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를 찾아서
글로리아 포시 지음, 김현주 옮김, 다닐로 데 마르코 외 사진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제법 큰 판형(230*272mm)의 양장본(240쪽 분량)에는 작은 일련번호가 매겨진 반 고흐의 작품 112점과 이 책의 사진을 담당한 두 사람(다닐로 데 마르코, 마리오 돈데로)이 촬영한 전경 및 장소들로 가득하다. 그림과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 중간중간 미술사학자인 저자(글로리아 포시)의 글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글 속에는 반 고흐의 편지 일부가 해당 주제나 장소에 따라 인용된다. 먼저 그림과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았는데, 반 고흐의 그림과 그 배경이 되었던 장소 사진이 함께 배치된 구성이 인상적이다. 서두에는 저자를 비롯한 사진작가 두 사람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책의 성격과 방향성을 잘 담고 있어서 유익했을 뿐 아니라 의미 있는 문구로 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반 고흐가 짧지만 극적인 시간을 보낸 수많은 장소의 자취를 따르다 보면, 반 고흐라는 사람 자체와 그의 가슴 시린 '존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우리는 멋있게 포장된 반 고흐의 이미지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사진을 통해 장소가 인간과 통합하고, 때로는 인간 스스로 장소와 하나가 되려 하는 존재의 흐름, 존재의 기운을 표현하고 해석하려 했다.(16-17쪽)


이 책은 반 고흐의 예술에 영감을 준 장소를 찾아감으로써 화가의 행보를 되짚어보고 그로 인해 화가에 대한 이해, 작품 감상의 폭을 넓혀준다. 1990년 두 사진작가들은 화가의 작품으로 변모되기 이전의 평범한 장소를 포착했다. 저자는 서간집(반 고흐는 820통의 편지를 썼고 그중 658통이 동생 테오에게 쓴 것이다.) 속 감정이 실린 장소, 관련 작품, 삶과 예술, 책과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화가의 생각 등을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화가의 행보 혹은 그림과 특정 소설 내용을 연관시켜 서술한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부의 '준데르트', 반 고흐의 생가로부터 시작된 여정은, 그가 화랑의 사무원으로 일했던 헤이그, 같은 화랑의 영국 지점인 런던, 불어 교사로 있던 장소인 램즈게이트의 해안에 이른다. 반 고흐는 당시 램즈게이트 건물의 노란색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소설 표지가 노란색인 책이 등장하는 그림이 최소 열여덟 점이나 되는 줄은 몰랐다.


평신도 전도사로 임시 임명됐을 때 머물던 보리나주, 그곳에서 반 고흐는 질병에 걸린 광부들을 돌보며 남루한 사람들을 그리는데, 이후 그곳을 떠나 브뤼셀에 머물며 그림에 몰두한다. 원하던 사랑도 어그러지고 가족, 특히 아버지와 어긋나기만 하던 그가 택한 새로운 거주지는 안트베르펜이다. 여기서 그는 미술 아카데미와 드로잉 강좌를 수강한다. 저자는 그곳이 그가 선망했던 루벤스의 도시라는 점과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착안해, 다음 내용을 서술한다.


테오필 고티에의 소설 <황금 양피>의 주인공 티부르체처럼(빈센트는 분명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안트베르펜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루벤스의 여인과 닮은 금발 모델을 찾아 헤맨다.(99쪽)


반 고흐가 파리에 머물던 때의 그림 <몽마르트르에서 본 파리 전경>에 대해, 저자는 "빈센트가 몹시 사랑하던 에밀 졸라의 뛰어난 묘사에서와 같이 '온통 회색'인 도시 전경"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에밀 졸라의 작품 일부도 인용한다. 파리 사람들이 '갱게트'라 부르는, 테라스가 있고 먹고 마시는 야외 장소에는 당시 예술가들과 예술 상인들이 드나들었는데, 이 책에는 현재 유명 관광지인 '라 본느 프랑게트'의 사진과 반 고흐의 그림 <몽마르트르의 갱게트>가 나란히 실려 있다. 물감 상인 탕기 아저씨의 "성질 고약한" 아내가 반 고흐의 그림 전시를 막았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되는 장소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가들의 도시 파리에서 반 고흐는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급작스러운 기분 변화나 불안, 모난 성격 너머의 세상"이 힘겨워 평온과 균형을 되찾기 위해 아를로 향한다. 열한 가지로 알려진 해바라기 소재 작품 가운데, 네 점은 파리, 일곱 점은 아를에서 그린 것이다. 이 책에서 인테리어에 많이 신경 썼다는 <아를의 반 고흐의 방>, 잠시 함께 지냈던 고갱이 그린 '아를 여인'과 비교해볼 만한 <아를의 여인>, 반 고흐가 귀를 자른 후 입원했던 <아를 병원> 등의 그림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아를의 강둑을 배경으로 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생레미 생폴드모솔 정신병원의 병실 창문으로 본 풍경인 <별이 빛나는 밤> 등, 별에 주목해 당시 화가가 관심을 가진 천문학 지식도 언급한다.


이 책은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 그의 작품세계, 그가 처한 환경과 심리상태 등을 그려낸 후, 마지막 정황과 그가 사망한 장소, 반 고흐 형제가 안치된 공동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진 <비 내리는 오베르의 풍경> 그림으로 마무리한다. 화가가 좋아하며 테오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던, 롱펠로의 '하루가 끝나고' 시구를 인용하면서...


마을의 불빛이

비와 안개를 뚫고 빛나는 것을 보니

슬픈 감정이 밀려와

내 영혼이 견디지 못하네.(223쪽)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처럼,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인생, 작품세계에 기울인 관심과 앎의 폭만큼 다양한 무게와 깊이로 다가올 것이다. 화가가 이동한 장소, 머물렀던 환경 위주로 서술하면서 그의 인생과 작품세계, 생각과 감정 등을 아우른 책인 만큼, 화가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그림 속 장소를 사진으로 재현해본 <반 고흐를 찾아서> 덕분에, 반 고흐의 삶과 작품에 더 가깝게 다가간 느낌이다. 사색과 감성의 깊이가 더해진 기분도 든다. 반 고흐에 대한 전반적인 퍼즐을 맞춰보는 책이랄까. 그를 더욱 알고 싶게 만드는 입문서이자 그동안 몰랐던 부분을 일깨워주는 부록편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반 고흐의 자취를 따라나서게 될 때 함께할 예술 탐방의 가이드라는 점은 분명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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