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모든 배움은 부디 병원 바깥에서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응급실에서 그를 만날 일은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 P9

처음 만나기 전에는 약간 긴장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잘생겼을까봐요. 페이스북에서 본 프로필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인데 너무 잘생겼다니. 게다가 작가라니. 셋 중 하나만 하기도 힘든데 이 사람은 뭔가 싶었습니다. 배에 타면서 실제로 뵙게 된 선생님의 용안은 물론 미남이었으나, 그렇다고 너무 미남까지는 아니었습니다. - P15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느끼한 사랑편지에는 선생님이 쓰신 것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동시에 주는 당신"이라고 쓰셨죠. - P19

우리는 데뷔작보다 성장하고 있는 걸까요?
선생님의 글쓰기는 갈수록 나아지고 있습니까?
작가로서 자신을 어떻게 갱신하고 계신가요?
갱신이라는 것은 한 번 했다고끝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갱갱신‘ ‘갱갱갱신‘을 계속해야좋은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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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두면 어떡해, 누가 보기라도하면ㅡ 괜찮아, 우린 손님 초대도 안 하는데 뭐 봐 - P89

미애는 저쪽에서 쿠키상자에 정신이 팔려 있는 해민과 아이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난감함을 공유하던 사람들 중 입을 연 것은 이찬 엄마였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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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처럼 무언가를 허파에서 꺼내니네 손바닥엔 하얀 돌멩이하나 - P79

뚝뚝한 대가 내 앞에 다가온다날쌔게 올라타는 나의 팔뚝에 힘줄이두껍게 올라온다 강인해 보인다 - P51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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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오이넝쿨의 손은 하늘을 더듬더라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 - P46

아주 보내지 못할 편지속파랑울음은손톱 속에 든 전어 비늘 같은 초승달 되어오한처럼 떠오른다, - P47

누군가 이 시간에 자리를 내주고 떠났다아무도 세속의 옷을 갈아입지 못한 시간태양은 한 알 사과가 된다 - P62

이별 없이나비그늘마저 없이 - P71

더 달라고 하세요, 모자라면남자는 나를 흘깃거리며 바라보다가 기어이 묻는다.
그 나이에 혼자 여행 왔습니까?
나는 망설이다 간신히 말한다바로 그 나이라서요, 혼자 여행을 하다 어떤 사랑의 말도 폐기할 수 있는 그 나이라서요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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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 상태는 세상의 본성이다. 전쟁이 잇따르고 발명도 이어진다. 총매상고가 집계되면 자살률도 집계되며, 기아의 저편에는 달콤한 환락이 자리한다. 세상은 그것들 모두의 잡탕이다. 그것들이 모두 함께한다. 사랑만 예외이다. 사랑은 그 무엇과도 함께하지않는다. 사랑은 아무 데도 없다. 전시(戰時)에 부족한 식량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짧은 호흡처럼, 사랑도 모자란다. 놀이에 몰두해있는 아이에게 시간이 모자라듯 사랑도 그렇게 부족하다. 사랑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시간은 늘 역부족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창공 같은 그 목소리에 흐르는 우윳빛 피의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말이다. 혜성 같은 사랑은 영원에 단 한 번 우리의 심장을 스친다. 밤낮없이 지켜야 그걸 목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사실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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