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 진짜 첫사랑의 상처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런데 삼촌은 어쩐 일인지 그 말조차 농담으로 받아들이지를못한다.
"첫사랑의 상처라고?"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사과나무 둥치를 주먹으로 건드리며 삼촌은 거의 혼잣말처럼 이렇게 뇌까린다. - P205

"왜 짜증을 내니? 아까 언제 말했다고 그래. 아까는 ‘키읔‘이고지금은 ‘피‘인데."
"그게 같은 거지, 거센소리잖아." - P185

핸드삼촌은 그 남자의 이름을 허석이라고 소개한다. 삼촌 하숙집의주인 아들이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더욱 절친한 친구인데 휴교령이 내려지자 시골 정취도 맛볼 겸 삼촌을 따라 이곳에 내려온거라고 한다. - P161

이모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이모의 앉은 모습을 보자한번 더 여자의 몸가짐에 대해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자는 문턱에 앉으면 안 된대도."
"알았어. 알았다니까."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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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가.
유니접수대 책상으로 돌아가며 정혜가 생각했다. 수 쌤 말대로설마 그러기야 하겠느냐만, 싶으면서도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과연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대피시킬 수 있는 환자들은 다 대피시키고 우리도 도망쳐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던 정혜가 제자리에 앉아 머리를 훌훌털었다. 스며든 잡념을 그렇게 흩어내는데 닫힌 창문을 뚫고경적이 들려왔다. 아주 멀리는 아니었으나 제법 먼 곳에서 자동차 수백 대가 한꺼번에 경적을 울려댔다. 음껏 - P223

"우재!" 인적 없는 담장 너머로 중개인이 소리쳤다. 대답이들리지 않자 중개인은 무어라 구시렁거리더니 오른쪽 담장을 따라 절뚝절뚝걸어갔다. 희곤도 중개인을 뒤따랐는데 집뒤편으로 갈수록 경사가 심해져 몸을 뒤로 젖혀야 했다. 담장모서리를 돌아 벼랑길로 들어서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 P185

에이, 정말 그분이 한서 씨를 그냥 좋아했을지도 모르잖아?
내 말에 한서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불신 탓에 헤어졌다고 여겼으나 이제는 그게 아님을 안다고. 그런데이 변호사님은, 사람이 사람을 그냥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뇨 나는 가지튀김을 씹다 말고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맥주두어 잔에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한서가 ‘엥?‘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렇다고는 안 했는데?
변호사 맞네요. 묵화원그럼요. 매일 영혼을 팔잖아. 그것도 헐값에 사람 저울질하는 것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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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랐구나자유한 만큼 인내를 알며 소선한 만큼 강하게 맞서며온전한 감각 속에 커다란 여백을 품고자 이제 여정의 놀라움이 온다떨리는 불꽃의 만남이 온다 - P207

31그가 바람같이 스쳐 지나간다번개같이 뛰어가 조우하라좋은 이는 네 곁을 지나가고 있다 - P215

이름대로 살아야겠다이름 따라 걸어야겠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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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놓으니 자연스레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낯선 해변에서 답 없는 미래를 고민하던 기억(「데비 챙」), 목적지 없이 정신없이 걸어 다니던 기억(한남동 옥상 수영장」), 떠난 고양이를 애도하던 기억 (「임보 일기」 「꿈결」 「무급휴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솔직할 수 없던 기억(「애쓰지 않아도」 「숲의 끝」),
폭력적인 공익광고를 보던 기억(「손 편지」), 병아리를 키우던기억(『안녕, 꾸꾸」), 고기를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호시절」)…………… - P7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엄마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에 기도원에 들어갔다. 말이 기도원이지 사이비종교 공동체에 몸을 담기로 한 거였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내가 태어나고자랐던 P시를 떠나서 할머니의 집이 있는 서울로 이사했다. 나= 연합고사를 치러 애써 합격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사한 지 이틀트의 일이었다.
친구가 없는 교실에 뚝 떨어지자 막막해졌던 기억이 난다.
-장에 급식실에 누구랑 같이 가야 할지, 체육시간에 누구와께 운동장에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짝이 된 아이에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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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하도 깊어, 밤 이외의 것은 필요 없는 순간이다. - P13

떠나는 그애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미안하지 않다.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다. - P18

지금 나는 그와 같은 집에 살며 그를 ‘당신‘, 혹은 ‘여보‘라고 부른다. 그렇게 됐다. 뒤통수에 뜬 머리, 어깨에 떨어진 비듬도 가장가까이에서 본다. 사람의 일이 사람의 일만은 아닌 걸까? 대학 때나는 당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면 그도 지지 않고 말한다. 소설을 조금 잘 쓰던 것을 빼면, 나 역시 너에 대해 기억나는게 별로 없노라고. 기분이 상해 사실 당신은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고 말하면, 그는 눈도 끔뻑하지 않고 자기 역시 그렇다고 대꾸한다. 그 이상한 머플러? 지금 내 목을 감싸고 있다. 아무리 봐도 예쁘다고 볼 순 없어서, 어울리는 옷을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그의 머플러를 두르고 길을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 십수 년 전 그와 내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을 때,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때, 그의 목에 감겨 여기까지 따라온 물건이니까. 애틋하다. - P21

"아저씨, 동태 있어요?"
"(냉동실에서 꽝꽝 언 동태를 꺼내며) 여기 있지요."
"(인상을 쓰며) 얼지 않은 건 없어요?"
"네? 그럼 생태를 사셔야지!"
"(무안해서 과장하며)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미쳤나봐요!" - P28

모든 잘못 듣기는 ‘신기한 칵테일‘과 같아서, 백번째의 잘못 듣기라 하더라도 첫번째만큼이나 신선하고 놀랍다.
-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양병찬 옮김, 알마, 2018)에서 - P30

**개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단순하고 깊을 것이다. 가끔은그게 슬퍼서 울고 싶다. 기다리는 개의 뒷모습보다 더 애절한 게 있을까? 기다림은 개에게서 배울 일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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