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과분하다 생각하는 그 자리에 생각 없이 앉아아무것도 안 하면서 으스대기만 하는 어떤 배 나온 아저씨를 떠올려라.‘ 이 글을 읽고 나서는 ‘그래, 까짓것. 이 세상에쓸모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도 이상하지‘ 하고 좀 더 단순하고 용감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 P115

어디서 해법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나는 추천받은 모든방식을 다 썼다. 회사 자료실에 가서 시집을 다 펼쳐놓고 낯설거나 용법이 특이한 단어를 베껴 적은 노트를 만들었다.
선배들이 권하는 책은 전부 읽으려고 노력했다. 주말에도영화를 봤다. 놀랍게도, 노력을 해도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않았다. 내가 회사에서 쓴 첫 번째 원고는 펫샵 보이즈의 신보에 대한 원고지 2매 정도의 짧은 소개 글이었는데,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며칠 동안 그 음반을 반복해 들은 것은 물론이고 그때까지 펫샵 보이즈가 발표한 모든 곡을 듣고 그에 대한(내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글을 읽었다. 그러고도 뭐라고 써야 할지를 몰라서 밤을 거의 새웠다. 미쳤지 싶다. - P83

슬프게도 그저 평범한 나는 둘 중 하나도 못하고 멈춰 서있다. 결국은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못해 나를 포기하고 사는 내가 정말 의미 없이 낭만적이고, 모순적이다. 결과만 볼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이것이 결코 쉽지만은않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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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거야! 오늘 했듯이 바로 그렇게 하라고! 정말 끝내줬어! 다 져서 이제 끝장인가 싶었는데 마지막에 그 날개!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무슨 속임수를 쓴 거지? 아냐, 아무래도 상관없어. 앞으로도 딱 그렇게만 하라고!" - P199

그것은 여동생의 피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 P157

그러나 나는 1호의 녹색 눈동자를 마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 P127

"평범하게 결혼 상대를 구한다고 하지 않고 ‘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분을 찾습니다‘라고 하신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정말 여성스럽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갖추신 분이라는 것을, 영란 씨, 우리는 운명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문학에 대하 공동의 열정으로 투게더 디프 러브 앤드 언더스탠딩을 .."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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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포물선을 반복해 그렸을 여자아이. 이마 근처의 머리카락, 다문 입술, 작은 무릎, 꽉 쥔 주먹,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 흥분과 열기, 한숨과 권태가 고루 담긴 아이의 기분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눈치챘어야 한다. K는 그네를 타고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어 하는, 잠자는 폭죽이었단 걸. - P130

믿어야 할 건 오직 몸이다. 마음도 인생도 오늘이나 내일도, 몸이 가지고 있다. 부디 날마다 책상에서 몸으로 연습하는 사람이되면 좋겠다. 몇 권의 책을 내든, 종이 위에서 뛰고 종이 위에서 넘어지고 종이 위에서 자라는 사람이면 좋겠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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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은 개는 너무 커서그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그의 슬픈 눈망울을 완성하려고태양은 종종 등을 돌려 얼굴을 가린다. - P97

어린 시인이 떠나간 자리엔어린 시인이 남아 있다 - P80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라고어른이 된다는 건 폭격 속에서도꿋꿋이 식탁을 차릴 줄 아는 거라고 - P61

씨앗처럼 작아진 사람이 구름으로 떠오릅니다.
멀리멀리 흘러갑니다 만지면 따뜻할 것 같습니다 - P55

0만년설을 녹이기 위해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니라 츠의 아닐까안에서부터 스스로 더 얼어붙지 않으면 - P39

우리는 쪼그려 앉아 호수를 보았다 묘사할 수는 없지만그것은 아름다웠고 처음 보는 빛으로 가득했다 호수를 곁에두고 우리는 전에 없던 대화를 나누었다 반딧불이의 숲은어땠어? 어떤 반짝임에 대해,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길이었어 그런데 너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어? 네 최초의 기억은 뭐야? 같은, - P35

뒤덮을 흙이라면 충분했다 얼마든 달아날 수도 있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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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그해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조금 춥고 적막한 나의 방창턱에 뜨거운 물 한잔을 올려두고 앉아간밤의 꿈을 돌이키고 있었습니다. - P122

이상하고 아름답게 일렁이는 하얀 빛깔의 증기를 바라봅니다.
천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 P124

내가 태어나고 세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 지고, 내가 열여섯이 되던 해, 아버지가 물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항아리를 품고, 이집 저집 떠도는 신세가 되고, 열일곱엔 이런 일도 있었는데요, 이팝나무 군락을 홀로 거닐던 봄밤. 크게 바람이 한번 불고, 우연히눈을 준 이팝나무 한그루 잔잔하게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뛰어내린 듯 미미한 진동, 바로 거기서 내 첫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맨다리 위에 살짝 쿵, 머리를 박고 뭉그대던 파란 고양이, 달빛 닮은 노란 눈동자 빛내며 나를 오래 기다렸다고 말해주었을 때, 일순, 바람이 멈추고.
내 첫 고양이는 사랑을 쟁취하려다 한쪽 눈을 잃고, 잃어버린 한쪽 눈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고양이였어요.
아직도 나는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면 조용히, 내 첫 고양이를 떠올립니다. - P141

백번의 사랑을 잃고 백두번째 사랑에 빠져 걷고 있는 이 밤. 지금 여기. 저 멀리 쫑긋 세운 하얗고 작은 두 귀, 멍한 두 눈이 보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흰 개.
나는 힘껏 달려봅니다. 안아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너무 오래 헤맨 나의 하얀 개. 따듯한 목욕. 옛날이야기. 담요위의 잠. 부드럽고 깨끗한 음식. 작고 허름한 내 방 안에서 순한 숨을 내쉬는 작은 개. 내게 이렇게 해보라는 듯이. 나는 하얀 개를 따라 누워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어수선한 몽상의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두어봅니다. 하얗게 지워지는 머릿속.
순하고 느린 숨, 흰빛. 끝으로 나의 두 눈동자를 지워봅니다.
한없이 아름답고 가벼운 여름밤 내 가슴 위를 지나갑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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