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모두 당신 편지를 좋아하고, 어떻게 생긴 분인지 상상해보곤 해요. 저는 당신이 젊고 아주 세련되고 총명할 거라고 생각해요. ‘노‘마틴 씨는 당신이 멋진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지만 좀 학구적으로 생겼을 거라고 그래요. 사진 한 장 보내주시지않겠어요? 한장 있었으면 좋겠어요.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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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하고 영리한 권력자는 위기에 봉착하면 위선을떨며 타협하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권력자는 그마저 못한다. - P31

부족함을 모르면 학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비속함을 인지하지 못하면 비속함을 극복할 수 없다. 모든 일을 현재수준에서 판단하고 실행하면서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 P33

진보 정치는 더 큰 위험이 따른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을 생각해 보라. 노무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이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내놓았다. 나는 어느 시민의 블로그에서 본 문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사람‘ 이해석이 노무현의 선택을 모든 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나는 받아들였다. - P37

2022년 3월 9일, 한국 유권자는 위선‘이 싫다고 악을 선택했다.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악인 줄 알고도 선택했다는 말은아니다. - P39

보수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뉴스를 보면 자신에게 이익인지 여부를 먼저 생각한다. 진보는 그 정책이 옳은지여부를 먼저 생각한다.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쪽이 좋다거나 나쁘다는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 P41

완벽하게 훌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조롱당해야 한다면, 조금의 약점만 드러나도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죽음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감히 진보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 P43

민심은 움직인다. 민심 변화는 ‘유권자 이동성(mobility)‘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권자 이동성은 정부에 불만을 느끼는 유권자가 야당 지지로 옮겨가는 정도를 가리킨다. 유권자 이동성이 매우 낮으면 정당은 국민을 무시해도 된다. 낮은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정책을 혁신하지 않아도되고 다른 정당과 타협할 필요도 없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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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지난번의 푸른 신호가 다하도록 중앙선까지밖에 걸어올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는날씨에 걸맞지 않은 겨울 털점퍼에 투박하고 빛바랜 군청색기지바지 차림이었다. 목발을 짚은 왼쪽 바짓가랑이는 무릎위까지 비어 있어서 황사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대로 펄럭거리고 있었다. - P101

아주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그날 이사하던 집의 젊은 가장은 지난해 여름밤 중형 승용차를 과속으로 몰고 가다가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한 쌍의 젊은 부부를 치었다고했다. - P103

사내가 목발을 짚은 모습으로 그들 식구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내는 놀이터로 찾아와 그 집의 두 아이들이노는 모습을 노려보았으며, 그의 음산한 응시는 아이들이 공포 때문에 놀이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되었다. - P103

"없소."
"그래두 전에 쓰시던......"
"모두 불태웠소." - P105

승용차가 출발하자 트럭들도 뒤따라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떠났다. 이제 널따란 아파트 광장에는 쓰레기 봉지들과 종이조각들만 차가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사내는 뿌리만 박힌 채 몸뚱이는 잘려져 나간 고목 등걸처럼 광장 구석에 붙박여 서서 모두가 떠나고 남은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었다. - P106

"간단한 거요......! 나한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집을 이제그쪽에게 줄 테니 받아달라는 거요!" - P110

활짝 열어놓은 유리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마치무덤 같았다. 밤 불빛들은 그 무덤에 함께 순장된 값싼 보석들처럼 보였다. 햇빛 아래 그토록 무덥고 요란스러웠던 도시, 숱한 싸움과 음모와 만남들이 끓어넘치던 서울은 석관(石棺)과도 같은 서늘한 어둠 속에 길고 나른한 육체를 누이고 있었다. - P111

"저 방에서, 저 불빛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오?"
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명환은 꿈꾸듯이 아파트의 불빛들을바라보았다. 담배 연기는 어둠 속에 풀어져 가느다란 물줄기처럼 명환의 상반신을 휩싸고 있었다. - P114

멍청스러운 미련이란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아무것도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한다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라도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불분명한 용기였다. - P116

"이만큼만, 꼭 이만큼만 삼키다가 뱉어놓았소. 아마......"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만큼만 삼켜놔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소." - P121

시간은 더디 흘렀다. 동녘 하늘에서부터 새벽이 희부윰하게 동터오기만을 기다리며 나는 명환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넓은 방에서, 가구 하나 들여놓지 않은 채, 불도 한번 켜지 않은 채 뒹굴며 살아왔던 명환을 생각했다. 명환의 방에서부터헤엄쳐 온 어둠은 술렁거리며 내 베란다 문을 두들겨댔다. 어둠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뽑혀 나간 인숙언니의 치렁치렁한머리채 같았으며, 뱃속에 명환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는 얼굴모를 여인의 하혈(下血) 같았다. - P125

"오늘 아침에 떠나요."
"다들 가는군."
잠시 정적이 흘렀다. - P130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서서 당신의 불 꺼진창을 노려보았던 것인가. 어째서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불빛들을 바라보았던 것인가. 어떻게 살아 있는 동안 빈손이 될수 있다는 말인가. 이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한 어떻게 완전한 빈 몸뚱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 P132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없어."
명환의 음성은 불분명하게 잦아들어갔다.
"…………너도 마찬가지야. 나를 도울 수 없어." - P135

눈물이 뜨겁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처럼나는 진저리를 쳤다. - P139

"제천에서부터 태백선(線)을 타고 산맥을 넘는다. 마침내 기관차가 어둠을 뚫고 새벽에 이르면 동해(東海역에서부터 바다를 보며 달린다......" - P147

적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날카로운 발톱을 타고난 탓에아무것에나 쉽게 상처를 입히는 맹수처럼, 동걸의 눈에서는사람을 두렵게도 하고 매료당하게도 하는 야생의 힘이 발산되고 있었다. - P149


나는 외로웠으며 그 얼굴이 어쩐지 그리워졌다. 동걸의 행동은 언제나 거칠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방심하게 하는 따스함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P155

뾰족이 즐겁지 않은 군대 이야기와 지난 시절 이야기, 녀석의 직장 이야기를 근근이 이어가던 우리는 종종 깨진 병 조각같은 침묵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곤 했다. 열 시도 되기 전에손목시계를 여러 번 들여다보던 동걸은 그만 일어서자고 말했다. - P157

"동걸이가 친구를 데려온 것은 처음이야."
동걸의 어머니는 내 사과에 답하는 대신 석유곤로에 데운물을 대야에 담아주었다. 내가 얼굴에 비누칠을 하고 물을 비우자 그녀는 빈 대야에 다시 더운물을 부었다. 그리고 손으로온도를 가늠해가며 찬물을 틀어주었다.
어머니.
아직 취중인 나는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P167

"하지만 어머니도 동걸 오빠도 희망을 버리지 않아요. 어쨌든 동주 오빠는 살아 있으니까요. 유일하게 포기해야 한다고말하는 사람은 난데" 선주는 손동작을 멈추고 자신이 닦아낸창밖을 우울하게 내다보았다. "실은 나 역시 희망을 버리지못하고 있어요." - P175

떠나리라는 것 때문에 동걸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강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탈출로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켜줄 야간열차가 있으므로 그는어떤 완성된 인생도 선망할 필요가 없었다. 살아가며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오욕들에게도 그는 무신경할 수 있었다. - P175

동걸의 눈가에는 피로가 깃들어 있었다. 선주의 이야기 때문에 생긴 선입견만은 아니었다. 그는 과연 지쳐 있었고 몹시생활에 쫓기고 있었다. 실상은 늘 지어왔을 터이나 다만 실체를 몰랐기 때문에 종종 놓치곤 하였던 동걸의 표정을 나는 이제야 감지할 수 있었다. - P184

"영현아, 오늘 나와 함께 벽제에 가자."
녀석의 목소리는 집요했다.
"안돼 이 자식아." - P191

역 광장은 떠나려는 사람들과 돌아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시계탑 앞에 서서 기다렸다. 내가 놓쳐온 모든 것을 기다리듯이 나는 기다렸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고 다만 경멸하며 흘려버린 젊음을 기다리듯이 묵묵히 기다렸다. 기다림만이 나를 속죄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 P195

나는 객실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엎어지며 다친 무릎과 더러운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비비며 빗발 속에서 춤추는 인가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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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이 흰 철쭉꽃을 피워올렸다. 겨우내 비어 있던 아파트 화단이 빵처럼 부풀어올랐다. 눈이 부셨다. 어찔했다. 꽃멀미 꽃멀미였다. - P40

이토록 신랄하고 적나라하지 않다면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 P43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 P44

천둥

마른 번개가 쳤다.
12시 방향이었다.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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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그것을 미친 여름이라고 불렀다. - P67

이지러진 달의 둥근 면은 핏기 없이 누리끼리했고, 베어져 나간 단면에는 검푸른 이빨 자국이 박혀 있었다. 그 깊숙한혈흔(血)을 타고 번져 나온 어둠의 타액이 주변의 천체들을집어삼키고 있었다. 밤하늘은 온몸을 먹빛 피멍으로 물들인채 낮은 소리로 신음하며 뒤척이고 있었다. - P69

명환의 경직된 어깨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치 오랜 시간 혼자서 굳혀온 음험한 확신이 어깨 근육으로만 집중되어 뭉쳐진 것 같은 뒷모습이었다. - P74

사는 곳과 옷차림이 남루했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비록 눈밭에서 잠들었을지라도 잠결에 흐트러진 의식 속에서는뜨뜻한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희망이어서, 그 솜털 같은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나는 뒤끝이 쓴 행복감에 깔깔한 입맛을 다시곤 했다. - P76

그러던 우리가 친자매와 같은 친밀감을 가지게 된 것은 연탄가스에 함께 중독되고 난 뒤부터였다. 그날 밤 먼저 잠에서깨어난 사람은 나였다. 아랫목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인숙언니의 얼굴을 문턱까지 끌어 올려놓고 부엌으로 나오던 나는축축한 시멘트 바닥에 엎어져 목줄기를 움켜쥐며 토악질을했다. 주인집 현관 돌계단을 어떻게 기어올랐는지, 문을 어떻게 두들기고 도움을 청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 P79

"너한테는 아직도 희망이 많지?"
그러던 어느 날 밤 인숙언니는 누워 있는 나에게 물었다. - P81

"나는 나대루, 갑자기 전세금 마련하느라고 빚까지 얻었다우. 계약 기간이 아직 반년이나 남았는데 말야. 둘이서 급한사정이 있나 부다 했지, 그때 이상하다는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아가씨가 모르는 일일 거라는 생각두 못 했어......" - P85

내 모든 것을 끝장나게 만들어놓았으니, 인숙언니의 인생도끝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숙언니와 함께 보낸 몇 달이모조리 배신을 위한 준비였다고 생각하면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한 인간에게 살의를 느꼈다. - P87

승강기가 내려오지 않으면 차분히 가방을 대각선으로 둘러메고 계단을 밟아가기 시작했다. 싸늘한 난간을 오른손으로짚으며, 구부정하게 허리를 수그린 채 오르다가 층계참의 창문 앞에 멈추어 어둡고 적막한 아파트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십삼층까지 다다르고 나면 마침내 초인종을 눌러야할 철문이 거기 있었다. - P89

내가 강명환이라는 사내를 만난 것은, 그렇게 삼월이 가고,
황사 바람에 뒤섞여 우박 같은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나부끼곤 하던 사월의 일이었다. - P97

You are like a flower that grows in the shade; the gentle breezecomes and bears your seed into the sunlight, where you will liveagain in beauty.*너는 음지에서 자라는 꽃과 같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네씨앗을 햇빛 속으로 나를 것이니, 너는 그 햇빛 속에서 다시 아름답게 살게 될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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