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냐?" - P170

동걸은 도로변에 서서 선주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냉랭해진 분위기가 마치 나 때문인 것 같아 나는 시선을 둘 곳을알 수 없었다. - P171

"참 건실한 사람이죠?" - P172

"동걸 오빠는 동주 오빠가 저렇게 된 후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조급해하고 종종 무섭게 화를 내고, 누구보다도완전하게 살려고 해요, 내가 보기엔 마치......" - P175

동걸은 자신의 인생 전부를 오래전부터 배신하고 있었던것이다. - P175

나는 열차를 탄다. - P177

"어디까지 가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동해까지 가요."
"동해에는 뭐가 있습니까?"
"항구가 있어요."
"큰 항구인가요?" - P180

동걸아 이것 봐라.
나는 창밖의 어둠을 쏘아보았다.
나는 바다로 간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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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의 이혼 절차가 모두 끝난 날 엄마가 사 왔던 꽃다•발의 색깔 같은 것들을. 그러자 엄마는 대답을 하고•난 뒤 씩 웃으며 덧붙였다고 했다. ‘근데 참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니?‘라고. 엄마의 크로노스를 절대로 만날 생각이 없었던 나도그 말에는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나도 나지만 너도•너다‘는 엄마의 말버릇 중 하나였다. 엄마의 치매가심해진 이후로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지만 - P28

그러나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다짐 앞에 ‘절대로‘
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붙일수록, 그것을 어기는 일이쉽고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해 놓은 말이 무색하게도, 내가 엄마의 크로노스를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고작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일이었다. - P31

"한번 해 두면 또 얼마나 요긴하니. 봐, 너도 결국고민 있으니까 이렇게 엄말 찾아왔잖아. 안 그래?"
다음 순간, 나는 허공에 대고 눈을 부릅떴다. - P37

그러나 이 익숙한 동공 너머에 있는 것은 도대체누구일까. - P37

"하나는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 거,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에 있는 할머니 거래." - P46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건 뭐니 뭐니해도 해파리를 오랫동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관람객이 아무도 없는 시간에, 가까이 찰싹 달라붙어 내키는 만큼. - P57

하지만 나는 그것만은 정말로 할 수 없다. 아니 뭐눈 딱 감고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금세 지치고 질려서 그만두고 말 것이다. 또다시 잔머리와 재기발랄한 꾀만 믿고 요령을 피울 것이고 도망칠 방법만 찾다가 바늘구멍만 한 틈을 발견하면 쏙 빠져나갈 게 틀림없다. - P71

성재가 떠났다.
내게는 텅 빈 집과 아픈 고양이,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이 남았다.
남은 사랑을 팔기로 한 것은 그래서이다. - P81

"그럼 그 적합도라는 게 팔십 퍼센트에 못 미치면어떻게 되나요? 그런 경우가 많나요?
"네. 꽤 있어요. 감정이라는 게 단순하게 ‘사랑‘ 혹은 ‘용기‘ 같은 단어로 뭉뚱그려 놓으면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 조사해 보면 그 종류가 다 다르거든요. 어느 정도 결이 같은지를 조사해서 기준치에 못 미치면•전이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불가능하다기보단 소용이 없어요."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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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옵니다.
그 이유는,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 P73

아직도내가 낯설어하는 내가 더 있다. - P75

걸터앉아 있는 길의 끝을 치우고접이식 침대를 펴고 텔레비전을 켜고나는 나를 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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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영원할 것처럼
서유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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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의 정수가 담겨 있다. 한국 단편 문학을 읽는 즐거움도.함께. 바다를 앞에 두고 빨래를 개고, 시간을 돌이키며 맥주캔을 따고 노을을 보면서 새 단어를 외우는 일이 사무치게 스며드는, 누군가의 삶에게 보내는 이야기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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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평상에 앉아서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 P129

평상에 앉아 비를 피하던 두 사람은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남자가 비 맞으며 파도를 타면 시원하고 좋다며 여자를 설득했고 여자는 비 오는 바다에 왜 들어가느냐며 앉아서 구경이나 하다 가자고 했다. - P133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방수팩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니던데. 물속에서도 사진을 찍겠다고 요란을 떠는 것도 보기 싫었지만 희영처럼 아무준비 없이 다니는 것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 P135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면서 진은 아직도 인생에 예측 불가능한 일이 많구나, 생각했고 남은 인생에도 그런 일이 불쑥 찾아오겠지. 그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짐작해보았다. 매번 새롭게놀라고 인생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걸 다시 깨닫게될까. - P136

진은 집을 내놓고 같은 아파트 단지의 작은 평수 집을 보러다녔다. 희영의 동네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오래 살아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길, 늘가는 시장과 마트, 세탁소, 목욕탕, 병원이 있는 삶의 반경을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살 자신도 없었다. 그때 진의 나이가 쉰아홉 살이었다. - P149

-할머니, 여기 조개 많아.
손녀가 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진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이렇게 커서 말도 잘하고 물놀이도 야무지게 즐기는지. 손녀를 보면 세월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쌓인다는 게 느껴졌다. - P154

진은 자신도 모르게 더 큰 파도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젖은옷으로 어떻게 호텔로 돌아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했다. - P157

그러면서도 샤워를 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벗은 몸을 보면 낯설었다. 어떤 날에는 사십대 후반이 혼자 보내기엔 너무 젊은 나이인 것 같았지만 실은 대부분의 시간을 늙은이의 마음으로 살았다. 진은 인생의 다른 가능성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때 동창에게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끔 생각해봤지만 그런 미래는 진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이라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미지의 영역으로 가보려는 사람들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건지, 진은 늘 궁금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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