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지 오웰(1903~1950)의 작품 <동물농장>을 읽은 이후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고 싶었다. 이제야 디스토피아를 그린 장편소설 <1984>를 만나게 됐다. 조지 오웰 연구로 영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역자의 해설도 소설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상기해보자. 1984년은 현재 우리에게는 과거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할 당시(1947~1948)에는 미래였다는 사실. 더구나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무렵에 폐결핵 증상이 나타났고 힘겹게 탈고한 후 1년 남짓이 지난 마흔여섯에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이 소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소설은 서른아홉 살의 윈스턴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그가 사는 빅토리 맨션 안,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는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가 따라다니도록 고안된 얼굴 포스터가 있다.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10쪽)
맨션 지붕에서 보이는 네 개의 건물은 정부기관 청사로, 뉴스와 오락, 교육, 고급예술을 주관하는 진실부,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사랑부, 경제를 책임지는 풍요부다. 집 안에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망이 있다. 그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윈스턴은 위험한 행위인 일기 쓰기를 하는데 핵심 구절은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는 것이다. 이는 오세아니아라는 나라의 지배 권력인 당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사상이다. 소설 속에는 많이 회자되던 문구인 당의 슬로건이 소개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49쪽)
빅 브라더의 잘못된 예견, 오판은 지워지고 현재 시점에서 과거가 변형된다. 윈스턴이 일하는 기록국은 진실부의 한 부서로, 그는 '영사'(영국 사회주의) 강령과 당의 요구를 예측해서 '타임스' 사설을 수정하는 일에 익숙하다. 권력자들에 의한 조작과 위조가 횡행하는 사회란 이미 전체주의를 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당에서는 오세아니아 공식 언어인 신어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통제 수단이라는 맥락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점점 기억은 퇴색되고 기록이 날조될 때" 인민들의 생활환경이 개선되었다는 당의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만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당의 방침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결혼조차 당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당은 성 본능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오직 당에게 봉사할 아이를 낳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윈스턴은 사랑 없이 의무감으로 아이 만들기에 집착한 아내와 헤어진 상태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계급에게 있다.(90쪽)
윈스턴은 자유가 통제된 사회를 부술 힘이 당 내부가 아닌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말을 일기장에 쓰고 자주 상기한다. 그가 일기를 쓰는 행위는 기억을 붙들고 진실을 기록하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과연 윈스턴은 사상경찰에게 발각되지 않고 무사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가지며 읽게 된다. 당의 슬로건에 배치되지만 본질적인 가치인 평화와 자유를 끝까지 붙들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겉으로는 당에 충실하지만 내면에 반감이 솟아나 일기를 기록해가는 윈스턴의 모습을 그린다. 2부는 윈스턴이 자신처럼 당에 반감을 가진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함께 정치적 혁명을 꿈꾸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특히 2부 안에는 책 속의 책이 들어 있는데 빅 브라더가 반역자, 공공의 적으로 삼은 골드 스타인이 지었다는 책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소설에서 자주 반복된 문구인 당 슬로건 "전쟁은 평화 / 자유는 예속 / 무지는 힘"이 가진 허상, 당의 속셈과 실체를 드러내준다.
윈스턴의 운명이 결정되는 3부에서는, 오브라이언과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다 읽고 나서도 의문이 남았다. 무엇보다 개인의 기억과 기록을 지배하고 일상뿐 아니라 사상, 마음속까지 감시하는 권력자로 상징되는 빅 브라더의 존재가 섬찟하게 다가왔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