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야기하는 책 읽기 - 가짜 이야기, 진짜 이야기, 이야기의 순간
조서연 지음 / 아우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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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소멸될지 모르는 제 이야기를 이야기하기로 복원시키는 동안, 어머니와 함께한 이야기의 순간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11쪽)

궁금증을 일으키는 제목과 함께,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말에 주목해본다. 대학에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선보인다. 다음으로 그 이야기에 대해 엄마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다. 전체적으로 일곱 편의 이야기와 이야기하기가 나와 있다. 각 이야기하기의 주제가 나와 있는데, 질문식의 주제들이 독자인 내게도 말을 거는 듯하다. 그중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든 것일까?"

'소설 쓰는 여자'에서, 소소연 씨는 말문을 닫은 백발 노인의 입모양을 보고 글로 옮기는 일을 맡는다. 그 일을 의뢰한 여자는 엄마의 말에 복종하며 살다가 화가의 꿈과 멀어진 자신을 돌아보며 무작정 이탈리아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그러자 엄마가 자신을 보고 입을 봉해버린 것이었다. 소소연 씨는 자신 앞에서는 의심스럽게 입술만 달싹거릴 뿐이던 노인이 도우미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후 그곳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소소연 씨 개인의 에피소드도 교차된다. 어릴 적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사실을 엄마에게 이야기하자, "그건 꿈이야."라고 말하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던 엄마. 훗날 엄마의 유품인 일기장을 보면서, 딸이 자신이 겪은 일을 꿈이라고 믿도록 주문을 외웠다는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저자와 엄마는 소소연 씨의 심정을 비롯한 소설 전반에 대해, 실제 저자와 엄마 사이에 있었던 단절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차단된 말하기란, 어떤 식이든 표출되게 마련이 아닐까. 내밀한 일기로 혹은 공개된 소설로. 소소연 씨의 경우는 말문이 막혀버린 자신의 상황, 심정에 대해 결국 모두 소설로 발설한 셈이다.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든 것일까?"를 조금 변형해서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들었을까?"로 표현해본다. 말하기에 대한 화두라면 떠오르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참 많다. 실제 있었던 일과 허구적 상황을 결합시키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듯, 이 책은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머물지 말았어야 할 공간이 있을까?"

'판도라의 상자'에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작중화자가 떠올리는 다섯 공간이 나온다. 그 공간은 개인뿐 아니라 타인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는 클리셰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작중화자의 남자친구는 자기가 아는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진 일상에 유부남 K가 나타난다. K는 잘 아는 작가 S선생의 남편인 줄 알았지만 실상 K 핸드폰에 저장된 S선생은 또 다른 S선생일 뿐이다. 작중화자는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처참한 표정을 지었던 K와 헤어진 후, 우연히 K와 함께 있는 단짝친구 M을 발견한다. 이어서, 저자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이 이야기를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저자의 다음 말에서 나의 공간도 소환된다.

"그들은 '나'를 힘들게 했던 인물들이니 애초에 대면하지 않았어야 해. 그 장소에만 가지 않으면."(79쪽)

애초에 대면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들, 그 학교, 그 공동체, 그 직장이 아니었다면 하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곤 한다. 그러다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답변을 저자의 엄마에게서 발견한다.

"무엇이든 좋은 것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아닌 것도 경험으로 여기면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로 삼아야 한다."(85쪽)

'지도의 역사'에서는 국제상사를 찾아가는 길치 여자가 나온다. 길, 지도는 짐작하듯이 인생 행로에 비유될 수 있다. 이야기 주제는 "마음을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이다. 주인공 여자가 머리띠 남자를 찾아나서기로 한 까닭이 소설 속에서 불분명한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감정과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손발이 움직이게 되는 일들이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개념 장착 전에 벌이게 되는 일 혹은 벌어지는 사건이란 당혹스러울 따름이지만.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에서는 아내에 대한 염려로 집안을 온실이 아닌 감옥으로 만든 남편이 있다. 수시로 전화하는 남편으로 인해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는 아내는, 담배를 피우게 되고 귀를 쫑긋 세우며 이웃 집의 소리를 듣는다. 남편의 불안 심리는 친구의 아내가 집 보러 온 사람이라고 해서 문을 열어준 후 목숨을 잃은 데 기인했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소설 배경으로 끌어온 것이다. 이야기 주제는 "관심을 가지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이다. 관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타인의 행위에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허락된다. 저자 엄마의 말처럼 관심과 집착은 한 끗 차이일 테니, 그 경계란 참 어렵다.

이 외에도 흑석동 하숙집 대학생이 작중화자인 '검은 돌의 노래'에서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동생에 대한 질투와 아이 낳지 못한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의 심리를 그린 '한나의 실험'에서는 "콤플렉스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질까?"라는 주제로, 뇌종양 판정을 받은 여자가 찾아가는 불빛 혹은 기억의 편린을 담은 '반짝이는 그 무엇'에서는 "마지막에는 어떤 기억만 남게 될까?"라는 주제로 대화가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참 독특한 책이다. 공모전에 내고 상을 받았다는 한 작품을 제외하면 다른 곳에 발표되지 않은 소설들, 독자에게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주제 아래 펼쳐지는 저자와 엄마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주제에 따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엄마와 함께 소설의 제목, 인물, 구조, 가족간의 추억 등을 이야기한다. 그 무엇보다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소설 이야기하기가 아니라도, 나만의 다른 형태로.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소설의 존재 이유가 뭘까 하는 질문도 해본다. 그것은 삶에 지치면서도 이야기를 찾아 책을 읽는 이유와 연관될 것이다. 그 이야기가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물, 책이라는 인쇄매체 혹은 파일 형태로 그치지 않고, 이야기하기로 뻗어갈 때, 비로소 이야기란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 아니 삶을 지탱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책 읽기, 나아가 책 쓰기란 결국 삶을 이야기하기 위한 절실하고 치열한 몸짓일 터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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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최고의 엄마 아빠인지 알려 줄까? - 아주 특별한 엄마 아빠들,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자연 속 탐구 쏙 2
레이나 올리비에.카렐 클레스 지음, 스테피 파드모스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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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탐구 쏙 시리즈 두 번째다. 첫 번째 그림책 <내가 왜 커다란지 알려 줄까?>에 이어 이번에는 <내가 왜 최고의 엄마 아빠인지 알려 줄까?>인데, 글작가와 그림작가 모두 전작과 동일하다. 큰 판형에 섬세하고 예쁜 그림체, 각 동물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체가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책 표지만 봐도 기대감이 샘솟는다. 더구나 이번 주제는 동물의 가족, 특별한 엄마 아빠다. 황제펭귄, 여우, 오랑우탄, 흰동가리, 홍학, 붉은캥거루, 금화조, 늑대, 가시해마가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최근에 아쿠아리움에서 만나본 가시해마의 이야기 먼저 들어봐야지.

가시해마의 수컷은 알을 품을 수 있는 육아 주머니가 있다. 아빠는 엄마가 수정해준 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임신 기간은 대략 한 달 정도. 아빠가 새끼를 낳는데 무려 100-200마리(크기는 2.5센티미터 정도)나 된다. 수많은 새끼 해마를 육아 주머니에서 밖으로 밀어 보내기 때문에, 힘이 필요해서일까. 수컷이 알을 품고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암컷을 배려하는 본능인 것 같아서 아빠 해마가 멋져 보인다. 같은 어류인 흰동가리는 어떨까. 아빠는 엄마가 낳은 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알을 400-1500개 낳는데 아빠는 그중 불량한 알을 골라 먹는다고. 상한 알이 다른 알까지 오염시키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그래도... 한편 흰동가리는 태어날 때 모두 수컷이었다가 무리 안에 암컷이 없으면 가장 큰 수컷이 암컷으로 변한다고 한다. 따라서 암컷은 무리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늑대 엄마는 새끼가 태어나고 삼 주 동안 보금자리에서 함께 있고 그동안 아빠가 먹이를 구해 온다. 매년 4월 엄마는 새끼를 네 마리에서 여섯 마리 낳는데, 새끼는 아직 귀도 안 들리고 앞도 보지 못하지만 냄새를 맡을 줄 안다. 엄마 젖만 먹던 새끼는 한 달이 지날 무렵 엄마 입에서 반쯤 소화된 먹이를 핥을 수 있다. 태어난 지 두 달 후면 뒹굴며 놀 수 있다. 여우는 어떨까. 여우 엄마가 어린 여우들과 지낼 동안 아빠가 먹을거리를 구해 오는 것은 늑대와 동일하다. 다만 엄마는 출산 후 첫 주 동안 새끼 곁에 머문다. 한 달이 지나면 새끼는 굴 밖으로 나가서 놀 수 있다.

주머니에 아기를 넣고 다니는 캥거루는 모두 암컷이다. 임신 중에도 주머니에 아기를 넣을 수 있다고 하니, 둘째 임신 상태로 첫째를 아기띠로 안고 다니는 능력자랄까. 아무튼 새끼는 33일 후 엄마의 주머니를 알아서 찾아 들어가는데, 이때 눈도 보이지 않고 크기도 2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엄마의 젖을 찾아 먹는다. 엄마 주머니에서 생활하는 기간은 3개월, 새끼는 주머니를 화장실로도 쓴다. 주머니가 더러워지면 엄마가 냄새를 맡고 혀로 지저분한 찌꺼기나 배설물을 핥아낸다. 혀 말고 팔처럼 생긴 앞다리로 청소해줄 수는 없을까. 캥거루처럼 엄마 이야기로 가득한 포유류는 오랑우탄이다. 엄마는 8년간 젖을 먹이며 새끼를 돌본다. 엄마는 새기에게 먹어도 될 열매와 식물을 알려주고 나뭇가지 사용 방법이나 나무 위 둥지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캥거루 아빠, 오랑우탄 아빠는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금화조의 수컷만 노래할 수 있고 암컷은 노래를 못한단다. 부리 색깔 차이도 특이한데, 어린 금화조의 부리는 까만색, 다 자란 암컷의 부리는 주황색, 수컷의 부리는 붉은색이다. 수컷은 자신만의 노래가 있고 아들은 아빠처럼 똑같이 따라하다가 새로운 음을 추가한다. 자기가 만든 노래가 마음에 들면 평생 그 노래만 부른다고. 재미있다.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가며 알을 품고 밤이 되면 둘이 함께 둥지에 앉는다. 2주 후 알이 부화하면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며 새끼 곁을 지키고 먹이를 구해 온다. 금화조의 먹이는 씨앗 위주인데, 새끼를 튼튼하게 키우려고 곤충을 잡아와서 먹인다. 3주가 지나면 새끼는 둥지를 떠나지만 종종 둥지로 돌아오다가, 35일이 지난 후에는 독립해서 살아간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둥지를 지키는 것은 홍학도 마찬가지다. 한 달이 지나면 알 껍데기에서 빠직 소리가 들리고 알을 다 깨고 나오는 데 24시간에서 36시간이 걸린다. 회백색 빛깔의 새끼 홍학이 참 귀엽다. 엄마와 아빠 둘 다 새끼에게 젖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특색 있다. 또 다른 조류 황제펭귄 가족은 어떨까.

황제펭귄 엄마는 알을 낳기 위해 많은 힘을 썼기에 지방을 보충하러 바다로 돌아가고, 두 달간 아빠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는다. 이때 아빠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빠진단다. 온전히 알 품기에 집중되는 시간이 대단하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 새끼는 이틀간 부리로 알을 쪼고, 알을 깨고 나온 새끼에게 아빠가 온기와 먹이를 준다. 엄마는 뱃속 가득 먹이를 먹고 돌아와 매일 먹이를 조금씩 토해 내어 새끼에게 준다. 그 사이, 아빠는 먹이를 먹으러 4주 동안 바다로 떠난다. 이후에는 엄마 아빠가 돌아가면서 새끼를 돌본다. 알을 품는 것, 새끼가 알을 깨어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보면,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숭고한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주변에 쉽게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렇기에 자신을 아끼고 세월을 아끼며 힘껏 살아야 하는 것일 텐데...

엄마 아빠, 그리고 새끼에 대한 내용 위주로 리뷰했지만, 전작과 동일하게 책 속에는 각 동물의 크기, 서식지, 먹이, 속도, 천적, 특징 등이 나와 있으니 관련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동물들의 엄마 아빠 모두 최선을 다해 새끼를 돌본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었고 의문이 든 부분도 있었으며 우리 인생에 빗대어보기도 했다. 끝으로, 나도 아이에게 최고의 엄마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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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 - 1942년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2
완다 가그 지음,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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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할 무렵, 신간 그림책을 제외하면 무엇을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막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나 스테디셀러, 그리고 칼데콧 수상작을 기준 삼았다. 그 과정에서 동시대 작가가 아니기에 미처 몰랐던 작품, 정말 읽게 되어 고맙다고 느낄 만한 그림책을 만나기도 했다. 칼데콧 영예도서인 <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의 작가 완다 가그(1893-1946)는 20세기 초 미국 그림책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제목부터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궁금했다. 투명 강아지가 되는 마법을 부려서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제멋대로 상상도 해본다.

그림책의 분량이 꽤 많다고 느꼈는데, 자세히 보니 국문과 영문 합본이다. 페이지마다 섞여 있는 형태는 아니고, 먼저 국문으로 읽고 나서 영문으로 읽어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강아지는 아무개라고 불렸다. 엄마 잃은 강아지 삼 형제 중 하나다. 귀가 뾰족한 강아지, 귀가 곱슬곱슬한 강아지가 아무개의 형제들이다. 아무개는 형제들과 어울려 즐겁게 뛰어놀았고 행복했다. 형제들은 아무개에게 "우리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주었고, 아무개는 자신이 보이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아이와 사내아이가 형제들을 데려간 후, 아무개는 그 뒤를 따라갔다. 자기도 형제들처럼 보살핌을 받고 싶고 좋아하는 우유와 뼈다귀도 얻고 싶었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구멍 뚫린 고목나무 안으로 들어간 아무개는, 갈까마귀가 구해준 마법의 책으로 점차 보이기 시작하는데...

예상했던 내용의 반전이다. 마법으로 투명 강아지가 되는 게 아니라, 주문을 외워서 선명한 강아지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할 요소가 많은 그림책이다.

지붕이 뾰족한 강아지 집에는 귀가 뾰족한 강아지가 살았고,

지붕이 꼬불탕한 강아지 집에는 귀가 곱슬곱슬한 강아지가 살았지.

형태를 묘사한 이런 식의 대구와 반복이 재미있고, 낭독해주면 리듬감이 저절로 느껴진다. 투명 강아지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그림 힌트도 나온다. 지붕이 둥근 강아지 집, 흰 공처럼 묘사된 아무개를 보면 귀가 둥근 강아지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복되어 나오는 마법의 주문도 흥미를 더해준다. 9일간 해 뜰 때마다 계속해야 하는 주문과 동작, 그에 따라 점점 형태가 그려지는 강아지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귀가 둥근 점박이 강아지를 그리는 과정을 차례로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글맛과 그림멋이 살아 있는 그림책이라 할 만하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충실한 그림책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그림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 목적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책들도 있는 듯하다. 가령 어떤 책들은 아이들에게 특정 가치를 가르쳐주기 위한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 이야기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모양새다. 굳이 어떤 가치, 교훈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이야기와 그림 자체로 즐거운 그림책, <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에게는 딱 여기까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어진다. 존재감에 대해서...

존재감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사람, 자기 인생인데도 엑스트라로 사는 사람일까. 자신의 뜻과 의지와 상관없이 왕따,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람일까. 때로는 자발적으로 존재감 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꾸 숨고만 싶은 마음, 이 순간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듯이. 초등학교 때, 학교 교사의 부당한 꾸지람에 '아주 작은 사람으로 변해서 사람들에게 안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작게 만들어버린 일화다. 지금은? 빙글빙글 도는 마법의 주문으로,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선명하게 만들어내고 싶다. '이게 나다움이다.'라는 확실한 모습이, 그 누구보다 내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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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남산을 어떻게 찾아갈까? - 달문이의 지리 여행
조지욱 지음, 김미정 그림 / 담푸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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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구본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지구본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은 휴식이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를 위한 지구본을 사려다가 아직 어리니까 먼저 벽면에 붙이는 세계 지도를 구매했다. 다른 한 면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그림 지도다. 그런 그림을 세계 대륙별, 국내 지역별로 부각시켜 보여주는 지리 그림책이 나왔다. 그뿐 아니라 태양과 여덟 개의 행성도 보여준다. 어떻게? 달이 남산을 찾아가는 여행길로.

<달은 남산을 어떻게 찾아갈까?>는 재미있고 유익하게 잘 만든 어린이 인문서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적당한 분량의 정보가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의 글작가는 고등학교 지리 교사로 이미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지리책을 여러 권 썼다. 그림작가는 지리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림책은 동요로 시작한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아이가 요즘 자주 부르는 동요 '달'이 나와서 반가웠다. 둥근 보름달인 달문이가 캄캄한 우주에서 두리번거리던 중 지구에서 들려오는 이 노래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지구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런데 살짝 의문이 들기는 한다. 우주 한복판에서 들려온 노래가 어떻게 지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알았지?)

달문이는 뜨거운 태양, 줄무늬 목성, 고리가 예쁜 토성, 여름 하늘빛 천왕성, 깊은 바닷빛 해왕성, 작은 잿빛 수성, 낙엽빛 화성, 개나리빛 금성을 지나 초록빛 지구를 발견한다. 그 과정에서 크기와 모양, 색깔이 다양한 행성의 특징을 간략히 알 수 있다. 달문이가 지구를 찾은 순간 더 크게 들려오는 동요.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달문이의 목적지가 '남산'으로 구체화된다. 달문이는 똑똑해서 남산이 아시아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태평양을 지나 일곱 개의 대륙을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대륙 모양을 음식에 비유한 표현이 재미있다. 스테이크를 닮은 오스트레일리아, 만두를 닮은 남극, 아이스크림을 닮은 남아메리카, 프레첼을 닮은 북아메리카, 닭다리를 닮은 아프리카, 바나나 송이를 닮은 아시아. 드디어 아시아를 찾은 달문이에게 동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똑똑한 달문이는 남산이 대한민국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을 찾는다. 그러면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하나씩 찾아가보는데...

판다가 댓잎을 먹는 중국, 오랑우탄이 장난 치는 인도네시아, 낙타가 물 마시는 사우디아라비아, 코끼리가 나무에 등을 비비는 인도, 말이 달리는 몽골,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흔드는 일본, 야크가 풀 뜯는 네팔을 지나, 드디어 반달가슴곰이 겨울잠 드는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이쯤 되면, 달문이가 남산이 있는 서울을 찾게 되리라는 짐작도 가볍게 해볼 수 있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그리고 경기도로 오기 전에 북한의 양강도와 자강도, 평안도를 거친다. 저만치 남산 타워가 보이는 서울 야경, 동요처럼 달문이가 남산 위에 떠 있다.

광활한 우주에서 출발해 초록 행성 지구로, 아시아 대륙으로, 대한민국으로, 경기도로, 남산 타워로 오는 과정이 흥미롭다. 어린이 독자는 달문이와 함께, 간략한 정보 글을 읽고, 중심에 배치된 그림 지도, 지도 속 지명과 작은 그림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지리에 익숙해질 듯하다. 한마디로 지리 퍼즐 조각 맞추기 같은 그림책이랄까. 아이는 이 책에서 분할되어 설명된 대륙들이 하나로 연결되면 세계 지도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각 지역들이 연결되면 우리나라 지도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지구본에서 남산 찾기를 해보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달문이가 우주에서 남산까지 여행했다면, 아이는 남산에서 우주까지 여행을 해보고 싶어할 테지. 가고 싶은 곳, 알고 싶은 곳이 점점 많아지게 만드는 지리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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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스트레칭 -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30가지 방법
시모야마 하루히코 지음, 손민수 옮김 / 리스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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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책이 마음에 들어올 때는 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마음 스트레칭>이라는 제목과 내용 소개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문 까닭은, 최근 가족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나도, 가족도 각자의 문제로 바짝 긴장되어 있다가 서로 뾰족하게 상대방을 찌른 경우였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말랑하고 폭신했다면 어땠을까. 내심 상대방이 먼저 그래주기를 기대하지만, 결국 자신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 누구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는 결론만큼 쉬운 게 어디 있나. 설령 그런 일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안에서 튕겨낼 수는 없었나. 만약 내 안에 갈등의 씨앗이 오랜 시간 내재되어온 것이라면? 일단 내 마음을 풀어주는 게 급선무다.

이 책의 저자는 도쿄의 인지행동요법센터의 대표이자 임상심리학 연구자다. 이 책은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마음의 개선을 통해 치료하는 인지행동요법을 기반으로 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힌 사고와 행동 패턴을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시점과 방식, 행동 패턴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것을 '마음 스트레칭'이라 칭했다. 국내외 심리학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가운데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제목부터 행동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몸의 스트레칭이 매일 필요하듯이, 마음도 그렇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내용이 간략하고 명쾌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전과 다른 기분, 행동, 몸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저자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마음으로 이 책을 리뷰해본다.

평소에 회복 탄력성이 참 부족한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책에서 회복 탄력성이란 스트레스를 물리치는 게 아니라 때로는 그 스트레스가 나를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힘,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라 풀어주니, 뭔가 숨쉴 틈을 찾은 느낌이랄까. 주먹 꽉 쥐고 회복 탄력성을 기르자는 게 아닌 듯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저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힘, 회복 탄력성을 가지기 위한 행동을 몇 가지로 제안한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작은 목표를 세우고 매일 실천에 옮기기가 있다.

이 책에서는 마음의 메마름을 체크하는 항목 열 가지를 통해 마음의 수분도를 확인할 수 있다. 체크 결과 아직 마음의 건조 비상경보 수준은 아니었지만 메마름과 촉촉함이 혼재된 상태였다. 마음의 촉촉함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저자는 열심히 하지 않기, 적당히 하기를 제안한다. 마음을 건조하게 만드는 사람, 일, 그 외의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를 당장 바꿀 수 없으니, 천천히 하나씩 하라고. "회복은 장기전"이라는 말도 마음에 와닿는다. 이렇듯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쳤다면, 불안과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볼 수 있다. 자신의 분노 유형 발견하기, 분노 폭발을 피하는 일곱 가지 방법, 분노 기록장 작성법의 예 등이 상세히 나와 있다.

저자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에게 주목하기 위한 방법인 '마음챙김' 개념도 언급하는데, 옳고 그름이나 효용성의 평가를 하지 않고 오직 바라보고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지금 이곳의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요가 동작도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판단을 보류하면 한 걸음 내디기가 쉽다는 저자의 말에서, 잠시 생각이 머문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산다. 동시에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을까 불안해 하면서도 어떤 선택의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돌아보면,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을 가진 선택의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다. 저자는 괴롭거나 힘든 심리 상태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좋아, 일단 멈추자!', '그런 생각은 괄호 안에 넣어버리자!'라고 보류하면, 오히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판단의 여지를 만들어낸다는 맥락이다.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머리가 아닌 손으로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을 종이에 적어보기다.

자신 안에 문제의 원인이 없는 경우 생각을 바꿔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령 주변 영향 때문이라면 자신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책망하지 말라는 내용도 나온다. 마음의 문제는 사고방식뿐 아니라 환경이나 행동, 감정, 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기에, 주변의 문제, 감정을 우울하게 만드는 사건도 함께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의욕 상승 방법과 시트 작성법의 사례도 나와 있다. 완벽주의와 고정관념으로 어떤 일에 머뭇거리게 된다면 낮은 목표를 세워 실행해보자는 제안에 귀기울여볼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어떤 일로 스트레스 받을 때 부정적 생각, 우울한 마음, 불면 등 몸의 변화, 타인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는 식이라면 자신의 사고방식부터 마음, 몸, 행동을 돌아보고 개선하자고 말한다. 뭉친 마음을 풀고 유연해지도록!

편안하게,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굳게 만드는 것들을 바꾸어보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얼마전 가족과의 갈등으로 인해 침울해졌는데, 그럴수록 활기차게 움직이고 평소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돌아볼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몸 스트레칭이 마음을 이완해주고 마음 스트레칭이 몸을 가뿐하게 해주는 듯하다. 결론은 매일 몸과 마음을 살피자는 것! 특히 오늘도 마음이 뭉치지 않기를 소망해보고 실천해본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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