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만개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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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지만 소중한 것들은 왜 소중할까? 의미 있는 추억이 있어서? 혹은 앞으로 더 자라날 희망이 있어서? 그럼 먼저 맺은 인연이 없어서 추억도 의미도 없고, 성장한다기보다 증식하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 숨은 의미를 알아채고 가치 있게 바라봐주는 시선은 누구의 몫일까?

 

   미시세계(또는 무용해 보이는 물질들)를 들여다보고 살펴보는 이야기들이다. 대단하지 않은 존재들의 존재감을 알아차리는 일.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 그런 이야기들이다.

 

   책머리의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라는 문장. 각각 따로 였던 소설들을 하나로 엮은 마법과 같은 이 문장이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작고, 소소하고, 귀여운 것들이 알아채 달라 아우성쳤다.

 

   스스로가 무용하다 느낀 수많은 시간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우주 어디에나 예외는 있’어서, 나 또한 예외의 산물일지, 알고 보면 남들과 아주 비슷한 것인지. 지구의 인구로 보자면 나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니, 나도 미립자와 다름이 없는지. 누가 보아도 엄지를 세워줄 나만의 특기 하나 없는 사람이라 ‘해파리’만큼이나 무용하지는 않는지. 내가 당면한 하루하루를 살아 낼 이유라 느끼는 ‘책’이란 존재가, 누가 금지하지 않아도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지. 이야기 구석구석 나의 자리를 찾아보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과 홀로 살아가는 것, 그 어디 중간쯤의 삶을 원하는 나는, 외롭고 쓸쓸했을 작은 등장인물들에게 마음을 잔뜩 줘 버린 듯하다. 어떤 것의 쓸모는 누가 정의하는지. 스스로의 쓸모를 찾은 ‘네모’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도 내 쓸모와 내 자리를 찾아내고 싶어서이겠지.

 

   매사에 작은 것들부터 바라보는 건, 대단하고 엄청난 것들의 인기와 후광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소심함 때문이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혼자 쓰는 일기에서 발전해서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글을 쓰던 시절부터 남들이 보지 않는 작은 것들을 관찰하고, 남들이 그냥 지나치고 마는 나의 지금에 필요한 의미들을 찾아내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바라보긴 하되 의미를 찾는 마음을 잃어갔다. 똑같은 매일 속에서도 다름을 찾던 나였는데, 일상이 지루하다 못해 버거워졌다. 다정한 말과 자존감을 잃었다. 스스로가 무용하다는 생각의 깊이가 자꾸 깊어졌다. 결국 우울에서의 해방은 우울하지 않았던 날에 나를 가득 채웠으나 현재는 잃은 그 작은 것에 대한 다정함에 있었나보다. 먼저 작은 것들을 바라보고 쓸모를 찾고 다정함으로 대하고, ‘그대로 두어도 좋다.’고 말하는 작가님을 만나서 다행이다. 나는 나 그대로 가치 있다. 내 쓸모는 내가 정한다. 그 자존감이 결국 나를 일으키겠지. 슬픔도 우울도 사람에겐 필요한 감정이기에, 나의 지금의 시간들도 내가 단단해져가는, 감정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기이겠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다보니 중요하지만 사소해서 뒷전이 되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차근차근 되돌아보는 마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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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담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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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담. 해치는 이야기. 누가 누구를 어떻게 왜 해치는가.


    책은 경고로 시작된다. 책을 읽으며 해서는 안 될 행동들과, ‘다 읽은 뒤에는 소금물로 입을 헹굴 것.’으로 기록된 경고.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각색하여 쓴 소설은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서부터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음에 더 공포감이 커진다.


    소설 《흉담》은, 작가 ‘전건우’의 지인이었던 민속학 교수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의 딸과 함께 기이한 사건을 파헤쳐 나가며 경험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작가 전건우. 1인칭 서술이라 더욱더 일기 같이 느껴져서 실화의 공포감을 더한다. 한 사람이 ‘흉담’을 들었기에 저주를 받아 기이한 죽음을 맞이했고, 그 저주가 결국 작가에게도 찾아오는 이야기는 그 저주가 내 옆에 찾아올 것 같기에 그 오싹함을 극대화한다.


    무엇인가 쫓아오는 공포,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겨낼 수 없다는 공포, 결국 죽을 것이라는 공포. 그 모든 것이 《흉담》하나에 들어있다. 인간이 느끼는 본질적인 공포.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고 여기게되는 실화라는 이야기의 배경까지. 공포를 극대화 시키는 요소들이 짜임새 있다.


    여러 사람들이 실화라며 말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나에게 여전히 허구다. 그럼에도 오컬트라 묶어 이야기하는 여러 미신과 설화, 민담, 괴담 속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서, 무작정 ‘허무맹랑하니 이 이야기는 뜬금없고 개연성이 없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흉담》을 읽으며 알게된 것으로, 내가 느끼는 재미는, 개연성 있다 여기면서도 분명히 허구라 여기는 그 거리감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흉담》은 그 거리가 너무 좁아서 무서움이 더 크다. 책의 첫머리에 적힌 경고문을 혹시나 하며 행했을 만큼. 그런 면에서 ‘실재할 것 같고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며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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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불꽃이 있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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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전통의 아름다움을 꾹꾹 눌러 담은 신비로운 이야기로 시작되어, 단편이 넘어갈수록 시대적 배경이 현대에 가까워진다. 열두 개의 이야기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같은 결을 뽐내며 신비로움과 깊은 어둠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바람에 나부낀 빛이 내려앉은 눈부신 듯 잔잔한 여름 숲속같이, 화려한 묘사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삶에는 희극도 비극도 있기에, 모든 이야기가 즐겁지도 않고 예측한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만, 우리 옛 설화 속에 등장하는 신수와 요괴 그리고 신비로운 힘을 만날 수 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삶이 이어져 온 순간순간 속에, '만약 이러한 믿지 못할 비밀이 숨어있다면?'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들 같다. 열린 듯 닫힌 듯 오묘한 결말들이 마치 내가 그 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나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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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칼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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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의 행성 위, 피마저 하얀 외계인을 상대하게 된 제국의 포로 소녀. 어릴 때부터 모국에서 다뤄 온 붉은 칼집의 칼 한 자루만 주어져 전쟁터로 내몰린다. 소녀의 전쟁에는 남색치마의 여자와, 연녹색치마의 여자도 함께 한다. 이름이 처음부터 특정되지 않은 묘사가 현실감을 더한다. 그녀들의 싸움은 끝이 났을까? 그녀들은 살아남을까? 그녀들은 행복할까? 읽는 내내 같이 숨을 멈추며 전투의 순간순간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연과 실력 사이의 작은 승리 속에서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강제 징용되어 제국의 전쟁 가장 앞으로 내몰린 이들의 처절한 생존기인가 싶었다. 읽어나갈수록, 나로서 존재하고자하는 이들의 삶에 대한 투쟁으로 다가왔다.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행성은 모든 것이 하얗다. 시야도 하얀 안개 속에 좁다. 상대해야 하는 ‘괴물’은 ‘인간’처럼 생겼지만 또 다르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입술도, 피마저 모두 하얗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제국은 그녀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적을 상대하는 방법, 적의 약점, 심지어 전투의 최종 목표까지도. 그 불리한 전투 속에서 주인공은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으며 진실에 가까워진다.

 

     분명 선호하는 분야도, 즐겨 읽는 스토리도 아닌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전쟁의 이야기는 고통과 시련들을 읽는 마음이 너무 힘겨워서 자주 읽지 않는다. 《붉은 칼》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된다. 손에 땀을 쥐고 그녀를 응원하며 읽어나가는데 한참동안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그 불특정한 묘사가 더 애달프다.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지 않는다. 크라스나도 그럴 것 같다. 진중하다 포장하는 소극적인 나와는 전혀 다르게 늘 움직이고 내달리며 쟁취하는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하얀 행성처럼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인간의 기억과 의식, 삶에 대한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기반 된 것일까? 이 책은 스스로 해낸 직접적 경험에서 온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존재를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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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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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경성에 위치한 명성아파트.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촬영 초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화자는 12세의 식모 입분. 눈치 빠르고 영특하면서도 아직 세상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 순수한 시선으로 사건 이면에 숨겨진 것들을 알아나간다.


     12세 화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는 순수한 만큼 본질적이라 추리소설의 화자로서 색다르고도 매력적이었다. 순수한 시선이란 때로는 더 잔혹하게도 보이는 듯하다. 해맑은 느낌이면서도 인간의 추악함 또한 본연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있기에.


    역사적 아픔들을  담백하게 이야기 하는 화자의 말투는, 그 울분이 당연한 삶이었던 그 때 그 순간에 내가 정말 머무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이야기가 생생함에도 ‘영화’보다는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던 작중에 흐르는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분위기의 상당부분은 ‘명성아파트’라는 공간이 가진 힘이었다. 한 층에 4세대, 4층 건물, 중간에는 중정과 같은 빈 공간이 남아있는 ‘ㅁ’자의 명성아파트. 책을 읽는 동안 자주 표지를 찾았을 만큼 작품의 배경 공간이 주는 매력이 크고, 그 모습을 세련되게 담은 표지의 존재감이 상당했다.


     추리소설은 독자를 속이기 위한 추리적 배치 때문에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억지스러운 경우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관계가 자연스럽고 정말 있었던 사건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개연성 있으면서도 뒷이야기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온 에필로그가 이야기의 완성도를 더 높여주었다. 에필로그 만으로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그 비밀은 마치 ‘일독에서 놓치고 간 것은 없는지,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실래요?’ 하고 유혹하는 듯 했다. 등장인물 각각의 사정이 모두 함께 엮여 들어간 일련의 사건은 얼마나 신경 써서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구성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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