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평상에 앉아서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 P129
평상에 앉아 비를 피하던 두 사람은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남자가 비 맞으며 파도를 타면 시원하고 좋다며 여자를 설득했고 여자는 비 오는 바다에 왜 들어가느냐며 앉아서 구경이나 하다 가자고 했다. - P133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방수팩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니던데. 물속에서도 사진을 찍겠다고 요란을 떠는 것도 보기 싫었지만 희영처럼 아무준비 없이 다니는 것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 P135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면서 진은 아직도 인생에 예측 불가능한 일이 많구나, 생각했고 남은 인생에도 그런 일이 불쑥 찾아오겠지. 그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짐작해보았다. 매번 새롭게놀라고 인생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걸 다시 깨닫게될까. - P136
진은 집을 내놓고 같은 아파트 단지의 작은 평수 집을 보러다녔다. 희영의 동네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오래 살아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길, 늘가는 시장과 마트, 세탁소, 목욕탕, 병원이 있는 삶의 반경을벗어나고 싶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살 자신도 없었다. 그때 진의 나이가 쉰아홉 살이었다. - P149
-할머니, 여기 조개 많아. 손녀가 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진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이렇게 커서 말도 잘하고 물놀이도 야무지게 즐기는지. 손녀를 보면 세월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쌓인다는 게 느껴졌다. - P154
진은 자신도 모르게 더 큰 파도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젖은옷으로 어떻게 호텔로 돌아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했다. - P157
그러면서도 샤워를 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벗은 몸을 보면 낯설었다. 어떤 날에는 사십대 후반이 혼자 보내기엔 너무 젊은 나이인 것 같았지만 실은 대부분의 시간을 늙은이의 마음으로 살았다. 진은 인생의 다른 가능성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때 동창에게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끔 생각해봤지만 그런 미래는 진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이라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미지의 영역으로 가보려는 사람들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건지, 진은 늘 궁금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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