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은사님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산사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다 내 생각이 나셨다고 했다. 3월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수필 공모전에 내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매우 기뻤다는 내용이었다. - P99

"나도 만들어보자!"
"아니다. 박사는 감독이나 하면 된다." - P92

찜솥이 덜그럭덜그럭 끓으며 김을 뱉어냈다. - P92

"언니는 후회 같은 거 없어?" - P93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또 순찰차 앞에서 곡예운전을•시작했다. 경찰들은 본척만척 다가오지도 않았다. 곧 자정이었다. 반대편 차선도 우리 뒤에도 어둠만 따라붙을 뿐 단 한 대의차도 보이지 않았다. - P114

가을밤이면 나는 그날 밤을 떠올린다. 창으로 쏟아져드는가을바람의 냄새를, 엄마와의 늦은 밤 드라이브를. 그것은 오래된 영화처럼 멈춰선 시간의 그리움이다. - P115

노인의 집은 마을 입구 첫번째 집이었다. 붉게 녹슨 철 대문앞에 노인을 내려주었다. 노인이 내 티셔츠 자락을 붙들며 들어가 찬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 잡았다. 나는 되었다 손사래치고 돌아섰다. 페달을 힘껏 밟아 속도를 냈다. 덥지만 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이 기분을 가볍게 만들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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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복수는 모욕을 주는 것도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를 동정하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 P77

"이번에 헤어지면 다음 색시는 노인요양원에서 찾아야 해!
알고 있지?" - P77

"나는 내 어깨와 두 팔이 기특해요. 여태껏 두 다리의 역할까지 도맡아냈잖아요. 고장날 때가 이미 지났는데 통증이 없으면 내 욕심이죠."
그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 P81

"박사야! 나는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이방인이다. 내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었어. 근데 조선족이라는 이유로높은 자리에서 늘 미끄러지셨지. 내 오빠도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어. 근데 공군 시험을 보면 늘 낙방이 돼버리는 거야!
항의하면 너희는 진짜 중국인이 아니고 조선 사람이잖아 하고차별을 당했어. 한국에서는 또 우리 보고 중국인이래. 이래저래 우리는 이방인이야.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고 살아야하는 거야!"
그날 자신을 이방인이라 말하던 언니 목소리가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선 허수아비처럼 고독하게 느껴졌다. - P91

"울 정도의 맛이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히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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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불꽃 속에둥근 적막이 있었다.
2013년 11월한강

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버리고 있다고 - P11

더 캄캄한 데를 찾아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 P15

간 불덩이 같은 해가하늘을 다 웃고 지나갈 때까지두 눈이 돼 씻기지 않았다 - P27

혀가 없는 말이어서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 P51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 P57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어떻게 해야 하는지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괜찮아 - P76

왜 그래가 아니라괜찮아.
이제 괜찮아. - P77

회복기의 노래

이제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 P80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 P81

죽는다는 건마침내 사물이 되는 기막힌 일그게 왜 고통인 것인지궁금했습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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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 자기소개 해 주세요. 저는 우도에서 나고 자랐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모두 우도에 사셨고요. 중학생 때까지우도에서 있다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제주시로 나왔어요. 뭍(시)에 있는 사람들은 저한테 유학 왔다고 말했어요. - P145

애초에 엮이기 싫다. 그죠. 복잡해지기 싫은 거예요. 단순해지고 싶어서 왔으니까요. 그래도 사는 동안 교류하고 다가가지않으면 어려움이 있어요.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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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떨어진 곳은 의자 위. 앞에는 테이블. 머그컵이 있다. 쿵. 머그컵 안엔 아무것도 없다. 쿵. - P55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으므로. 그런 것을 마음에들어 했지, 피곤해 보이는 서로의 얼굴 같은 것을. 힘없는걸음을. 화를 참는 모습을. - P57

실종된 사람이 늙지도 않고 돌아온 아침엔 그것을 믿는수밖에 없었다. - P59

미래야부르자과거가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왔다 - P64

훈련시킨 과거를 데리고미래를 찾으러 나섰다 - P64

소꿉놀이에서 마네킹 역할을 맡아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조금 견뎌보았다 - P75

주머니 속에서 어떤 손을 잡았다.
그것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선생도 신도 아닌시를 쓰게 될 중학생의, 미래의 손.
하지만 지금 이 시에는 시인이 등장하지 않고주머니 속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중학생이 당신을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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