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에서 산 옷은 아무래도 마리한테 어울리지않았다. 마리는 관측을 마치고 들어올 때마다 로비의 거울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다. 혼자 재난물에 출연하는 사람처럼 불쌍해 보였다. 외국인이유난히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 돈이 없어서이기보다는 어디서 무슨 옷을 사야 하는지 적응을못 해서일 때가 많다. 본인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아니었던지, 자꾸 동료들이 회식비를 빼주거나덜 받았다. 마리는 옷을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P60

"여기 높아, 배고파?"
배고파서 이렇게 높이 온 거니, 하고 묻고 싶었지만 마리의 한국어는 짧았다. 재인 씨와는 잠깐잠깐밖에 못 만났고 향수병도 도져 마리는 조금외로웠다. 숙소에 동물을 들이면 안 되지만 수건 - P62

늦봄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소백산에서는아니었지만 돌아가 소행성을 하나 발견했다. 반점 같은 크레이터가 많은 소행성이었기 때문에,
마리는 ‘살쾡이 클레어‘ 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이름의 기원을 아는 사람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마리와 마리의 친구들만 알고 부른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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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부진하게 ‘플랜‘에만 머무르던 때라 초조함도 늘어갔다.
23번 버스를 몰며 시를 쓰고 삶의 밸런스를 훌륭하게 유지하는<패터슨>2016의 패터슨 씨(아담 드라이버)처럼 매일의 반복이일상의 루틴이자 시가 되는 삶이었으면 좋았겠건만. 나는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간을 향해 계획표를 짜는 것이 그렇게갑갑할 수가 없었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퇴사했다. - P59

하지만 엄마는 사람의 가슴을 손으로 갈라서 심장을 빼는 장면이 있는 영화를 아이와 보러 가야 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 P69

어느 날 <주말의 명화>에서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로렌스〉1962를 방영했다. 세 시간이 넘어가는 그 영화를 나는숨도 쉬지 못하고 봤다. 갑자기 주인공이 촛불을 불어서 끄자사막의 여명 장면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깨달았다. 이것이 영화구나. 이것이 편집이구나. 촛불을 불어서끄는 장면 뒤에 사막 장면을 이어서 붙인 것이구나. 세상에서가장 위대한 비밀을 알아챈 것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순간에 나는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겠구나. 마침내 나에게는 꿈이 생겼다. - P72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내 아빠(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으므로 아빠라고 적는다)는 클래식마니아였다. 우리가 가곡이라고부르는 음악도 좋아했다.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음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뽐낼 만한 가창력을들려주신 적도 없었다. - P73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적어도 당시 내게는 남북통일보다 반청 복명이 더 중요한 화두였다. 영화란 결국 누군가가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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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이 시집 전체가 작게 말하고 있을 뿐, 어떤 시도 직접적으로크게 말하고 있진 않다. 진은영의 정련된 이미지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유와 감정이 들끓고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사유와 감정이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되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다시 맞설 힘을 얻게 된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가졌다.

시인의 말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렸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2022년 8월진은영

그러니까 시는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 P10

나는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놓을 겁니다 - P15

ㅇ오늘은 나도 그런 노래를 부르련다비좁은 장소에 너무 오래 서 있던 한 사람을 위해코끼리의 커다란 귀같이 제법 넓은 노래를봄날에 죽은 착한 아이, 너를 위해 - P21

사랑의 전문가 - P27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영원히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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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쁨과 긍정의 역량을 갖춘, 그러면서도 그게삶에 대한 기만으로 추락하지 않고 삶을 추동하는 진실한 힘으로 기능하는 문학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요즘 저는 그걸 고민합니다. - P72

저희 집에 쌓인 책…………. 아예 말을, 말고 싶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책무더기를 보고 한숨을 쉬고, 한밤에 잠을 자기위해 불을 끄며 저를 둘러싼 책무더기 때문에 또 한숨을 쉽니다. 읽은 책은 버리는 게 원칙인데도, 읽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제 꿈은 책 없는 곳에서 음악을 듣는것입니다. 그런데 책이 있으니 음악을 들으며 책을 뒤적이게됩니다. 화장실에 갈 때 책을 들고 가는 사람이 있지요. - P83

영화를 보는 데 두 시간을 바쳤으니 본전 뽑아야죠.
영화를 본 후에 의식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반드시 영화를 모시게 되죠. 이건 제가 문학주의자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시작부터 문학을 의심했어요. - P93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걸레는 겨울에는 꽉 짜야 하고, 여름에는 물기를 좀 남겨둬야 한다." 여름에는 물기가 금방 증발하니까요. - P95

약좀 주소약 좀 주소신약 좀 만들어 주소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가먹었던 그런 시시한 약은 말고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아나는 약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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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길도 없이 달려올 때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려주었지 - P25

놀이를 하기 위해 억지로 눈물 흘린 적은 없었지만 눈물을그치기 위해 이 놀이를 하던 때는 있었습니다. - P13

온갖 무렵을 헤매면서도멀리만 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그 끝에서 우리는우리가 아니더라도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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