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을 배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생각을 멈추는성공한 적 없었으나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노인들의 운동이라고 우습게 여겼던 ‘기‘라는 단어가프랑스어로는 ‘l‘énergie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란 나이가아닌 삶을 향한 육체적, 정신적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 태도가 나이를, 외모를, 스펙을 이긴다는 것. - P20
막이 오르기 직전에 심호흡을 하고 기도하는 곳. 한 걸음 나아가면 탄생하고, 한 걸음 물러나면 무릎가 되는자궁이자 무덤. 요즘 나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그곳을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가 그곳인지도 모르겠다. - P31
글을 쓰는 삶을 산 이후로 나의 오랜 두려움은 목소리를 잃고 길을 잃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두려움 때문에 번역을 시작했던 것 같다. 다른 작가들의 목소리를조금 더 가까이 들어보고 싶어서, 할 수 있다면 그것을내 안으로 옮겨 오고 싶어서. - P33
글쓰기가 문장을 무덤 속에 파묻으며 언젠가 그것이 집이 되기를 희망하는 일이라면, 번역은 누군가 단단하게 세운 집을 부서뜨리고 그것의 잔해를 옮겨 와 재건하는 일이다. 부서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 P3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민자들이 각기 다른 억양으로래하듯 프랑스어를 말할 때, 외국인들끼리 완벽하지 않은 프랑스어로 서로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쓸 때, 가장간소한 말로 더듬더듬 사랑을 고백할 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 P38
예를 들자면 그에게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는 것이아니라 ‘사랑사랑‘ 분다. 물론 연속되는 ‘ㄹ‘ 발음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봄바람이 주는 설렘과 사랑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사랑사랑 부는 바람이싫지 않아서 얄궂게도 고쳐주지 않는다. - P43
여름밤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다. 더위에지친 하루도, 어쩐지 소원해진 우리 관계도, 거기 찰싹붙어 있는 그 커플도, 싸구려 술잔도 모두 쨍그랑. 내가프랑스에서 살며 18년 동안 깨부순 푀르식틱트 유리잔을 쌓아보면 작은 무덤 하나는 나올 것이다. - P55
잔은 액체에 형체를 만들어주고 형체는 감각을 부여한다. 그리고 감각은 구체적인 기억을 남긴다. 나는 잔을 쥐고 있던 손과 살포시 포갠 손, 잔에 닿았던 입술과잔을 채우던 숨과 내게 와 닿았던 입술을 기억한다. 그짧고 짙은 숨의 온도를. - P59
"역시, 내 꿈은 정확해!" 엄마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꿈조차도 ‘좋은 쪽‘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나는 그런 엄마가 귀엽고, 귀찮고, 또 그런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 P64
"Girls, Did you shop at H&M얘들아, H&M에서 쇼핑했니?" 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잊히지않는 청춘의 한 장면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때 막연히내가 가장 젊은 순간을 살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 P79
"그럼 시간을 믿어봐. 시간이 자네 편인 날이 와. 시간이 자네의 힘이 되는 날이 온다고."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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