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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지혜수업 - 5천 년 탈무드에 담긴 유대인의 삶의 지혜
마빈 토카이어 지음, 윤호 옮김 / 푸른e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아이에게 읽어줄 책 중의 하나로 <탈무드>를 찾아본 적이 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기는 하나, 원전에 가까운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편역자도 그 방면의 전문가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초등학생 대상의 세계명작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탈무드>를 구매해서 책꽂이에 꽂아둔 채 잊고 있었다. 현재 계속 출간되는 예쁜 그림책, 재미있는 동화를 읽어주느라, 그 와중에 <탈무드> 내용 가운데 유머 부분만 엮어낸 <유머라면 유대인처럼>, 원전에 가까운 책을 찾아 본문을 부분적으로 수록한 <탈무드 교육의 힘>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 <유대인의 지혜 수업>과 만나게 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책꽂이에 깊숙이 꽂아둔 어린이용 <탈무드>를 뽑아보니, 이 책의 저자가 동일한 이름이다. 마빈 토카이어.
저자는 뉴욕 예시바 대학(탈무드 학교)에서 철학과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 유대 신학교에서 탈무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아 랍비 자격을 취득한 이후 뉴욕 예배당 랍비, 일본 유대교단의 랍비로 시무한 바 있다. 시작하는 말에서, 저자는 한 일화를 소개한다. 유명한 대학의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탈무드를 하룻밤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후 덧붙인다.
"좋습니다. 언제라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오실 때 트럭을 가지고 와 주십시오."(6쪽)
탈무드는 총 20권, 1만 2천 페이지, 단어 수는 2백5십만 개 이상, 중량 75킬로그램이다. 저자에 따르면 탈무드는 책이 아니라 학문이다. 앞선 분량은 기원전 5백 년에서 기원후 5백 년까지의 구전을 10년간 2천 명의 학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5천 년에 걸친 유대인의 지적 재산, 정신적 영양분이 담겨 있고 그 원류는 구약성서로, 그것을 보충하고 넓힌 의미를 가진다. 본래 탈무드는 위대한 연구, 위대한 학문, 위대한 고전 연구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크게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우화', 생활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해학', 삶의 현명함을 일깨우는 '지혜',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사랑'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야기 한 편의 분량이 짧고 이 번역본에는 중간중간 그림도 들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70년쯤 지나야 열매 맺을 묘목을 심는 노인 이야기, 눈뜬 사람들을 위해 캄캄한 곳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오는 시각장애인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처럼 익숙하게 접했던 내용이든, 좀 생소한 내용이든 재미있고 유익했다.
'우화' 편에서는 혀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었다. 인생을 참되게 사는 비결이 곧 자기 혀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인상에 남았다. 선행도 강조된다. 사람은 죽어서 가족, 부귀, 선행을 남기는데 그중 선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나이가 왕이 보낸 사자를 따라 출두하게 되었는데, 세 친구에게 가자고 부탁한다. 첫 번째 친구는 싫다고 했고, 두 번째 친구는 성문까지만 가준다고 했으며, 세 번째 친구는 끝까지 같이 가준다고 했다. 각 친구의 상징은 재산, 친척, 선행으로, 죽은 뒤에도 함께하는 것이 선행이다. 개인적으로 '절망의 끝은 희망'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해학' 편을 보자.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한 유대인이 임종의 순간, 자신을 둘러싼 가족들을 한 명씩 확인한 후에 "그럼 가게는 누가 보고 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안식일 아침에 신학생 세 명이 담배를 피우다가 랍비에게 걸렸는데 각자 변명을 늘어놓는다. "오늘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안식일에는 금연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커튼 내리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한편, 인간이 6일째에 만들어진 이유는 자연에 대한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파리 한 마리도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인간은 오만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혜' 편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에피소드를 보자. 현명한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 앞에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자기 아이라고 우긴다. 유대 사회에서는 어느 쪽 소유인지 알 수 없을 때는 공평하게 둘로 나누는 게 통례다. 솔로몬은 아기를 반으로 잘라 나누도록 했다. 이에 한 여자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차라리 아이를 저 여자에게 넘겨주라고 외친다. 그 여자가 진짜 어머니였다. 탈무드에서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는 두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누군가 이미 산 물건에 대해 의견을 구하러 왔을 때 훌륭하다고 거짓말해도 좋다는 것, 또 하나는 친구가 결혼할 때 반드시 부인이 대단히 미인이며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거짓말하라는 것.
마지막으로 '사랑' 편을 보자. 젊은 아버지가 보채는 갓난아기를 달래면서 "모리츠야, 진정해. 진정하란 말이야" 하고 반복했다. 지나가는 여자가 참을성 많은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아기 이름이 모리츠냐고 물었다. 그때 남자가 하는 말. "아닙니다. 제 이름이 모리츠입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으면 이혼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헤어질 생각이 없었지만 주변의 강력한 압력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랍비는 남편에게 아내를 위한 파티를 열고 사람들 앞에서 아내가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말하도록 권했다. 그리고 아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보게 했다. 아내는 "남편"이라고 말했고 둘은 행복하게 살았으며 이후 아이가 태어났다.
오랜 시간 전승되어온 유대인들의 지혜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유, 그것은 지혜의 보고라고 알려진 <탈무드>를 통해 삶의 즐거움과 현명함과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해서다. 탈무드 시대에는 남자가 둘 이상의 아내를 갖는 일이 허용됐다는 대목을 비롯해 오늘날에 비추어 걸러서 볼 부분도 있겠지만, 우화, 해학, 지혜, 사랑 편의 이야기를 한 편씩 만나본 시간은 대체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