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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섬 ㅣ 한국문학대표작선집 8
이문열 지음 / 문학사상사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이문열의 소설<익명의 섬>은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 줄거리나 구성이 그러하다. 빠른 전개와 독특한 인물들, 그리고 너무나 특이한 배경이 그러하다.
그 곳은 씨족 마을이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만 모여사는 ... 그곳에 나(교사)는 발령을 받고 내려가게 된다. 20대 중반의 첫 부임지가 나에게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준다. 특히 사람들이 모두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깨철이'라고 부르는 사내가 그러하다. 처음 그녀가 그 마을의 옹색한 정류소에 내렸을 때 그녀의 눈을 찌르던 깨철이의 눈빛은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는, 그리고 또한 그녀가 그를 보는 그런 눈빛과 달랐다. 그는 항상 멍한 얼굴에, 더러운 옷차림에, 너무나 여유로운 한 마디로 거지의 모습으로 그 마을에 나다닌다. 모두가 씨족인 마을에서, 그래서 모두 일가 친척인 마을에서 익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깨철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두가 밥을 먹여주고 - 특이 아낙네들이 - 모두가 잠을 재워준다.
'내'가 발견한 이상한 사건은 드디어 발생한다. 어느 날 그 마을의 젊은 남자 하나가 깨철이를 개패듯 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깨철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다른 남자들이 '이 병신이 무슨 짓을 했겠는가? 그래 봐야 자네만 손해지. 이 사람은 병신이아' 그러나 그 말은 웬지 그곳에 둘러서 있는 모든 남자들의 자기 암시처럼 들렸고, 더 뒤에 아무 말없이 서 있는 여자들은 오히려 때리는 사람을 향한 악의 가득찬 눈빛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며칠 뒤 개울가에서 여인네들이 하는 말은 '나'의 의심을 더해준다.
'**네 아들, 깨철이 닮지 않았는가? '
그녀는 어렴풋이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직접 그 사실을 전말을 온몸으로 확인하게된다. 애인이 오지 않아 허탈해하고, 온몸이 열에 달뜬 날, 깨철이는 그녀를 찾아온다. 처음에는 반항하던 그녀는 결국 받아들인다. 아니, 즐긴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읽고 나서 깨림칙한 것이 있다. 분명 깨철이는 너무나 서로를 잘 아는 시골 마을에서 유일한 익명의 섬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여인들에게는 자신의 성욕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익명의 섬이며, 동네의 남자들은 모두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지만 못난 깨철이보다 자신들이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깨철이를 병신이라고 암시하면서 동정하는 척한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오로지 여인들이 성욕을 풀기 위해서 정말 사람같지도 않은 것처럼 묘사되는, 그러나 성욕을 확실히 풀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깨철이에게 현혹되어야 하는지, 여자라는 것이 그럴만큼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만 해결되면 그 숨막히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또 왜 여자만 그러는지...
작가 이문열이 반페미니스트라고 오해를 받고 있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혹시 정말 - 그 자신은 인식하고 쓴 것이 아니겠지만- 그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건 아닌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