아서 먼 길로 돌아갔다. - P175

난 디제이 티모시와는 더 이상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그날 나를 집까지 바래다준 로니의 인스타는지금도 팔로우하고 있다. 그리고 어딜 가든지 벽화를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좋게 생각하려는 편이다. - P178

우리 가족의 비공식 가훈,
‘잘난 척하지 맙시다. - P181

그 동생의 예언은 3년 뒤 비가 많이 오던 여름날에현실이 되었다. 마치 진흙 산사태가 나듯이 통제 불가하고, 걷잡을 수 없고, 앞뒤 가리지 못하고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 P183

*말이란 말은 다 하는 것이 엄마의 반응이었다. 반면아빠의 반응은 아무 말 없이 평소 많이 마시지도 않던술을 마시는 거였다. 명목상으로는 연말연시라 술자리가 많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취할 대로 취한 채 귀가해나와는 한 마디 할 일 없이 방으로 직행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그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 P192

그랬더니 부산 남자는 크게 당황해했다.
"아, 너무 솔직하시네요. 뭐죠?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차인 것 같은 이 기분은…………"
"근데 동생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아요?"
"네, 사실 그래요." - P198

왜냐하면 나는 잘 알고 있다. 너의 외로움도 내외로움처럼 이름이 없다는 것을. 연애를 못 해서인지, 친구가 필요해서인지, 권리가 침해당해서인지, 존재가 지워져서인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외로움. 그런외로움은 몰아낼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만 아는 적당한이름을 붙여주고, 가까이에서 길들일 일이라는 것을. - P199

단골 떡집에서 와서 단골 바에 저녁 8시에 들렀다가 이제 단골 포장마차로 향하는 그들. 그들이 단골 삼는 곳은 그곳이 칵테일 바인지 마을회관인지 분간할 필요가없어서 좋다. B와 나는 단골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반단골쯤이라고는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사이가 됐다. - P212

연애와 술에 대해 글을 쓰게 됐다고 하니 지호가 그랬다. "웃겨, 니가 뭘 안다고 연애와 술로 책을 쓰니?" -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말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풀 한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2022년 12월고명재

늙은 엄마는 찜통 속에 삼겹살을 넣고 월계수 잎을 골고루 흩뿌려둔다 저녁이 오면 찜통을 열고 들여다본다 다 됐네 칼을 닦고 도마를 펼치고 김이 나는 고기를 조용히 쥔다색을 다 뺀 무지개를 툭툭 썰어서 간장에 찍은 뒤 씹어 삼킨다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 것, 입속에서 일곱 색번들거린다 - P11

AA를 좋아합니다설산을 그대로 받아쓴 것 같아서 - P15

그리고 나는, 함부로 더 이상해져야지꽃술을 만지던 손끝으로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그건 신의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그럼 누구의 말이었다는 거야?" - P31

"용서를 권하려는 건 아니지만, 제 말을 조금 더 들어볼 수 있나요? 곧 퇴근하니까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좀더 얘기해도 될까요?" - P25

그리고 놀란다.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둘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처음 서로를 마주봤을 때와마찬가지로,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번째삶이 시작된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