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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즘 현대사상의 모험 28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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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르쥬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의 책 장정만 놓고 보면 매우 도색적인 책으로 간주를 하기 쉬운데 그것은 겉표지의 색이 레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겉표지만 한장 넘기고 나면 애초의 기대는 순식간에 부서져 버리고 만다. 그 부서진다는 의미속에는 책의 내용이 매우 어렵고 난해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일 것이다. 이 책은 제1부 금기와 위반, 제2부 에로티즘에 관한 몇가지 연구사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가 책의 주된 내용이다.

바타이유는 국내에 흔하게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그는 1897년에 태어나 중세연구가로서 훈련을 받았으며, 1920년 무렵에는 앙드레 브르똥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관여했다. 더불어 열렬한 니체주의자였으며, 1920년대에는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극도의 사드-메저키스트적인 포르노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상이 바타이유에 대한 이력인데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가인 푸코는 바타이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이력중에 극도의 사드-메저키스트적인 포르노 소설쓰기 이력은 [애로티즘]을 이해하는데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애로티즘]의 주제는 푸코가 지적한대로 <위반이라는 관념은 어느 날 초기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모순의 경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문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관념이 될 것이며, 적어도 사실상 우리 문화의 토양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라고 성찰을 하고 있다. 바타이유의 개념인 <위반>의 개념은 한계가 있는 행위이지만 성적행위에 대한 관습적인 억압을 맹렬하게 탄핵을 하고 있다.그래서 그는 본질이 박탈된 애로티시즘을 실현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 본질의 박탈은 제1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에서, 성에서 금기를 찾고, 그 금기와 위반의 매력을 매우 친화적인 것으로 환치시키는 작업을 행하고 있다. 그런 선상에서 그는 종교적 제사에서의 애로티시즘까지 밀고 나가는데 거기에서도 그의 논조는 [금기와 위반]의 논리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달린다.

글의 서두에서도 그는 <성적 절정은 살해에 있다>라는 그림설명을 하면서 성욕과 살해욕이 얼마나 관계가 깊은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애로티시즘]의 논조를 풀어간다. 성욕과 살해욕의 관계. 이 부분은 한동안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원초적 본능>의 테마이기도 했던 것인데 아마도 바타이유는 그것을 진작부터 알았던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다. 바타이유는 애로티시즘을 인간의 무의식 저 아래까지 파고 들면서 파헤치고 있는데 그가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는 인간이기에 <애로티시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물과 다르다는 점을 전하면서 도덕과 사회가 인간의 외적인 것을 구분짓는다면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내적조건을 구분짓는 잣대라는 것을 파헤치듯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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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 만화로 읽는 삶과 철학
리디아 앨릭스 필링햄 / 국제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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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저서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말과 사물] [성의 역사]를 중심으로 해서 순차적으로 미셸 푸코의 사상의 설명하고 있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서 설명되어 지는 푸코에 대한 설명은 그래서 쉽게 다가온다. 미셸 푸코의 글은 언제나 밀림같다는 느낌이 강해서 어디서 부터 이야기의 실마리가 시작되어서 끝이 나는 것인지를 알아내기에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 실마리를 잡아주고 역할을 해주고 있는 이 만화책은 그래서 푸코의 초보자에게 매우 적합하다. 글이 그림으로 번역되어서 나온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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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불교와 유식불교
일지 / 세계사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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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법의 준비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대승불교는 제보살, 제불, 정토사상으로 일반의 사람 또는 대중을 위해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상대적인 진리와 초월적인 진리를 구분하고 있는 대승불교가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논리나 원리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대승불교는 삶의 진실을 향해서 얼굴을 돌리고, 인고와 탐구의 정신을 갖춘 구도자들의 불교이기도 한 것이다.

그 구도자들은 대승불교의 진정한 얼굴을 알기 위해서 중관불교와 유식불교를 하나의 방편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심원한 인간응시의 사상을 정면에서 바라다 보면서 공과 마음의 해탈을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의 불교풍토에서는 매우 생소하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관불교와 유식불교가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공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있고, 마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공과 마음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이 이 중관불교와 유식불교를 알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변한다.

중관불교는 초기불교이래 예지라는 것을 강조해왔으며 인간존재의 이법을 반야의 실천과 공이라고 선언을 하고 있다. 유식불교는 마음의 심층세계와 해탈의 심리를 탐구하여 이 양자는 대승불교의 사상의 기본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암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자는 그래서 무수히 많고 영원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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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사상기행 1
김지하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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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1권은 스타일리스트인 소설가 이문구씨가 주로 글을 엮었다. 김지하선생의 사상기행에는 많은 인사들이 동행을 했다. 소설가 이문구, 황석영, 송기원, 김영현, 송기숙, 판소리꾼 임진택, 영화감독 장선우,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등이 이 기행에 동행을 했다. 이 기행은 서울의 운당여관을 기점으로 해서 떠난다. 처음의 기점에서 죽장을 들고 운당여관에 앉아 있는 김지하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계룡산으로 부터의 기행이 시작되는데 이 기행의 목적은 동학혁명의 현장을 찾아나서면서 민중이 왜 저항하지 않으면 안되었나에 대한 점을 포인트로 내세우면서 현장중심으로 떠나고 있다.

김지하는 왜, 동학혁명의 현장을 찾아나선 것인가. 그리고 그 시기가 1980년대초 였는데, 그의 사상의 흔적이 어떻게 변모되게 하였는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 곳곳에 대화체로서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를 거스르면서 독재에 항거하던 그의 사상은 감옥에서 생명사상을 이끌어 내면서 결국에는 동학으로 온 것인데, 그 사상에 대한 확인 작업으로서 그곳을 갔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사상이 완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서 그 기행을 택한것으로 보여진다.

암튼 그의 사상의 완성이야 어떻든간에 제 1 권이 보여주는 기행의 재미는 여러명의 실제적인 전문가들이 모여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확인하고, 저녁때는 밥상머리보다는 술상머리를 가까이하면서 끝모를 대화를 하는데, 그 장면장면은 읽는 이를 매우 즐겁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매우 부럽다는 느낌을 갖게도 해준다. 그런 낮밤의 대화속에서 동학에 대해서, 풍수에 대해서, 계룡산에 대해서, 지리산에 대해서, 우금치에 대해서, 김제평야에 대해서, 남원의 판소리와 귀명창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데 이문구씨가 엮어내는 풍경은 그의 매우 독특한 문체와 더불어서 장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 2 권은 김지하씨와 황지우씨의 대담으로 1990년대 후반의 한국사회에 대한 사상적인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거의 채워져 있다. 황지우씨는 처음의 대담에서 김지하씨에게 [법문]을 들으러 왔다는 표현을 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두 분의 대화는 고수들끼리의 대담이라는 것을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그렇게 느끼리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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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의 위기
멜빈 코너 지음, 소의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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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있어서 즉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고 있는 책이다. 특히나, 국내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책을 분명하게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의사 사회학] 혹은 [민중의 의사학] 정도로서 번역을 하면 적당할 것이다. 드라마에서의 의사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의사의 길은 어떻게 가야하며 어떤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묻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의사]에 대한 선입관은 매우 불행한 이야기이지만 <돈>과 <명예>로 연결이 되면서 의사로서의 사명은 상당부문이 매몰되어 있는것이 작금의 풍경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의사들이 대부분이지만 모든 분야에 있어서 소수의 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고래로부터의 역사는 이 소수의 튀는 사람들이 영향을 주거나 혹은 사회를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 왔던 사례를 우리는 충분하게 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료보험제도가 매우 훌륭할 것 같지만 내실을 들여가 보면 매우 후진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에서 3천5백만명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예를 들면서, 존즈 홉킨스 대학 부속병원이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그 지역이 의료보험 시설은 고사하고 흑인에 대한 유아사망률이나 성인병 사망률은 세계 최고라는 통계를 보여 주면서 절규를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존스 홉킨스 대학에 최첨단 의학기기 한대를 들여 놓지 않고서 그 지역의 보건위생 예산으로 대체를 하면 수십명을 살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 아닌가. 그것이 딜레마 이다.

억울하면 돈 벌어라, 라는 논리는 아니다. 치료 공동체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이 세계활와 자본주의의 미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나 보다. 그런데 국내의 의사들은 미국에 유학을 가서 미국을 밝은 면만을 보고 그것을 국내에 접목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가 겁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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