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책장을 훑어보다가 어떤 책이 문득 자기를 끌어당기면 그 책을 산다. ‘새책방‘을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헌책방‘은 반대로 책이 사람을 선택하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가게다. - P7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사연 수집‘이다. 오랫동안 책을 찾아다니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책 찾기를의뢰하는 손님에게 수수료 대신 책을 찾고 있는 사연을 받는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흥미로운 이유가 책에 얽혀 있으면 그것을 찾아준다. 또한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을 익명으로 쓴다는 약속 아래 이렇게 글로 풀어내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에반대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 - P7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 P17

책은 음악과 비슷해서 그 안에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정해진 줄거리가 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읽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그 책을 언제 읽었는지에 따라서 의미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 P18

"일단은 가사가 있는 음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같은 이유로 클래식이라고 해도 오페라나 가곡은 잘 안 듣습니다. 가사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데, 가요라면 보통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사랑 이야기를 싫어하세요?" S씨는 내 대답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싫어한다기보다. 여태 그런 절절한 사랑을 못 해봐서라고 할까요? - P19

"물론 그렇지요. 《롤리타》는." 이렇게 말하면서 S씨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곧 말을 이었다.
"제가 찾는 건 《롤리타》가 아니라 《로리타》입니다. 1980년대에 ‘모음사‘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어야 합니다. 그때는 제목이《로리타》였죠." - P20

"제가 맡은 첫 과외 대상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대학생과 열네 살인 중학생.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게다가 찾으려는 책은 중년 남자가 어린 여자에게 집착하는 내용이 줄거리인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늘 그렇듯 어떤 일이든 너무 섣부르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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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릴 적 밖에서 실컷 놀고 복숭앗빛뺨으로 귀가하던 길에 느꼈던 후련함, 내일이라는 미지의 시간을낙관하고 기대하던 마음을 회복하게 한다. - P91

다들 그렇다고 하니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믿는 대신 자신의 본능과 감각으로 느끼고 판단할 줄안다면? - P55

우리가 타인과 사회라는 관계망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고자기다움을 말하는 일은 쉽다. 인공적으로 만든 무균실에서 변인을통제하면 동일한 실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은 이치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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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함 자욱함 - P102

비는 오고우리는 젖고 욕도 젖고 - P101

이 한 점 속, 무엇이 떠나갔나네 영혼새우젓에 찍어서허겁지겁 삼킨다 - P91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마침내 터미널에서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우동 국물을 넘겼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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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이라는 말대신 ‘엄마에 대한그리움‘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림책 《엄마에게>는 실향의 아픔을 가장 작은 단위가족의 가장 작은 존재 (아이)의 시점으로 바라봄으로써, 나로 하여금 카메라를 내려놓고 피사체의 영혼으로 거듭나길 촉구한다. - P173

이따금"글쓰기 책은 어떤게 좋아요?"라고 묻는 손님에게 "혹시 글쓰기가 왜(어떤 상황에서) 필요하세요?"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까닭도 그래서다. 그마저도 내가 추천한 책이 손님의 구매로 이어진 적은 손에 꼽을정도로 적지만 말이다. - P177

혹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고 여긴다면 너무 납작한 생각인가. 소심한 나는 98쪽의 더듬거리는 화자처럼, 책을 글쓰기서가에 한 권, 소설 서가에 한권 꽂아놓는다. 마침 제목도 ‘문체연습이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 P180

‘고독‘과 ‘자유‘를 모르던 시절의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흔들리는지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 P183

분수에 걸맞지 않은 욕심에 마음이 흔들릴때면 나는가오싱젠의 말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말한다. ‘나는 다만 내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 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봤자 나는 나일 뿐이다.‘ - P186

"그럼 다 외우고 계신데, 혹시 왜 <고향역>이 있는 책을 찾으시는 거예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냥 갖고싶어서 그러지요." - P191

노동시간에 담보로 잡힌 신체의안녕이 아니라, 바로 내가 시간 자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이다. 아내와 아이와 이렇다 할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불만, 가족과 함께하는 느긋한 저녁 식사에 대한 결핍, 늘 책 더미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읽고 싶은 책은 미뤄지기만 하는 현실.
책의 저자는 그런 감정들을 일컬어 ‘고독‘이라고 부른다. - P204

세상엔 정말 많은 책이 있습니다. 서점에 발을 디뎌보면 쉽게알수 있지요. 그런데 그중 무엇이 읽을만한 책인지 분간해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인터넷이라는 유혹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 P207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그의 책 <필사의 탐독>에서, 영화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건 ‘본다‘라는 동사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세상 모든 행위들로부터 독립된 경험, 그 순간세상과 분리되어 오직 영화와 나 자신만 남게 되는 유일한 경험이라는 뜻이지요. 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책에 대해 무슨 얘길 하든지 그 모든 말들은 결국 ‘읽다‘라는 동사로 수렴됩니다. 모든 책은 읽는 행위에 복무하지요. 읽는 사람은 언제나나자신이고, 읽는 순간의 감흥은 다른 누가 대신 느껴줄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웹에 적힌 타인의 별점에 기대지 않길 바라는 까닭은 그래서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본능과 직관,
호기심과 유혹에 이끌려 책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P208

서점에서 일한 지난 수년 동안 잊지 못할 사연과 소중한 기억들도 있었지만, 제게 있어 가장 일상적인 보람은 어린이나 청소년 손님들이 책 고르는 일에 몰두한 모습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모습엔 어른들에게선 좀처럼 보이지 않는 고유의 진지함과 절실함이 깃들어 있거든요. 당신은서가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고, 마침내 신중하게 고른 책 한권을 들고 제게 다가옵니다. 그럴 때면 제가 단순한서점 주인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를 책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가 된 듯한 근사한 기분이 들어요. 이제 당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넬 차례입니다.
"책의 세계에 오신것을환영합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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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순 작가는 작품 초기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연필 스케치를 하고, 펜으로윤곽선을 똑 떨어지게 그린 후 색으로 채우는 방식을 취했다. 그 방식이 갑갑하고 표현력이 떨어지는 그림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여러 바탕색을 겹치고 쌓으며, 우연히 만들어지는 질감 위에서 연습 없이 곧장 그리는 방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 P155

인정이 목마른 사람에게 "왜 이렇게 남을 신경 써? 자기만족이중요하지"라는 말은 도덕 교과서처럼 들린다. 올바르지만 죽어있는 말이다. 타인의 관심에 완벽히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인정 갈망과 자기 수용의 적정 비율도 없다.
균형점은 결국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 P143

유년기에 읽은 책 몇 권에 대한 기억은 평생 가요. 이렇게 생각하면 그림책 작가는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영향력에 비해 진지한 예술가로 인식되진 못하는 것 같아도 이 점이 아쉽진 않나요? - P125

실패, 거절, 상처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고생각하시나요?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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