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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인 더 뮤지엄 -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리는 예술 인문 산책
진회숙 지음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의 제목 <클래식 인 더 뮤지엄>을 보면서 문득 떠올려본 영화 제목이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 주인공 두 사람의 성향 차이를 잘 드러낸 제목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한 상징 같기도 했고, 둘이 함께할 때 오히려 풍성한 느낌을 주는 듯했다. 클래식과 뮤지엄도 그럴 것이다. 예술 형태는 다르나 음악과 미술이 감동을 안겨준다는 본질은 동일하니까. 그리고 둘이 만났을 때 풍성한 감상의 폭이 열리게 될 테니. 이 책은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2008)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작가의 말'에는 기존의 책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저자는 "눈으로 보는 음악, 귀로 듣는 미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최근에 음악과 미술이 접목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어쩌면 저자가 이미 앞서 시도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음악전공자로서 오랫동안 예술평론을 써온 저자의 이력에 신뢰감이 들었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책 제목과 절묘하게 연관된다. '1장 전통을 창조적으로 파괴한 현대 예술, 2장 그림으로 듣는 음악, 음악으로 듣는 그림, 3장 예술가의 영혼을 훔친 이국 취미, 4장 종교적 주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의 표현만 봐도 책의 성격과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음악/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게 만든다. 초반에 우연성의 예술을 언급한 대목부터 그랬다. 또한 이 책에 서술된 음악과 미술의 융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앞으로 이 책에 수록된 음악을 감상하게 될 때면 그와 함께 언급된 미술작품도 동시에 떠올리게 될 듯하다. 해당 주제에 따른 음악과 미술, 에피소드도 재미있게 엮었고, 본문에서 다양한 작품 소개와 해설을 풀어가되 작품에 기인한 감상의 정도로 머무는 게 좋았으며, 무엇보다 책 속의 그림들과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 저자의 유려한 문체로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백남준과 아르망(프랑스 조각가)의 악기 파괴 의미를 비교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아르망의 작품들을 보면서 분명 해체된 악기인데 참 아름답다는 마음이 드는 게 신기했다. 미술과 음악의 미니멀리즘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반문하는데 공감이 되었다.
"무념무상의 무미건조한 세계,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비개성적이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군더더기를 제거한 형태의 본질만이 존재하는 세계. 이 세계의 작가들은 우리에게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 부여가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작품을 접하는 순간 그 '무의미의 의미'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감지되니 이는 또 무슨 의미란 말인가."(63쪽)
생몰연대도 비슷한 20세기 예술의 혁명가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는 <봄의 제전>과 <아비뇽의 처녀들>로 사람들의 거센 저항을 받는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한가. 조각가 애니쉬 카푸어의 거대한 설치미술 <마르시아스>를 보고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는 "죽음과 고통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을 위한 비가" <라멘타테>를 만든다. 이처럼 저자는 비슷한 시기 혹은 영향관계가 있는 미술, 음악을 다루는 한편, '종달새'를 떠올리면서 김환기의 그림과 랄프 본 윌리암스의 곡을 연결하거나, '경쾌한 가벼움'을 예찬하면서 라울 뒤피의 그림과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이 선사하는 느낌을 서술하고, '겨울'을 연상하면서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를 교차한다. 또한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과 관련 음악을 '신화 이야기'와 함께 다양하게 소개한다.
예술가를 사로잡은 이국 취미의 경우, 특히 우키요에(일본 에도에서 유행했던 풍속화의 일종)와 자포니즘(Japonism)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대목에서는 일본이 우키요에를 프랑스에 소개하고 인상파 화가들에게 유행시킬 수 있었던 배경, 자포니즘을 확실히 보여주는 푸치니의 <나비부인> 속 일본풍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적 영감을 다룬 작품들의 경우,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어머니를 주제로 담아낸 작품들에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렀다.
책을 덮고 나니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리는 예술 인문 산책"이라는 부제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는 음악, 들리는 그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열망이 책 속에 가득하고 내게도 흘러들어온 느낌이다. 음악을 더 보고 싶고, 그림도 더 듣고 싶다. 물론 듣는 음악, 보는 그림도 차곡차곡 채워가면서...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