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 위기
멜빈 코너 지음, 소의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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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에 있어서 즉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고 있는 책이다. 특히나, 국내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책을 분명하게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의사 사회학] 혹은 [민중의 의사학] 정도로서 번역을 하면 적당할 것이다. 드라마에서의 의사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의사의 길은 어떻게 가야하며 어떤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묻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의사]에 대한 선입관은 매우 불행한 이야기이지만 <돈>과 <명예>로 연결이 되면서 의사로서의 사명은 상당부문이 매몰되어 있는것이 작금의 풍경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의사들이 대부분이지만 모든 분야에 있어서 소수의 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고래로부터의 역사는 이 소수의 튀는 사람들이 영향을 주거나 혹은 사회를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 왔던 사례를 우리는 충분하게 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료보험제도가 매우 훌륭할 것 같지만 내실을 들여가 보면 매우 후진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에서 3천5백만명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예를 들면서, 존즈 홉킨스 대학 부속병원이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그 지역이 의료보험 시설은 고사하고 흑인에 대한 유아사망률이나 성인병 사망률은 세계 최고라는 통계를 보여 주면서 절규를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존스 홉킨스 대학에 최첨단 의학기기 한대를 들여 놓지 않고서 그 지역의 보건위생 예산으로 대체를 하면 수십명을 살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 아닌가. 그것이 딜레마 이다.

억울하면 돈 벌어라, 라는 논리는 아니다. 치료 공동체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세계활와 자본주의의 미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나 보다. 그런데 국내의 의사들은 미국에 유학을 가서 미국을 밝은 면만을 보고 그것을 국내에 접목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가 겁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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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 분석심리학의 탐구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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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라는 명제에서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이상형에 대해서 말을 한다. 남자는 이러저러한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말을 하고, 여자는 저러이런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남녀가 사랑을 하면서 자신의 이상에 맞지 않으면 서로간에 싸운다. 그리곤 애증의 관계로 발전이 되어서 결국에는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자에 대해서 혹은 여자가 남자에 대해서 바라는 이상형의 내용은 그래서 이기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이상형의 내용은 남자가 지니고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한다. 그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여성성의 발로라는 이야기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이상형의 성격은 아니무스라고 명명되어 지는데, 그것은 여자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남성성의 발로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칼 융은 그런식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말하면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양성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칼 융의 이론을 이부영 선생은 매우 현실적인 언어로 재구성하면서 우리의 문화에 적용을 시킨다. 이 이론은 주역에서 혹은 한의학에서 인간 내부에 음양이 있다는 논리와 상통하고 있는데 혹간에 칼 융이 [주역]에 대한 이론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닌지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남자답다와 여자답다에 대한 2분법적인 구분이 무색해 지는 칼 융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개념을 생각하면서 내 안의 여성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검토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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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文
김석진 감수, 동방문화진흥회 정리 / 동방문화진흥회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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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선사의 [대산주역강의]가 글자 그대로 강의 형식의 문체라면 이 책은 그 강의 내용을 읽은 후에 원문을 언제 어느때나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기에 편리하도록 포켓용의 크기로 제작이 되었다. 64괘에 대한 설명과 계사상전 계사하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에 대한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간이 나는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유행가 가사를 외우듯이 외우기에 편리하도록 원문에 대한 토와 간략한 해석을 달아 놓았다. [주역]을 보다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이것을 다 외워야 되는데 46배판의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중얼거리듯이 달달달 외우기 위해서 제작된 듯 하다.

[주역]의 뜻을 알기전에 원문을 외우는 방법도 하나의 방법인것 같다. 외우다보면 그 뜻과 깨달음이 오기 때문이다. 원문의 중얼거림속에서 하나하나의 깨달음이 문득문득 내리는 것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이 자그만 책자가 어울릴 것 같다.
작지만 그 속에는 크나큰 우주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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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 두레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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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의 명작 리스트에는 늘상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향수]와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향수]와 [희생]이라는 영화를 비디오를 통해서 보면 매우 지루하고 지겹고 왕짜증이 난다. 그것은 아마도 명작의 공통분모일 것이다. 왜, 명작은 지루하고 지겹고 캡짜증이 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그 작품을 만든 작가가 고민이 많아서 일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시대를 읽는 코드가 일반인의 코드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 밖에는 없다. 나는 [향수]와 [희생]의 짜증이 불러 일으킨 감정을 메우기 위해서 그의 [순교일기]를 보았다. 그의 일기에서 뽑아낸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우리들이 꼭 갖고자 했던 원했던 것은 집이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5월10일>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최대한의 분량으로 복사하여 영화배급사에 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5월10일>
<나는 완전히 빈털털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빚은 엄청나게 불었고. 어떻게 될 것인가? 나도 모르겠다:8월15일>
<예술가는 자신이 무언가 완벽한 것, 완전히 독립적인 것을 창조해 냈을 때마다, 진리를 제 것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12월5일>
이상이 인용된 구절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예술과 현실사이에 많은 빚을 놓고 있다. 그 빚 사이에서 그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진정한 예술을 꿈꾼다. 예술을 진정으로 꿈꾸기에 돈을 마련할 시간이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으레 예술에 빠지다 보면 돈이 없는 것인가. 그의 [순교일기]를 보면 늘상 영화제작비로 고민을 하는 구절이 너무 많이 눈에 들어 온다. 지금의 우리나라 영화감독들도 돈에 대한 멘트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 타령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나는 모르겠다. 암튼간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현실과 예술사이에서 토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가 혹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에 대한 예술영화를 제작하려고 하다가 늘상으로 제작비에 애를 먹고 있는 일기를 보여 주고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돈도 극복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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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법안록 - 선림고경총서 12
백련선서간행회 엮음 / 장경각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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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닦는 사람이여, 법다운 견해를 얻고자 생각한다면, 결코 사람을 미혹되게 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무언가 마주치는 것은 모두 끊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야 비로소 해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체 사물에 구애되는 일 없이 철저한 해탈자재의 경지를 얻는 것이다]

임제의 설법에는 인습화한 켸켸묵은 가치에 대한 투철한 비판을 전제하면서 신비적인 소망과 결합된 형식적인 좌선을 철저하게 물리치고 있다. 임제의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은 하북의 무인사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불교였다. 당시 하북의 진주를 지배하고 있던 세력은 절도사 왕씨의 일족였는데, 이 지역은 인접한 유주 및 위주와 함께 소위 하삭삼진의 하나로 당의 중앙정부가 가장 상대하기 벅찬 귀문의 일각이었다.

그래서 모든 전통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언제나 지금의 생활현실에 입각한 불법을 주장했던 임제에게는 이곳이 안성맞춤의 지역이었다. 여기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현재의 생활 그 자체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현재의 자기 위에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원만하게 두루 부여 되어 있는 평등한 능력을 스스로 작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제는 기존의 인습 즉 부처 조사 부모 친척까지 다 죽여야 된다는 할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임제는 말한다. 허공에 말뚝을 박는 일은 하지말라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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