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고 함께하는 사랑이 아닌,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함께하자는 사랑에게

백로 지나 9월 중순인데도 한여름처럼 더운나날입니다. 뜨거운 햇살과 더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왔습니다. 사랑하는사람이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 P13

마지막을 생각하면 서둘러 오늘이 그립습니다. 미래의 나 또한 지금을 떠올리기 위해 상상의 힘을 빌리겠지요. - P15

첫 산문집이라는 문을 열고 나갑니다.
새하얀 눈이 내려 발자국을 지워주면 좋겠습니다.
걸어온 방향을 몰라 주저 없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 P17

고등학교 1학년 때, 헤일밥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갈 예정이라는, 혜성의 꼬리까지 볼 수 있을 거라는 신문 기사를 봤다.
그 기사를 오려서 벽에 붙여두고 그날을 기다렸다. 내 방 창문에 기대어 서서 며칠 동안 혜성을 봤다. 정말 꼬리까지 보였다. - P33

그저 그런 친구로 남을 수 없다는 마음. - P35

그때 너를 봤어. - P35

친구는 이유 없이 새벽을 걸어와 눈부신 아침을 선물합니다.
나는 이유 없이 저녁을 걸어가 어두운 밤을 보여줍니다.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꽃을 선물하면 그저 받고시들어가는 꽃을 가만히 품어봅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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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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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너무 기대했던 책인데 책이 아주 예쁘게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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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자주 나오지만 답하기 어려게 된다.
운 대표적인 질문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느냐‘가 있다.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실제로는 몇 초 안 되는 시간이었겠지만 장내의 모든 사람이 내 입만 쳐다보고있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몇 초는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 P90

이러한 음악을 북디자인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은 둘다 오래전에 결정된 형식의 반복과 변주를 지속해왔다는부분 때문이었다. 물론 책의 역사에도 기술의 발명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고, 때로는 변주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혁신과 비약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결과로 빚어진 차이는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지 않는이상 좀처럼 감지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점 또한 두 분야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 P95

왼끝맞춤과 양끝맞춤 간의 논쟁은 20세기 초 유럽에서시작되었다. 둘의 관계에서 ‘대세‘이자 표준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양끝맞춤으로, 왼끝맞춤은 양끝맞춤의 단점이 극복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합리적 형태로서 제시되었다. 왼끝맞춤 지지자들이 주장한 왼끝맞춤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양끝맞춤은 동일한 글줄 길이를 달성해야한다는 목적으로 단어들을 양쪽 축에 붙이기 위해 억지로잡아 늘려서 글자 사이 간격이 고르지 않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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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르려고 카페 사진들로 시선을 돌렸다. 여름의 느릅나무가 마치 코끼리 귀처럼 널찍한 잎을 역동적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삼우씨가 책자를 가져가라고 부탁했다. - P278

"유화 언니 소식도 아세요?"
"걔 영화기자 됐잖아. 이따금 별점 주는거 읽어보는데,
그때 성격 그대로더라. 무슨 블록버스터 영화에 ‘이럴 돈있으면 인류의 가난을 구해라‘라고 썼더라고." - P281

아주 오래된 우편 소인이 찍힌 그 엽서는 도쿄의시미즈 코하루(小春)라는 사람이 보낸 것이었고 받는사람은 기노시타 코주였다. - P283

"변해요, 만물이 다 변한다니까요. 멀쩡하게 지어놓은집도 무너지는 판에 사람 마음이야 시시때때로 변하죠." - P285

"당신은 마리코에게 보게 해서는 안 되는 장면을 보게만들었더군요." - P291

"아이고 그러다 목숨까지 빼앗기게요. 여자들 좋은 세상은 없는 거예요. 양반 가니 일본놈 오고 그게 가니 미국놈이랑 소련놈이 오고, 그다음에는 뭐가 올지 나는 이제궁금치도 않아요." - P293

"저희 집에도 조선인 네에야가 있었어요. 다정했죠."
여자가 마리코와 두자를 번갈아 보더니 아련한 추억에잠겨 말했다. 둘의 관계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두자가용무를 다 끝냈다는 듯 두루마기를 챙겼다. - P299

수리를 통해 보강되어가는 대온실처럼.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완성하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 P300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래?"
순신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으므로 나도 다른 인사는 모두 생략하고 그렇게 답했다.
"네가 돌아왔다고." - P307

"기노시타!"
정원을 걸어나오는데 이창충이 그를 일본 이름으로 불렀다. 고드름이 맺힌 대온실 처마 밑에 선 이창충은 그 순간만은 옛날의 마사시처럼 보였다. 나는 부모와 다른 오니 아이, 도깨비다 하던 마사시처럼. - P311

"그럼 하느님이 칭찬하셔?"
"침묵하지, 기도는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하는 거니까." - P318

"누구시죠?"
"나야 리사." - P333

"왜 그런 나쁜 생각만 해요? 오늘 청혼받은 사람도 있을 텐데."
"시체 되는 거랑 뭐 그리 다르지 않네요."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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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에 가까운 그 냄새로 흰 것은 가장희게 되고 깨끗한 것은 가장 깨끗하게 된다는 사실이잘 믿기지 않았다. - P173

나는 바짓단을 털어주며 말했다. 산아는 아주 어렵게세상에 나왔다. 팔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것이다. 출산한 은혜를 보러 갔을 때 너무 작고 발갛던 산아가 떠올랐다. 그때 이미 남편과 시댁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던 은혜는 달이 안 찬 아기라고 안아보지도 않고 횡하니 병원을 나가던 남편을 욕할 의욕도 잃은 상황이었다. 그런 산아에게 바다처럼 큰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고여 있는물웅덩이가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생생히 사는 마음이. - P181

"사람들은 어쩐지 자주 보는 건 결국 싫어해. 마음이 닳아버리나봐."
"건전지예요? 닳게?" - P180

영국의 하이드파크, 큐가든, 프랑스의 베르사유정원 등지를 돌며 거기 심긴 장미와 인도철쭉까지 소중히 기록했던 그이지만 미국에서는 센트럴파크의 나뭇잎 한장 기록하지 않았다. 마치 미국의 어떤것이 옮겨올까 저어하는 결벽주의자처럼 대부분의 여정을 기록에서 건너뛰었다. - P187

"내가 만약에 네 앞에서 단무지를 먹으면 헤어지자는신호인 줄 알어. 난 그만큼 그게 싫으니까." - P195

‘노력하지 않는 거지. 노력하면 왜 안 돼, 변명이지."
‘운 좋은 사람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 P201

"너 사과 잘하니?"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리사는 그렇게 말했다.
"가서 사과해. 미안해, 한마디면 된다더라." - P205

"당연히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랑씨는 내 질문에 가장 현명한 대답을 해주었다.
"어떤 경우든 공간이 사람과 연관되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요." - P209

순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머리는 왜 자르고 나타났냐고 대체 왜 이러느냐고 자기가 뭘 잘못했느냐고.
그때 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지 못한 일을 나는 오랫동안 후회했다. - P222

150마리의 동물을 처리하는 데는 독살, 교살, 액살, 척살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결과적으로 해방이 될때까지 경성에 미군 폭격이 없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더한스러운 참상이었다. - P235

"왕주무관은 그냥 먹든가 개인카드를 쓰든가 하면 되지, 뭘 장급처럼 몸을 사려. 계속 승진해서 3, 4급까지 갈거야? 아니잖아. 요즘 세대들 공무원직에 오래 안 붙어 있거든." - P243

"한옥 대문에? 유리 손잡이를?" - P250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산아는 왜 옛날이야기들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지 모르겠다고, 역사책 읽을 때마다 해피엔드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 옳은 말이라서 또다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같았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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