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야. 비가 그쳤으니 다시 무더워지겠지. 여름 속으로들어간 아이야. 얼마 전 네가 있는 곳에 다녀왔어. 나오는데화단에 불두화가 피어 있더라. 머리를 숙여 나에게까지 닿을것 같았어. - P64

두통이 심해서였을까. 꾸지 않던 꿈을 다시 꿔서였을까.
가깝다고 느껴졌던 게 모두 멀게 느껴진다. 무엇도 가만히있는 나를 구원하지는 못한다. 스스로 결심하지 못하면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은 가만히 겪는 계절. - P108

그것은 트럭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매일 많은 시간을 써도 견딜 수 있다고. 그러니 부디다정하라고. 프라이탁은 당신의 진정한 스위스 친구가 될거라고. 겸손하고 믿을 수 있는,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는그런 친구가 될 거라고. - P167

어떤 시간은 내내 닿을 수 없을 것 같고어떤 시간은 곧장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두 마음이 가장 많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언젠가 다시 가 볼 수 있을 것 같고다시는 가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맘때였지. 그곳엔 미리 첫눈이 내릴 텐데. - P182

눈이 내렸다. 파리에 폭설이 내렸다. 참 드문 일이다. - P183

스스로를 잘 대접해야 할 때가 있다. 병원에 다녀온 후 뭐든조금씩만 하고 있다. 조금 기쁘고 조금 움직이고 조금 슬프게된다. 싫지만 그렇게 해야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미루고 어제 오늘을 쉬었다. 스스로를잘 보살펴야 폐를 끼치지 않게 된다. 많은 잠을 잤고 두어수저 먹던 아침을 한 그릇 다 먹었다. 혼자 있을 땐 소서 없이먹던 에스프레소를 손님에게 내어 주듯 소서에 두고 마셨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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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에게 폐를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의사는 손바닥을 펴서 문 쪽을 향해 뻗었다. 단호한 손짓 때문에 유림은 자기도 모르게 우물쭈물 일어났다. - P49

"이름을 알아듣는 건 사육되는 동물뿐이래. - P69

지은이 신호를 보냈다. 나는 프레임을 들고서 살금살금 복도를빠져나왔다. 지은이 손짓을 했다. 출입구로 다가가 관리실 안을들여다봤다. 관리인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합판을 한 장씩 운반했다. 합판을 두 장째 운반했을 때 관리인이 깨어났고, 나와 지은은 관리인이 다시 잠들 때까지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 P77

선생들은 각자의 찻잔을 향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왜 있잖아요. 그 선생."
선생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 P33

함박눈이 다시 쏟아졌다. 발자국이 차츰 모습을 감추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린 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인파를 뚫고 기열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 P27

"이리 줘."
나는 대걸레를 더 꽉 움켜쥐었다.
한 달간 대안교육센터에 가서 교육을 이수할 것을 지시받았다.
학교를 떠나기 전, 교무실을 찾아갔다. 선생들은 뜨거운 차를 손에 들고 둘러앉아 있었다. 담임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병이 든 애예요. 걔를 만나러 가다가 친구가 죽었어요. 죄책감이들 만하죠‘
담임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돌아섰다. 복도가 유난히 좁아 보였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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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어렴풋이
신유진 지음 / 시간의흐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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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토록 매일 마음의 창을 열어 서로에게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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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이 증상이 처음 발현한 것은 십여년 전, 파리에서였다. 태어나서 처음 마련한 나의작은 집, 아니 작은 방에서. - P154

떠나기 좋은 불면의 밤, 이제 나는 활자를 밟으며뉴욕으로 간다. 지금 내게 책은 길이다. 잠 못 드는도시, 인섬니악 시티로 향하는 길. - P156

창밖의 풍경은 하나도달라지지 않았는데 내게는 없던 이야기가 찾아왔고,
그 이야기 안에서 나는 조금씩 그 너머의 삶을 살아볼수 있었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창조된 인물들을통해서 낯선 이들의 감정을 대신 느껴보기도 했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혼자서 이상한 우정을 키우기도했다. 시야가 아주 조금 넓어졌다. 경계가 확장됐다.
타인의 삶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이 창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 변화였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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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미래를 고대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생각될 때도 때론 있다. 그럴 땐 허리를 펴고 서서 미래의 길이를 조금 더 늘려본다. 한 시간의 미래, 두 시간의 미래, 그것도 아니라면 하루라는 미래. 이제 민준은 통제 가능한 시간 안에서만 과거,
현재, 미래를 따지기로 했다. 그 이상을 상상하는건 불필요하다고느낀다. 1년 후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를 알 수 있는 건 인간능력 밖의 일이니까.
리고 - P279

다시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가는 승우의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그가 문을 열고 나가자 영주가 힘이 쭉 빠진 듯 의자에 털썩않았다. 민준은 그런 영주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 P289

"영주야."
"응."
"그땐 미안했어." - P298

어쩌면 지금껏 눌러두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기에 여전히 그녀 안에 그 모든 것이 고여 있는지도 몰랐다. 앞으로는 흘려보내야 할 것이다. 다시 얼마간 울어야 한대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과거를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내다 이젠 과거를 떠올려도 눈물이 나지 않게 될 무렵이 되면, 영주는 가볍게 손을 들어 그녀의 현재를 기쁘게 움켜쥘 것이다. 더없이 소중하게 움켜쥘 것이다. - P301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기는 해요.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다.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된다.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시 기대 ㅇ머 게어요 - P307

"왜 연애하기에 좋은 상대가 아닌데? 똑똑하지, 농담도 잘하지.
사람 마음 편하게도 해주지, 또 잘난 척은 좀 잘해? 이것도 몰라요,
저것도 몰라요, 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매력적이야, 그거!" - P337

휴남동 서점을 운영하면서 영주는 늘 테스트셀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곤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 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번 테스트셀러에 오르면 계속 베스트셀러로 남는 현상이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베스트셀러라는 존재가 다양성이 사라진 출판문화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 P357

그러다가 책을 덮고는침대에 누울 것이다. 영주는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인생을 잘 보내는것이라고 어딘가에서 읽은 문구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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