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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파트에 살면 안 된다 - 차상곤 박사와 함께하는 층간소음의 모든 것
차상곤 지음 / 황소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의 간단한 소개글을 봤을 때, 처음에는 '층간소음'에 대한 책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얼마전 부모님 댁의 바로 옆집이 이사한 후 곧장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전화선을 뚫고 쿵쿵쿵 소리가 귀청을 울릴 정도였다. 가까이에서 그 소리를 일주일 넘게 들으셔야 할 텐데... 엄마께 낮 동안 우리집으로 피신하시라는 말씀도 여러 번 드릴 정도였다. 층간소음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도 되기 훨씬 전, 아주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살던 2층짜리 연립주택에서 엄마는 피아노 학원을 여셨다. 가정집이자 학원이었던 셈이다. 이사 첫날 안방에 하나, 거실에 하나, 그렇게 두 대의 피아노를 두었는데, 하루도 못 되어 거실의 피아노가 작은방에 꾸깃꾸깃 들어가야 했다. 윗집 아주머니가 내려와서 아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소리친 이후다.
소음의 원인 제공을 했든 피해를 입었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진 층간소음은 관련 당사자들 간에 해결할 사안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층간소음 전문가인 저자가 말하는 '층간소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내용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어서 딱딱한 내용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대화체 위주의 이야기 방식이라 술술 읽혔다. 또한 층간소음의 여러 사례들이 열거되겠구나 정도였는데, 읽어갈수록 그 사례들을 우리집에 적용해보고 미리 조심할 부분들도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아가 층간소음 매트 효과 및 설치방법과 올바른 슬리퍼 착용법 등을 담은 '층간소음 탐구 생활' 코너도 본문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유익했다. '층간소음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46-47쪽)도 제시되었는데, 가족 편과 이웃 편 몇 가지씩 소개해본다.
[가족 편]
"다들 참고 사는데 당신만 유별나게 왜 그래?"
"집안일에 집중하지 않아서 그 소리들이 다 들리는 거야."
"상담 좀 받아야겠어. 당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이웃 편]
"아가씨는 애가 없어서 그래요. 애 낳고 키워봐요."
"이보다 더 어떻게 조용히 걸어? 공중 부양이라도 해야 하남?"
"그렇게 시끄러우면 당신이 이사 가면 될 거 아니야."
층간소음 피해자들의 고통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칵테일파티 효과와 귀 트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칵테일파티처럼 여럿이 모인 상황에서도 평소 관심 있는 이야기는 잘 들리는 현상이다.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 중에도 자신이 내릴 정거장 안내 방송이 잘 들리듯이.
저자에 따르면,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처음 소음이 들리면 애써 무시하려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소리와 진동이 계속됨에 따라, 어느 순간 아주 작은 발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는 귀 트임이 시작된다. 그러면 소리 나는 곳이 윗집 어디인지, 윗집 가족들의 생활 패턴과 동선도 알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소리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소포니아'(misophonia)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의 20년 경험상, 층간소음 당사자들끼리 친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층간소음의 대책 항목에서, 층간소음의 골든 타임은 180일(6개월)이라고 언급한다. 이 시기에, 직접 소음 유발자와 대면해 자신이 겪는 층간소음의 고통을 말한다. 6개월과 1년 사이면 직접 만남을 피하고 관리소나 층간소음위원회에 민원 처리를 부탁한다. 만약 1년이 넘었다면(그런데 피해 상황이 1년까지 가면 안 되지 않을까.) 층간소음을 직접 해결하는 단계로,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나 지자체의 층간소음 관련 부서에 의뢰해 전문가와 상담한다.
이 책은 층간소음에 대한 항의 방문을 할 때 혹은 받을 때의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층간소음 방지를 위한 주민 자율 협약의 사례도 보여준다. 층간소음의 가해자를 화성인(외국 화성인 포함), 피해자를 금성인,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목성인 등으로 지칭하며 서술해간다.
"층간소음 해결의 출발점은 금성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화성인을 비롯해 관리소장, 경비원, 입주자대표회의, 시공사, 지자체, 환경부, 국토부, 청와대는 금성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199쪽)
이 책은 층간소음뿐 아니라 층간흡연의 고통도 다루고 있어서 이채로웠다. 실제로 환기를 시키거나 음식을 만들 때 부엌 쪽 창문을 열어두면 어느 집에서 피우는지도 모를 담배 냄새가 우리집으로 속속 스며든다. 우리집의 고충만이 아닌듯, 그러면 여지없이 아파트 공지 방송이 나온다. "흡연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사오니, 배려하는 마음으로 흡연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저자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내 흡연 구역을 따로 정하는 게 현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저자는 화장실 환풍기에 댐퍼(damper)를 설치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소음 예절도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공감이 된다. 환경보전협회는 2014년부터 '찾아가는 층간소음 예방 교육'을 운영하고 유아, 초등학생을 위한 교재와 교구를 개발, 보급 중이고, 학습 및 동영상 자료는 해당 홈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다.(http://www.noisedu.com/main) 저자는 아이들 층간소음 교육에 필요한 추천 도서도 실어놓았다. 어린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필수적으로 교육시킬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층간소음이 없다는 아파트를 믿어도 될지, 층간소음을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해외의 사례는 어떠한지, 층간소음 적은 아파트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다룬다. 또한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 건설사, 정부와 국토부, 관리소장,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층간소음을 위해 노력할 부분 등을 제안한다.
층간소음의 문제는 개인의 예민증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고,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사안도 아니며,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층간소음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층간소음 실태뿐 아니라 그동안 마련되어온 대책들과 앞으로의 보완책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층간소음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책이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재 아파트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