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목줄을 한 채로 혼자돌아다니는 개를 본 적이 있다. 개는 사람을 피하지도않고, 그렇다고 따라가지도 않으면서 제 갈 길이 있다는 것마냥 알아서 다녔다. - P9

일단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장에서부터 진동이 느껴져. - P11

진짜 신기해.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은 다 말랐어. - P16

어쨌거나 한 반년 동안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처음에는 집 주변만 걷다가 나중에는 먼 곳까지 나가보기도 했다. 걷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로 시작한 고민은 80세 노인이 된 미래까지 갔다가 결국에는 다시 오늘 저녁에뭐 먹지, 하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즈음에는 기력이 떨어져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 P25

치킨집 그날 이후로 나는 태수 형을 만나지 않았다.
내 잘못인가. 난 여전히 그의 그 말이 괘씸하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잘못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 잘못인가. 그렇게 질문이돌고 돌다 보면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든다. - P33

권희진 "모든 이해가 모종의 오해이고 모든 오해가 일종의 이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세 사람을 그리면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 ‘이해‘와 ‘오해‘였거든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생의 과제일 수도 있겠네요. - P45

자기혐오라는 아늑한 둥지에서조차 오래 뭉개지 못했다. 한마디로 나는 집요함이 심각히 결여된 바람에 본의 아니게 속 편히 사는 스타일이었다. - P57

화면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눈을 찌르려고 대못을 들고 설치고, 작은 화면에서는 목걸이로 우울증을 극복・여자가 팔뚝만 한 바늘을 휘휘 돌리며 펜싱의 찌르기 동작을 흉내 내는데, 그런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n&n‘s는 남의 휴대폰을 차마 함부로 끌수는 없어서 대신 베란다에 두고 옴으로써, 천지를 울리듯 노골적으로 들려오는 계시를 모른 체할 수 있지? - P65

결혼 생활 내내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아내가 명하면 남편이 받들었다. 아내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면 남편은 이미 거기가 있었다. 아내가 꿈을 품으면남편이 그 꿈을 거의 낚아채듯 잽싸게 이뤘다. n&n‘s의입술에서는 새로운 소망, 새로운 목표, 새로운 삶의비전이 끝없이 터졌고, 지난 것이 성취되기가 무섭게 새로 돋아나는 그 꿈들을 남편이 미식축구 선수처럼 옆구리에 끼고 세상을 싸돌아다니며 깡그리 이뤘다. - P71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했기 때문에 집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줄 안다. 하지만 의외로 구더기는 의욕이 바닥났을 때가 아니라 다시 막 샘솟을 때 나오기도한다. - P87

‘아가씨!!
이 아줌마야, ‘아가씨‘는 내가 나를 부를 때는 쓸 수있지만 당신이 나를 부를 때는 쓰면 안 되는 호칭이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선물이야. 진짜 보석은 하나도 없지만………… 시집갈때, 예물로 써!‘ - P91

그리고 글을 써나가며 막연했던 화자의이미지가 점점 잡히고, 그에 따라서 이전에 썼던 분량을 계속 수정하는 편입니다. 제가 생각한화자의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작가가 직접 ‘캐해‘(캐릭터 해석)해버리면, 그 캐릭터는 소설을읽는 명이 만들어낼 n개의 색채를 아깝게 잃는것이므로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단, 제 마음속화자는 태평하고 씩씩한 사람이었습니다. - P95

몰두의 영역과 그 몰두가 낳은 괴로운 결과가 있으시겠지요. 좋아하는 것과 깊이 연결되면서도또한 현명하게 연결을 꿇으며 좋은 균형 감각을찾는 것이 저의 한결같은 목표입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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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에 가고, 오다이바에서 도라에몽이랑 사진도 찍고, 하코네 온천도 가자.
-그래, 그래.

규호와 내가 처음 만난 곳은 지금은 망하고 없는 이태원의 한 클럽.

탁음이 섞인 저음의 목소리. 귀여운 덧니를 덮고 있는, 왠지 건조해 보이는 입술. 몹시도 친절해 보이는 그 입술을 가만히 두는 건 범죄나 다름없는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너에게 키스를 해버리고 말았지. 눈빛만큼이나 따뜻했던 너의 혀와 두둑하게 살진 내 혀가 포개지는게 느껴졌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됐으면 좋겠지만, 실은 사랑의 사자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 나는 단지 미쳐 있을 뿐이었지. 너에게? 아니. 너무 많이 마셔버린 술에, 음악에, 정신없이 깜빡이는 조명에,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답답한 공기에,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의 불행에

-그만 웃어요.
-미안해요. 근데 정말 여기까지 왜 온 거예요?
-제발 잊어달라고 하니까 더 못 잊겠던데요?
-아....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커피라도 사드릴게요. 뭐 드실래요?
-커피는 아까 마셨고, 이거 받으세요.

그렇게 질색할 필요는 없잖아요. 방금 전까지 홍대에서 술을 마셨는데 한참 모자라서요. 해는 자꾸만 뜨려고 하고 술 생각은 계속 나는데, 여기 오고 싶더라고요. 여기가 술 하나는 세게 잘 말잖아요?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세번째 법칙을 지켰다. 비록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규호는 조용히 빼고 해도 돼?라고 반말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규호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미안해요. 끼고 하면 자꾸 죽어서.
-(그거 발기부전 환자들의 흔한 변명이라던데.) 괜찮아요. 제가 할까요?
-그건 좀・・・・・・ 제가 잘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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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하자센터를 오기 위해서 타고다닌 60번 좌석버스는 김포공항을 지나 강서구를 통과해 영등포까지 이어지는 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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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냉동 블루베리를 맛있게 먹는 걸 본 이후로 재희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벌크 사이즈의 미국산 냉동 블루베리를 사다 냉동실에 넣어놓곤 했다. 나는 보답처럼 재희가 좋아하는 말보로 레드를 사서 냉동실 블루베리의 옆자리에 올려놓았다. 재희는 새 담배를 꺼내 피울 때마다 입술이 시원해서 좋다고 했다.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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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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