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의 정체 - 마침표 없는 정념의 군도를 여행하다
샬롯 카시라기.로베르 마조리 지음, 허보미 옮김 / 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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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체

마침표 없는 정념의 군도를 여행하다

샬롯 카시라기 로베르 마조리 지음

꽃 같은 그녀가 있었다. 부모책모임에서 만났다. 나는 책에서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몸따로 마음 따로인 분리되어 그 것을 결합시키는데 많은 힘이 들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친구였다.

글도 정성스럽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많았다. 그러나 자신의 틀에 안 맞으면 분노하고 좀처럼 용서하지 못했다. 나 역시 다혈질이라 폭발하고 뒤끝도 오래가지만 당사자와 해결하면 잘 지낸다. 무엇보다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만큼 오해를 풀면 불화가 더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타인이지만 가까운 내 가족은 달리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2년을 알고 지낸 꽃 같던 그녀의 뱀 같은 마음을 알았을 때 그리고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 아름답게 작품을 빚어내는 예술적인 모습 이면에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증오, 노여움, 혐오 그리고 섬세하다 못해 뒤틀린 날카로운 공격성인 또 다른 본심을 봤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기묘했다. 그리고 그녀를 높게 봤던 감정이 철저하게 배신당한 기분이라 마음이 시궁창 같았다. 평소에 배려를 강조한 사람의 오해에서 온 불관용, 도덕성과 정의로움을 강조했던 사람의 작은 부도덕성에 사람들이 더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돌 던지는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한 연극인이 착함을 매우 강조하며 자신의 신념으로 삼았지만 그녀는 학력을 위조하여 그녀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기도 했으며 뒷말이기는 하지만 학력이 낮은 사람들을 유달리 무시하기도 했다. 자신의 콤플렉스가 투사된 사례이지만 착함이란 참으로 모호하며 검증할 수 없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착하다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할까? 사실 나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깊다.

언니와 동생에 비해 두드러지게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나에게 한 칭찬이 착하다란 말이었다. 할 말이 없어 내게 한 그 말은 사실 엄마가 억지로 찾은 표현이었고 진실성도 부족해 보였나 보다. 어렸지만 그 말의 진위가 그 말만큼의 무게가 아니었기에 상처를 받았고 내겐 착하다는 무색만큼이나 개성이 없는 단어다. 또한 어른들은 자신이 대상을 조정하기 쉬울 때 착하다라고 한다. 그런 상황을 포착할 때는 착하다어리석고 순진한단어처럼 내게 들린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에게 거짓을 고하기도 하고요. 또 때로는 감정의 원인에 대해 타인을 타인을 속이기도 하고…… “맞아요. 우리는 분명 타인을 속이며 살아가요. 진실과 거짓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죠. 왜냐하면 감정이란 때로 우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고의적으로 타인을 속이거나 호도하기도 하니까요. 중략본문 438

정념이란 언제든 반전을 일으켜 불신은 신뢰, 욕망은 혐오, 고립과 회피는 융합과 열광의 에너지를 충분히 불러올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감정과 그 감정이 보이는 운동을 결부시키지 않고는, 다시 말해 그 감정이 일으키는 정념의 색깔을 이해하지 않고는 절대로 어떤 감정을긍정적이라거나 혹은 부정적이라고는 판단할 수 없는 셈이죠

 이 책엔 인간의 정서에 관한 정념을 철학자와 제자가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마음의 허를 찌르는 주옥 같은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정념인 사랑, 우정,형제애, 황홀,기쁨, 피로,슬픔,분노 심술, 증오와 같은 긍정적 부정적 감정과 관련 있는 정념에 대해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렇게 파고들지만 문장이 아름답고 표현이 다채로우며 경구처럼 깊은 울림이 전달되어 매력적이다.

문장이 격조가 높다. 며칠 전에 읽은 심리학자가 쓴 글보다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며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그렇다고 골치가 아프거나 읽기가 힘들지 않다. 책읽기를 싫어했던 젊은 날이라면 스쳐 지나갔을 책이지만 세포가 왕성하게 성장하는 시기가 아닌 쇠퇴하는 중년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만큼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은 내가 여전히 궁금해 하는 질문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철학은 개똥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용이나 처세술처럼 사람을 단기간에 유혹하는 책을 읽었다. 그 책만 읽으면 그 책처럼 한다면 사회에서 인정받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그런 책에 중독되지만 허기가 졌다. 그러다 소설, 철학, 사상서들을 접하면서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내가 편의상 가르는 것처럼 대상을 분류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끊임없이 내가 가르는 경계들을 넘나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리학자가 내린 분석과 처방보다도 이렇게 마침표 없는 정념의 여행은 사소한 오해가 갈등으로 증폭하여 관계를 단절했던 내가 타인에 대한 분노를 접고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해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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