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들은 유칼립투스 씨앗을 먹고 살았는데그 나무 한 그루도 없잖아요.
나무가 다 죽자코카투는 떠났죠. - P129

주차장 뷰 호텔 방에베개는 왜 이리 많고잠은 또 왜 이리 대성당처럼 멀리 있을까 - P133

눈보라 몰아치던 날이었죠. 광장을 지나가던 당신이 멈춰서서 시계탑의 시간에 손목시계를 맞추는 걸 보았어요. 늦지 않게 기차에 올랐나요? 오래전이었죠. 당신은 어느만큼갔을까요? - P144

요. 터미널에서 포옹하는 이들이 있죠. 마중 나온 사람은 발랄하고 배웅하는 사람은 침울할까요?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은 아니겠죠? 나는 혼자 오가는 게 좋아요. 혼자 깨어나고가만히 혼자 잠드는 데 익숙하죠. - P130

쪼개 놓아도 오이는 오이고 마늘은 다져 놓아도 마늘이에요. 끈이 떨어져도 장갑은 장갑이고 털실이 다 풀려도 스웨터는 스웨터이고 마구 찢어져도 마음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파편은 필연적으로 증식해요. 당신의 손뜨개실력은 별로였던 것 같아요. 나의 시 창작 실력이 그런 것처럼. 기껏 진심 어린 선물이라고 주는데, 받는 사람을 아프게하죠. - P132

당신이 잠시나마 내 노래를 들어 줘서 고마워요. 누군가당신에게 어린아이를 이 세상에 던져 놓고 떠난 거라고 해도, 무책임하다고 해도 그런 말에 상처받지 마세요. 당신의세상은 물결쳐 오는 파도 너머 봄날 같기를. 때때로 그 나라에도 폭풍우 치겠죠. 새들이 당신 머리 위로 날아간다면 내가 보내는 사랑인 줄 아세요.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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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첫날의 복도에선 방학 내내 갇혀 있던 먼지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그 냄새는 아이들의 재깔거림에 맥을 추지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수천 마리 참새 떼가 동시에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는 먼지뿐 아니라 학교 지붕도 날려 버릴 기세다. - P7

나는 새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전 학교에다 두고 온5년의 추억이 더 그렇게 만들었다. 그때 친구가 되어 준 아이가 소라다. 같은 중학교에 배정된 우리는 운 좋게도 계속해서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남매 중 맏이고 소라는 삼남매 중 막내다. - P9

소라는 31번, 나는 32번이 되었다. 2학년 6반 32번. 줄여서 ‘2632‘가 1년 동안 나를 대표할 번호다. 우리는 다시 교실로 들어가 번호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소라와 나처럼 키보다는 우정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자리는 처음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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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은 보통 때라면 결코읽지 않았을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 P104

책은 침대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꿈을 꾸기 때문이다. - P107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의 시선이 글에서 벗어난다.
시선은 공중에 머물다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책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원래는 어딘가 다른 곳에 존재하는 공간을 잠시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 P106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 어느여름, 비가 오지 않던 해에 일어났다. 온 땅의 풀이말라붙자, 풀의 귀신들은 고향을 버리고 각자 마음대로 서로 다른 장소에 정착하려 했다. 그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초록색 우유를 마셨고, 공통된 성격을 보였다. 감정들은 처음에 강한 알칼리성을 띠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른바 질투심이나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초록은 초록 속에서 얽히기 시작했고,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물론 그 일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117

이 인터뷰를 읽고 나자 사진 책의 마지막 사진을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신발 가게에서 촬영한 것이었다. 배우는 막 가죽신을 신어보는 참이었다. 뒤편으로 스무 켤레의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거의 독자적인 자기 삶을 가진 듯 보였고 그래서 위협적으로 보였다. - P147

지금은 나의 성스러운 그 사진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 책은 나의 눈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자마자 저절로 사라져버렸다. 사진들은 이제 얇은 막이 되어내 망막의 한 층을 만들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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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승희가 아는 한 돌아오지않은 사람은 없었다. - P9

마스크를 놓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날들에 사람들 모두 익숙해지고 있던 차였다. 물론코로나 이후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할 거라는 예상은 있었다. - P10

라마단 기간이라 아침과 점심은 먹지 못합니다.
개수가 맞아야 하는데요. - P12

복도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식사를 꼭 챙겨 드세요. - P15

여자도 환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혼자가 익숙한 사람들을 일주일간의 합숙을 통해 사회화시키는 게 목적인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승희는 얼른 수화기를들었다. - P19

그 말을 들은 뒤로 승희는 되도록이면 욕실로 들어가 통화했다. 반면 유정은 통화할 때도 승희를 신경쓰지 않았다. - P23

승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활치료센터. 전부터 참 이상한말이라고 생각했다. 생활을 일상을 치료한다는 뜻일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돌아간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걸까. 승희는 확진 문자를 받기 직전의 생활을 떠올려봤다. - P31

우리 이런 질문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계속해야죠. 의문을 가진 채 앞을 향해 나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 P35

저는 매일 영상을 찍어요.
승희도 망설이다 고백하듯 말했다.
저는 매일 블로그를 해요.
하산은 수줍게 말했다.
저는 매일 시를 써요. - P40

어느덧 승희가 퇴소한 날짜에 이르렀다. 창가에 놓여 있는의자 하나, 승희가 누웠던 침대, 그리고 긴 울음을 터뜨렸던욕실 문 앞을 카메라는 오래오래 응시했다. 승화는 영상 안에서 유정이 그 방에서 그랬듯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침묵으로 - P45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모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오늘밤이 바로 그 밤이길바라며 승희는 어딘가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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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서서 커피 내리는 것을 지켜봤다. 뜨거운 물이 커피 알갱이를 통과해 드리퍼를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P31

남자가 내게 책을 건네며 웃었다. 모든 관계는 오해로 시작된다.
다 읽으시면 글방 오시는 길에 돌려주세요.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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