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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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의 행성 위, 피마저 하얀 외계인을 상대하게 된 제국의 포로 소녀. 어릴 때부터 모국에서 다뤄 온 붉은 칼집의 칼 한 자루만 주어져 전쟁터로 내몰린다. 소녀의 전쟁에는 남색치마의 여자와, 연녹색치마의 여자도 함께 한다. 이름이 처음부터 특정되지 않은 묘사가 현실감을 더한다. 그녀들의 싸움은 끝이 났을까? 그녀들은 살아남을까? 그녀들은 행복할까? 읽는 내내 같이 숨을 멈추며 전투의 순간순간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연과 실력 사이의 작은 승리 속에서 그녀들을 응원하게 된다.

 

     강제 징용되어 제국의 전쟁 가장 앞으로 내몰린 이들의 처절한 생존기인가 싶었다. 읽어나갈수록, 나로서 존재하고자하는 이들의 삶에 대한 투쟁으로 다가왔다.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행성은 모든 것이 하얗다. 시야도 하얀 안개 속에 좁다. 상대해야 하는 ‘괴물’은 ‘인간’처럼 생겼지만 또 다르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입술도, 피마저 모두 하얗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제국은 그녀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적을 상대하는 방법, 적의 약점, 심지어 전투의 최종 목표까지도. 그 불리한 전투 속에서 주인공은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으며 진실에 가까워진다.

 

     분명 선호하는 분야도, 즐겨 읽는 스토리도 아닌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전쟁의 이야기는 고통과 시련들을 읽는 마음이 너무 힘겨워서 자주 읽지 않는다. 《붉은 칼》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녀의 미래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된다. 손에 땀을 쥐고 그녀를 응원하며 읽어나가는데 한참동안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그 불특정한 묘사가 더 애달프다.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지 않는다. 크라스나도 그럴 것 같다. 진중하다 포장하는 소극적인 나와는 전혀 다르게 늘 움직이고 내달리며 쟁취하는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하얀 행성처럼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인간의 기억과 의식, 삶에 대한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기반 된 것일까? 이 책은 스스로 해낸 직접적 경험에서 온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존재를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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