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 - 1942년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2
완다 가그 지음,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할 무렵, 신간 그림책을 제외하면 무엇을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막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나 스테디셀러, 그리고 칼데콧 수상작을 기준 삼았다. 그 과정에서 동시대 작가가 아니기에 미처 몰랐던 작품, 정말 읽게 되어 고맙다고 느낄 만한 그림책을 만나기도 했다. 칼데콧 영예도서인 <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의 작가 완다 가그(1893-1946)는 20세기 초 미국 그림책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제목부터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궁금했다. 투명 강아지가 되는 마법을 부려서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제멋대로 상상도 해본다.

그림책의 분량이 꽤 많다고 느꼈는데, 자세히 보니 국문과 영문 합본이다. 페이지마다 섞여 있는 형태는 아니고, 먼저 국문으로 읽고 나서 영문으로 읽어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강아지는 아무개라고 불렸다. 엄마 잃은 강아지 삼 형제 중 하나다. 귀가 뾰족한 강아지, 귀가 곱슬곱슬한 강아지가 아무개의 형제들이다. 아무개는 형제들과 어울려 즐겁게 뛰어놀았고 행복했다. 형제들은 아무개에게 "우리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주었고, 아무개는 자신이 보이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아이와 사내아이가 형제들을 데려간 후, 아무개는 그 뒤를 따라갔다. 자기도 형제들처럼 보살핌을 받고 싶고 좋아하는 우유와 뼈다귀도 얻고 싶었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구멍 뚫린 고목나무 안으로 들어간 아무개는, 갈까마귀가 구해준 마법의 책으로 점차 보이기 시작하는데...

예상했던 내용의 반전이다. 마법으로 투명 강아지가 되는 게 아니라, 주문을 외워서 선명한 강아지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할 요소가 많은 그림책이다.

지붕이 뾰족한 강아지 집에는 귀가 뾰족한 강아지가 살았고,

지붕이 꼬불탕한 강아지 집에는 귀가 곱슬곱슬한 강아지가 살았지.

형태를 묘사한 이런 식의 대구와 반복이 재미있고, 낭독해주면 리듬감이 저절로 느껴진다. 투명 강아지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는 그림 힌트도 나온다. 지붕이 둥근 강아지 집, 흰 공처럼 묘사된 아무개를 보면 귀가 둥근 강아지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반복되어 나오는 마법의 주문도 흥미를 더해준다. 9일간 해 뜰 때마다 계속해야 하는 주문과 동작, 그에 따라 점점 형태가 그려지는 강아지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귀가 둥근 점박이 강아지를 그리는 과정을 차례로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글맛과 그림멋이 살아 있는 그림책이라 할 만하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충실한 그림책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그림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 목적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책들도 있는 듯하다. 가령 어떤 책들은 아이들에게 특정 가치를 가르쳐주기 위한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 이야기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모양새다. 굳이 어떤 가치, 교훈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이야기와 그림 자체로 즐거운 그림책, <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에게는 딱 여기까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어진다. 존재감에 대해서...

존재감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사람, 자기 인생인데도 엑스트라로 사는 사람일까. 자신의 뜻과 의지와 상관없이 왕따,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람일까. 때로는 자발적으로 존재감 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꾸 숨고만 싶은 마음, 이 순간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듯이. 초등학교 때, 학교 교사의 부당한 꾸지람에 '아주 작은 사람으로 변해서 사람들에게 안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작게 만들어버린 일화다. 지금은? 빙글빙글 도는 마법의 주문으로,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선명하게 만들어내고 싶다. '이게 나다움이다.'라는 확실한 모습이, 그 누구보다 내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