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어? 요즘 안 그래도 네 생각 났는데, - P48
망원시장:반찬 10,000원자두 4,000원제습제 18,600원 - P90
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눈만 깜빡였다.절반 가까이 남은 삼십 대는 물론이고 내 사십대도, 그 이후도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 P67
노화란 무엇인가. 늙은 여자가 된다는건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할까. 시장성이 없는 상품, 철 지난 유행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존재로 취급받는 것. 어떤 면에서는 해방감을 줄까, 아니면 끝내 모욕적일까. 젊음과는 또 다른위험이, 젊은 날엔 짐작도 못한 위협이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 P73
우선 조언대로 내비게이션을 켜는 상상부터 해야겠다. 잘 늙는 것만큼이나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 P74
무엇보다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며 다 된 영화에함께 글을 얹을 다음 사람이 기다려진다. - P85
이른 아침에 한강을 방문하면 게이트볼장을 점거한 할머니들의 혈기 왕성함에 약간 기가 죽는다. 그곳은 완전한 아마추어의 세계다. - P95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벌써 날이 어둑해지고 말았다. - P268
사흘 만에 무화과나무에 물을 주었다 - P269
주워온 천냥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새잎을 내는 동안 병실에 누운 남편도 서서히 달라졌다. - P271
"곧 죽냐고요. 우리."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 P273
정미씨는 이혼 후 느지막이 부동산 중개 자격증을 따서 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는 데 익숙해졌다고했다. 그러다보니 사람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요리조리 눈치를 보게 되었다고. 신혼부부를 돌려보내고 나니 윤재의 표정이 아른거렸다고 했다. 맥없어 보여요. 윤재는 얼마 전 직장을•그만두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학원 일을 했거든요. 그러자정미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 P274
"저는 할머니가 생전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줄 알았어요.""다 할머니 거예요?" - P277
‘쥐‘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지. 얄궂은 애라서 다행이네. 차연은 웃었다. 곧이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어왔고 잎사귀들이 슥슥 저마다 속삭이는 소리를 내었다. 쿰쿰한 냄새도 났다. 제라늄이구나. - P281
"이쪽은 카일리 씨."남자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겸연쩍은 마음에 진짜 이름을말하려고 운을 뗐지만, 할머니가 먼저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델마라고 해요. 나는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는 비굴해보일 정도로 상체를 숙여 인사했다."반갑습니다. 델마 씨." - P290
생각을 하는 우리가 질릴 만큼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진경은 종종 그때의 언니를 회상하곤 했다. 그 말을 하던 승혜언니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가 멋대로 삶을 망치게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 우리에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 P301
먹을 거 말고 다른 건 안 필요해?물건을 계산할 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 놀란다그 사람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 P79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다. - P87
이 시에서 당신은 저것들을 떼어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시 아닌 곳에선 붙여놓고 싶어 할지도마음에 드는 구절만 가지고 싶다면 - P91
나는 소설이 더는 궁금하지 않은데그래도 읽는다.끝이 있는 이야기가 필요해서.믿음하라고애인이나씩 지그렇게 - P104
평가도 주목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와중에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 기준이없으면 어떤 말은 독이 되고, 어떤 건강을 놓쳐버리면 사랑 앞에서 무능력자가 된다. - P41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내 나이의 엄마를 떠올리며 나와 엄마를비교하는 것이다. - P63
성소수자의 존재는 찬성과 반대를 나누는 영역이 아니므로, 두 글은 애초 주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논리도 빈약했다. - P81
어긋남과 엇갈림은 비단 인간관계만의문제는 아니다. 영화와도 시차를 겪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것이 존재하다 보니 어떤 영화는 태어나고 한참 지나서야 내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 P61
나는 꽤 오랫동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비밀의방 앞을 서성이듯 울프에게 거리를 두고 멀어지지도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그건 아직 내가 열지 않은 내 안의 여성성에 거리를 두는 것과 비슷했다. - P88
알았거나 몰랐거나 말했거나 침묵했거나 우리는 모두 우리의 몸이 불행의 근원이 되지 않도록 고군분투했으므로. - P121
엄마, 당신은 어떤 여성입니까?이제 엄마, 당신이 대답해 주길. 당신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오롯이 혼자인 순간, 그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 누군가와 연대하고 있다는 기분, 당신이 추고 싶은춤, 당신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부르는 노래. 엄마를 제외한, 아니 엄마를 포함한, 그러나 그보다 더 커다란 엄마의진짜 이야기를. -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