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속의 우주 - 서체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이모저모
한동훈 지음 / 호밀밭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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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디자이너가 바라본 세상 이모저모'라는 부제가 제목 <글자 속의 우주>를 더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어느새 손글씨보다 컴퓨터 자판이 편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 책 속의 좋은 문장을 필사한다. 캘리그래피 책을 보면서 예쁘고 멋진 서체를 따라 써보거나 내 나름의 스타일로 써본다. 네이버가 제공한 기본서체 가운데, 내가 쓴 글에 어울리는 서체를 골라보곤 한다. 읽는 책마다 표지나 본문의 서체가 꽤 자연스럽게 혹은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서체'에 대한 생각은 이 정도에 머문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의식중에 손글씨를 멀리하는 나 자신을 일깨우고 있나 보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꼭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만 봐도 그렇다. 저자가 서체 디자이너라고? 그럼 당장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그렇게 기대감으로 펼친 책의 서문에는 예상치 못한 다음 구절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시한이 있다. 아끼고 아낀 글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는 대신 폐기될 뿐이다. 내보내야 할 때 내보내야 한다. 어쩌면 폰트 디자인과 글쓰기가 그 분량이나 결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를 써서 창조하느냐, 언어의 외피를 창조하느냐가 다를 뿐이다."(8쪽)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될 줄은 몰랐다. 더구나 폰트 디자인과 글쓰기가 다르지만 비슷한 세계라니! 생각해보니 그렇다. 머릿속의 생각을 담아내는 글, 그 글이 발현되는 형태가 글자 아닌가. 실제로 가독성 있는 글이라고 하면, 문장이나 표현과 별개로 보기 좋은 글자의 조합이기도 하니까. 이제, 내가 모르거나 간과한 글자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본다.


저자는 본격적인 내용 전개에 앞서 용어 구분부터 해준다. 오늘날 글자를 활용한 거의 모든 디자인을 일컫는 '타이포그래피'는, 글자 배치 작업, 캘리그래피, 레터링, 폰트 디자인, 폰트로 만든 포스터와 그 외의 아트워크를 모두 아우른다. 저자는 폰트, 타입페이스, 글꼴, 레터링 등의 개념을 하나씩 알려준다. 다른 문자와 차별화되는 한글만의 특징은, 자소가 결합하는 형태에 따른 '틀'이 나뉜다는 점이다. 글자 주변을 둘러싸는 가상의 틀을 기준으로 정사각형이 아닌 서체는 '탈네모틀', 정사각형 안에 들어가는 글꼴을 '네모틀'이라 일컫는다. '탈네모틀'은 다시 조합형과 완성형으로 구분된다. 저자는 실제 간판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예로 든 사진 자료가 많이 들어 있다. 오래전 주류 광고부터 자동차 트렁크 엠블럼, 가수들의 앨범 레터링, 우리나라 지폐 서체, 수동 카메라의 셔터 다이얼 서체, 올림픽 로고타입 디자인, 여러 간판 및 광고판 등, 저자는 서체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글자가 들어간 것이면 무엇이든 다룬다는 점에서 전방위적이고, 가령 로고 타입의 변천사 등 서체의 변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 시대까지 읽어낸다는 점에서 일상의 문화사라 할 만하다.


1987년에 발매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커버 디자인은 가독성 면에서 아쉽지만 꽤 독특해 보인다. 하단의 담배 꽁초들, 그중 담배 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글자로 표현했다. 저자는 이 곡의 전주를 듣노라면 이른 새벽 홀로 피우는 담배 연기가 떠오르면서, 그라데이션된 커버 레터링이 자연스럽게 매치된다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간접 흡연도 싫고 그로 인한 연기도 질색이라, 좋아하는 노래를 굳이 담배와 연관시키고 싶지 않다. 아마 지금처럼 금연석이 따로 있고 담배 연기가 민폐인 시대라면 다른 앨범 커버가 나오지 않았을까. 모든 문화 양식은 시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서체 이야기를 읽으며 실감해본다.


도로, 전철 안의 서체를 들여다보던 저자는 승강장 주변 공사연혁 판에 주목한다. 공사기간이 1980년에서 1985년으로 새겨진 동판은 붓글씨체. 저자는 동판의 마지막 문구 '정성으로 건설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를 언급한다. 글자를 보다가 특정 문구를 보게 되고,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역사의 죄인'이 만들어낸 흔적들도 떠올리게 된다. 글자가 온전히 기능 혹은 외피에 머물지 않는다는 실례가 아닐까. 저자는 야민정음의 세계에 감탄하는 입장으로, 180도 뒤집으면 '사랑해'가 되는 'H워얼V'를 다양한 서체로 변형해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예능 자막 분석이나 대선 포스터 타이포그래피 분석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한글 폰트 디자인의 변천 및 한글 디자인의 어려움 등 관련 전공자 혹은 직업군이 보면 좋을 내용도 담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관심 있는 대상에 오래 시선이 머물기도 할 것이고, 그동안 가볍게 지나쳤던 사물 속 글자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림을 볼수록, 음악을 들을수록 감식안이 생기듯이, 글자도 그렇겠구나 싶다. 이 책을 통해 서체 디자이너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폰트 디자인과 글쓰기가 비슷하다고 했던 저자 말을 상기해보며, 글자가 주는 끌림, 글이 주는 영향력도 연관지어 생각해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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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 씨의 뒤죽박죽 만물상 - 나를 키우는 힘! 창의성 생각톡 무지개
임정순 지음, 박은애 그림 / 알라딘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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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제목만 보고 이야기를 상상해보곤 한다. <헐렁 씨의 뒤죽박죽 만물상> 표지를 보면서 잠깐 이야기 전개를 그려봤다. 괴짜지만 창의력이 풍부한 헐렁 씨가 주인공 아이에게 '창의성'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인가 보다. 그렇게 짐작했다. 만물상에는 어떤 신기한 것들로 가득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상상은 어긋났다. 주인공 아이가 헐렁 씨에게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였다. 아이와 함께 읽어볼 동화로,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발견한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민준이는, 과목별 점수는 좋은 편이지만 그냥 문제집 풀고 외우는 것을 잘할 뿐,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은 싫다. 동시 수업을 하다가 선생님은 "초콜릿이 열 개 있는데 세 개 먹었어. 몇 개가 남았을까?" 하는 수학 문제를 낸다. 초콜릿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고정 관념을 버리면 재미있는 발상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기발한 답변을 하는 아이들과 달리, 민준이는 "일곱 개" 외에는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꽉 막혔다면서 아이들에게 깡통 로봇이라고 놀림까지 받았는데, 앞으로 '얼음은 뜨겁다'는 주제로 모둠 활동까지 해야 하다니!


민준이는 우연히 발견한 '헐렁 씨의 뒤죽박죽 만물상'에서 신기한 초록 돌멩이를 얻는다. 뭔가를 생각하려고 할 때 돌을 가만히 문지르면 생각이 말랑말랑해지는 돌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그 돌멩이 덕분에, 민준이는 평소와 다른 창의적인 답변을 했다. 그런데 공짜는 없었다. 민준이는 초록 돌멩이의 대가로 헐렁 씨가 원하는 '창조의 씨앗'을 가져다줘야 한다. 도저히 못 찾겠다면, 창의성의 달인 기홍이를 데려가야 한다. 꽉 막힌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초록 돌멩이를 돌려주기는 싫고, 그렇다고 왠지 위험해 보이는 헐렁 씨 앞에 기홍이를 데려가면 안 될 것 같고... 민준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창의성'을 주제로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져서 재미있었다. 먼저 창의성이란 내 안에 숨어 있는 가능성이라는 사실이다. 헐렁 씨 만물상에 있던 초록 돌멩이와 거꾸로 나무가 실상 민준의 것이었다는 사연만 봐도 그렇다. 또한 발명품이라는 결과물을 위해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행위는 분명히 잘못됐다는 교훈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얼음이 뜨겁다'는 주제로 모둠 활동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어린이 독자들이 실제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


민준이가 달라졌다. 쉬는 시간에도 학원 숙제하느라 정신없고 수업 시간에는 생각하고 질문하는 게 딱 질색이었는데, 이제는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아보는 과정이 즐겁다. 창의성 따로, 공부 따로가 아니라 결국 이게 진짜 공부 아닐까. 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오히려 "엉뚱한 생각 그만하고 공부나 해." 그러면서 아이들의 샘솟는 창의성을 꾹꾹 누르는 것은 아닌가. 특별히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이 동화는 창의성에 대해 여러 생각의 가지를 뻗어갈 수 있게 해준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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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도시 물구나무 세상보기
안토니오 보난노 지음,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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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으로 마음이 끌리는 그림책이다. 섬세한 펜 터치, 잔잔한 색감으로 꾸며진 그림체다. 모자 도시가 궁금하면 낡은 입체경을 들여다봐야 한다니, 문득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더 가까이 들어가본다.


모자 도시는 바람이 가득한 곳이다. 우리말의 다른 뜻인 바람과 구별된다. 없는 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무엇이든 훨훨 날려 보내는 자연 현상을 의미한다. 세찬 바람은 일상이 되어 사람들은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이동한다. 우산을 쓰고 하늘을 두둥실 날아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아기가 혼자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위태롭다. 누가 아기 손을 꼭 붙잡고 있으면 좋겠는데...


바람 때문에 잃어버린 아기, 커다란 코끼리, 이런저런 물건들은 다시 찾을 수 있다. 모자 도시의 분실물 보관소를 통해서. 신기한 것은 모자다. 모자가 바람에 날리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모자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느 날, 한 발명가가 잃어버린 모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서기로 하는데...


재미있는 모자 도시 구경을 마치면, 아이와 함께 풍성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다. 바람이 모자를 가져간 이유는 무엇인지, 모자 도시에서 살면 좋은 점 혹은 불편한 점이 무엇일지 등. 모자와 바람의 상징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모자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모든 기억을 훅 날려 보내듯이, 흘러가는 시간이 또 그러한 게 아닌가. 그런 가운데 꽉 붙들고 싶은 것, 바람 혹은 시간이 가져가지 못하게 붙잡고 싶은 그 무엇. 세찬 바람 혹은 냉정한 시간 앞에 언젠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더라도 현재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무엇.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일상이 더욱 소중해진다. <모자 도시>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기도 하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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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땅끝으로 - 로마에서 산티아고 3,018km 순례길
정양권 지음 / 선한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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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땅끝'은 복음이 전파될 장소를 뜻하는데, 개인마다 다르게 의미 부여해볼 수 있겠다. 제목에 그 '땅끝'이 들어가는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이 책은 목회학 전공 신학생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가 2019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밟은 여행기다. 이 책의 서두에 간략한 개념이 정리되어 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움을 뜻하는 '산토'와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인 '라고'가 합쳐진 단어로 '성 야고보'를 의미한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이다. 저자의 목적지이자 땅끝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동쪽,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이자 성당 이름으로, 교황청에 의해 1189년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3대 기독교 성지가 되었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과 함께 사람들이 더욱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독자들은 저자의 글과 그림뿐 아니라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서, 로마에서 산티아고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해볼 수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여행의 출발지, 곧 세상이다. 저자는 대성당 축성과 종교개혁 과정을 되짚으며 여전히 '죄와의 전쟁' 중인 우리 시대 '나'의 믿음을 돌아본다. 요한복음 2장의 성전 척결 사건, 성전 된 자로서의 '나'의 모습까지 묵상이 이어진다. 이렇듯 예배자의 삶을 일깨우는 내용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열왕기상 21장에 나온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적용하면서, 각자 받은 소명과 달란트를 자신의 소욕에 따라 쓰는 것과 주의 뜻대로 행하고 사용하는 것을 대비시킨다. 나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로마에서 시작된 여정의 3일째, 저자가 찾은 숙소는 수트리 수녀원으로, 그곳은 카타콤으로 둘러싸인 순교지다. 증인 된 삶이란 무엇인가. 찾는 장소마다 그곳의 역사와 오늘날의 의미, '나'를 향한 질문을 해보는 저자의 서술 방식을 따라가본다. 저자는 르네상스 중심지인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서 여러 조각상을 바라보며 교회와 교인, '나'의 삶에 침투한 인본주의를 경계한다. 이후 바닷가에 인접한 친퀘 테레의 첫 마을인 리오마조레를 지나는데, 사진상으로 보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이 인상적이다. 강풍과 해일이 몰아치면 좀 위험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프랑스 니스까지 19일간 저자는 같은 신학교에 다니는 태형과 동행한다. 그런데 니스의 한 초밥집에서 태형의 가방이 없어지고 만다. 순례길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 두 대, 여권, 현금, 신용카드 전부. 낯선 여행지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다면 정말 당황스럽고 막막할 듯하다. 저자 역시 10여년 전 배낭 여행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행 가방을 도난당한 일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태형의 여권 재발급 등을 위해 니스에 3박 4일을 머문 후 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도난 사건은 '여행의 꽃'이라고. 우리가 손에 쥔 것들 모두 사라지는 순간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여행길은 우리 노력이 아니라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 은혜로만 채워진다는 의미다. 이 대목을 보면서, 여행길과 인생길, 인간의 욕심과 노력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자 동시에 신앙 간증서다.


책 내용 중에는, 길 위에서 배우는 인내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라는 깨달음, 20대 때 붙든 세상의 헛됨과 그런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물론 간증이나 묵상과 더불어, 순례자의 여정은 계속된다. 저자는 프랑스 '로데브'라는 도시에서 아프리카 여행 때 종종 보던 가택 건물 같은, 빈민가의 숙소를 찾기도 하고,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라는 섬에서 온 순례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기 위해 순례길을 잠깐 벗어나 박물관을 가기도 한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길 위의 사람들이 저자에게 질문한다.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순례길 이후 계획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왜 믿는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그런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인생 좌표 위에 복음을 또렷이 새겨간다.


저자는 영적 방황을 서른 전에 끝내고, 서른 중반에 도전과 믿음의 순례길을 자처했으며, 그 체험과 심경을 고스란히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아냈다. 책 말미에는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요약해준다. 하루 평균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숙소 찾기와 언어 사용은 어떠했는지, 자신에게 순례길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등.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내서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 저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국경을 통과해 87일 동안 총 3,018킬로미터를 걸었다. 그리고 현재 <천로역정>을 썼던 존 번연처럼, 일상의 순례길에 서 있다.


여행길의 상징성은 뻔한 듯하면서도 늘 새롭게 다가온다. 비슷해 보이는 여행 에세이들 속에서 저자만의 색과 향이 있듯이. 내가 걸어온 길, 지금 서 있는 길, 땅끝 삼은 길을 차분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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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의 여행 - 과학은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요?
모이라 버터필드 지음, 파고 스튜디오 그림, 박여진 옮김 / 애플트리태일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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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SF소설도 많이 나오던데, 큰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다. 그 사이에 있었던 나의 변화는 무엇일까. 예전만큼 과학이 바꿔놓을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진 것인지, 그저 일상의 삶에 지쳐 있는 것인지. 둘 다 맞을 듯한데, 최근에는 다시 SF 같은 미래가 궁금해졌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이기에. <미래로의 여행>에 관한 그림책이라면, 더 수월하게 이야기를 펼쳐갈 수 있겠다.


그림책의 목차부터, 뭔가 방대한 내용을 담았구나 싶다. 도우미 로봇, 똑똑한 우리집, 최첨단 옷부터 우주 엘리베이터, 우주 호텔, 우주 정원까지, 총 26개의 항목으로 나누었다. 각 항목마다 크게 펼쳐진 그림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관련된 내용을 담았다. 또한 관련 용어도 상세히 풀이하고 책 말미에 용어 해설도 달아놓았다. 사실 이 책의 그림들이 궁금했다. 미래의 카페, 미래의 학교, 하늘 정원, 우주 정원, 안드로이드 쇼핑몰, 미래의 도시, 수상 도시 등은 글로만 읽기보다 아무래도 상상의 그림이 펼쳐졌을 때 더욱 실감나게 다가올 테니까. 그림만 한 장면씩 넘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림책 속 미래 여행을 떠나볼까. 도우미 로봇 상점에서는 언제나 밀물 같은 집안일을 감당해줄 가사봇, 백만 가지 요리가 가능하다고 소개된 요리봇, 수시로 의자나 소파, 침대로 변신하는 의자봇을 구매하고 싶다. 센서와 컴퓨터 조정 시스템이 가득한 집에서는, 오늘 기분에 어울리는 벽지 색으로 바꾸고 머리가 맑아지는 향기도 풍겼으면 좋겠다. 음성 인식으로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옷을 입고 나와 가족들과 하늘 정원에 가는 날,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내는 나노바이오닉 식물과 매일 바뀌는 3D 홀로그램 조각상을 구경한다.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가족은 이날 외골격 옷을 착용할 것이다. 자유롭게 걷고 오래 걸어도 아프지 않게. 안드로이드 쇼핑몰을 돌아다닐 때는 카트 대신 이런저런 도움을 주는 안드로이드 한 명씩 동반해본다. 쇼핑을 마친 후에는, 모두 공중 부양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리는 가사봇에게 맡기고 욕실에서 손을 씻는데, 눈앞의 거울이 안색을 살피며 건강 체크를 해준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요리봇이 벌써 한 상을 차려낸 모양이다.


미래의 카페에는 천 가지 맛 중에서 고를 수 있는 나노 입자 스낵이 있고, 좋아하는 소리를 골라 들으며 맛보는 쿠키가 있다. 병원의 모든 물건들은 감염 확산을 막아주는 바이오 코팅이 된 상태이고, 학교에서는 증강 현실 홀로그램을 활용해 화산 폭발 장면이나 거대한 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을 실감 있게 볼 수 있다. 과학의 발달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게 될까. 멸종된 동물의 DNA를 추출한다면 가능한 이야기다. 야생 동물을 방해하지 않고 드론을 띄워 관찰, 보호하는 방법도 있다. 우주로 눈을 돌려보자. 우주복을 입고 달 트램펄린을 즐길 수 있다. 소형 로봇 우주선인 '태양광 항해'로 우주를 탐험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타워가 될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고 달로 가게 될 날도 온다. 용기 있는 희망자에 한해 화성 여행도 추진될 것이다. 인간이 거주하기 좋은 장소로 바꾸는 '테라포밍'을 화성에 적용해볼 수 있다. 재활용 쓰레기에 화학 물질을 첨가해서 만든 인공 토양으로 우주 정원을 꾸며볼 날도 올 것이다.


이 그림책으로, 과학이 바꿀 미래를 미리 여행해볼 수 있다. 항목에 따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부분도 생기고, 개인적으로는 우려가 되는 부분도 발견하게 됐다. 과학 기술의 발전 자체가 무조건 선도, 유익도 아니기에, 급변하는 기술만큼 따라주어야 할 올바른 가치관도 상기해볼 일이다. 작가는 과학의 미래에 대해 '우리들이 지켜야 할 원칙' 몇 가지를 제안했다. 그중 발명품들이 지구의 환경 오염을 막고 정화시킬 것,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인간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즐거운 미래 여행과 함께, 과학의 미래를 마주할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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