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목씨와 말을 섞을 수 있었던 건 갑작스럽게 울린 화재경보 때문이었다. 칠 년이 지났지만 경은 그때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상영관 안에 화재경보가 울렸을 때, 경은 발갛게 부어오른 눈가를 비비며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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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사람들 얼굴이 다 다르잖아요.
다 마음에 들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에요.
사람들 얼굴과 생김새가 다 다르니까,
계속 그림을 그려요.
다 예뻐요.

못난 사람은 없어요다 얼굴이 예쁜데,
왜 본인이 못생겼다, 얼굴을 깎아라 그래요?
자기더러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자신감에이 뭐, 저는 경쟁 같은 거 없어요.
저는 저이니까요.
•긴장이 없어요, 저는. 아예.
저는 잘하니까.
긴장 없이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
긴장할 게 뭐 있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죠.

내가 모은 은혜씨의 기록과 사진들은 참으로 많다. 그것을 뒤적이고 있노라면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데 침울해지기도 한다. 그와동시에 너무나 사랑스러운 애교가 뿜어져나와 웃음 짓기도 한다.

은혜씨는 세상에 태어나 축복이 아닌 근심의 존재로, ‘네가 무슨 쓸모가있을까‘ 싶은 하등한 인간에게 보내는 차가운 눈빛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마음의 병을 앓았다. 성인이 되어서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자리할 데 없이 밀려나모든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하는 잔인한 벌을 견뎠다. 그런은혜씨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묵묵히 그림 그리는행위를 통해 자기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진 존재론적 장벽과 한계, 그에 기인한마음의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를 치유하며 잔인한 형벌의 시간을 예술로승화시켰다. ‘나 같은 이는 왜 장애인으로 태어났을까‘ 자책하던 과거에서 "어머,
원래 예쁜데요 뭘~"이라며 이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존재로거듭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 가족의 부양의무자가 되어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자신 있게말하는 은혜씨는 지금도 양평의 작은 작업실에서 동료들과 그림 그리며 먼미래를 향한 부질없는 걱정 대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은혜씨의 그림자 뒤에서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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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입니다. 이렇게 큰 눈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렸을 때 보던 만화책에는 눈송이가 커다란 동그라미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지요. - P185

오늘 같은 날 반복 재생으로 듣는 음악이 있습니다. 레메디오스의「His smile」이라는 곡이에요.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레터」의 사운드트랙 중 첫번째 곡입니다. 이 단순한 연주곡의 뒤편에 묵직하게 깔리는 배음은 가볍게 흩날리되 무겁게 고여드는눈의 속성을 은은하게 들려줍니다. - P187

눈이 녹지 않기를 바라며 저녁을 기다린 것은 이계절만의 특별한 즐거움인 ‘눈과 술의 양동이‘를 위해서입니다. 옥상에서 깨끗한 눈이 가장 풍성하게쌓인 곳을 골라 양동이에 가득 담아왔어요. - P189

완성된 결과물이 그간의 고통을 상쇄할 만큼 귀하고 드문 맛을 내는것도 중요한 점. 깊어가는 가을밤 마롱글라세 한알과 꼬냑혹은 레드와인 한잔은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포기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 P194

매일이 비슷한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깊어지고 무언가 추가되는……… 어디까지가 과정이고 어디서부터 완성일까. 시를 어디서 끝내야 하는 걸까. 잠들기깊은 밤과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 반복된다. - P200

지혈을 하고 밴드를 붙인 뒤 약간 잠겨버린 기분으로유자를 마저 썰고 청을 끓이기 시작했다. 껍질과 과육과 즙을 잘 섞고 꿀과 레몬즙을 더한다. 상처를 받는다‘는 말이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처는 누가 갑작스럽게 맡겨두고 간 선물인가. 아니면 수신인이 불분명한 반송우편인가. - P209

잘 볶아서 숙성시킨 원두를 분쇄해 첫 물을 따르면 솟아오르는 짙은 밤색의 언덕. 여과지 끝이 조금씩 갈색으로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팽창하며 끓어오르는 거품들. 이 장면은 드립커피를 내릴 때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나무와 씨앗이 걸어온 기나긴 여정의 최고조를 이룬다. - P215

가지를 떠났던 잎사귀가 오랜 시간을 마르고 젖고 으깨어져 다시 뿌리로 흡수되는 감각으로, 땅과 물과 불과 나무가 하나의 잔 속에서 비로소 뒤섞인다. - P216

음식을 내기 전 깨소금을 뿌리거나 지단 등의 고명을올리는 것은 접시를 받는 이에게 ‘당신이 처음‘임을 알리는의미라고 합니다. 선물에 리본을 묶어 직접 풀어보도록 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 P217

이제 혼자 껴안고 있던 솥을 내려놓고 함께 마주할식탁을 향해 걸어온 것 같아요. 요리를 통해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순간들을 공들여 매만져 하나의 최선을 만들어내는 기쁨으로. 그래서 저에게 그릇에 음식을 담는 행위와 종이에 글씨를 올리는 일은 때로구별되지 않습니다. 요리는 접시에 쓴 시, 시는 종이에 담아낸 요리 같습니다. - P219

좋아해요, 말하고 싶은 순간마다 요리를 했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많이 생각합니다, 선언하는 마음으로 접시를놓았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매 순간 행복하게 요리할 수 있었어요. 옥탑에 머물렀던 계절과시간을 담아 보냅니다. 이 고백이 당신에게 무사히 가닿기를 바랍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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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단잠을 방해하는 악몽을 찾기 위해서죠. - P15

할머니는 품에 지니고 다니는 악몽노트를 꺼내서사람들이 웅얼거리는 악몽을 받아 적습니다. - P17

"정신이 없을 테니 차를 좀 마시렴"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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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이었던 소싯적 이력을 바탕으로 기록과 수집에능한 사람. 악몽을 기록하고 악몽이 깃든 물건을수집한다. 평소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량이 많다.
악몽을 파헤치기 위해 20대부터 수십 개국을 여행한경험이 있다. 악몽이란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고생각하지만, 사람들이 깊은 잠에 들었으면 하는 마음을늘 가지고 있다. 작업실엔 악몽을 기록했던 수첩으로가득 채워진 책장이 있다. 여행 다니며 모은 아름다운장신구도 많이 가지고 있다. 보통은 낮에 자고 밤에일어나 활동한다. 특이한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악몽에서 재빨리 깨어나는 법만 알고 있어도좀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 P37

"전 세계의 악몽을 찾아다니며 기록할 수 있었지.
알아갈수록 더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도 있단다." - P41

"정신이 없을 테니 차를 좀 마시렴" - P29

수집가가 발견한이 특별한 물건들은악몽을 쫓는 데에 요긴하게사용되었습니다. - P51

"전 세계의 악몽을 찾아다니며 기록할 수 있었지.
알아갈수록 더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도 있단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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