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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5 - 광해군에서 인조까지 ㅣ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5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6년 2월
평점 :
조선시대 폭군 하면 떠오르는 왕은 광해군과 연산군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분조를 통해 나라를 구한 광해군이 어쩌다 이런 폭군으로 전락하게 되었을까요?
광해군 역시 적장자가 아니어서 세자로 책봉되고도 왕위에 오르는 것이 불확실했습니다.
심지어 선조 역시 세자를 변경하고자 했던 적도 있었지요.
정치 경험과 관연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덟 살 어린아이에게 왕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동일한 모습이 단종과 세조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나 역시 그 상황이라면 광해군과 같이 행동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역사를 통해 권력을 나누는 정치인이 과연 있기는 했을까요?
지존의 자리 외롭고도 고독한 자리로 항상 빼앗길까 두려움에 살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노리는 친형제, 친부모가 아닌 세력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었겠지요.
광해군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인조. 그는 쿠데타를 3년 넘게 준비를 해 옵니다.
하지만 광해군의 민감한 촉수에 걸리지 않으려 엉성하게 준비를 합니다.
반정 당일, 쿠데타가 누설되는 최악의 순간에 반군을 이끌 김류가 도착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멋지게 한 판 즐기자며 반군을 이끈 이괄.
하지만 정예군도 아닌 노인과 시장 잡배들의 무리를 이끌고 도성을 수비대와 일전을 벌일 수 없었겠지요?
다행인지 필연인지 훈련대장을 매수하여 무사히 왕실의 담을 넘습니다.
하룻밤 만에 정권이 바뀌고 광해군을 따르던 북인 세력이 척결됩니다.
대명을 어버이로 받드는 사대주의의 결정판으로 인조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이미 후금으로 기울어진 상황, 시대 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조선의 선비는 죽기를 각오합니다.
명나라 정벌에 앞서 배후 세력인 조선을 먼저 정벌해야 했던 후금은 정묘재란을 일으킵니다.
다행히 강화도로 피난했지만 이괄의 난 때 도성을 버린 인조의 두 번째 몽진입니다.
코앞에 불을 끈 인조 정권은 아직도 사대교린의 정치이념을 버리지 못해 두 번째 침략을 당합니다.
삼전도의 굴욕. 남한산성에서의 항쟁에도 불구하고 50만의 조선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명나라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기강을 마련하겠다던 인조 정권은 백성의 안위보다는 왕 자신의 안위에 목숨을 겁니다.
이런 나라가 과연 어떻게 망하지 않고 버텼을까요? 그것도 이후 무려 300년이나.
조선이란 나라가 이때 망해서 없어졌다 라면 우리는 중국의 한 부족으로 바뀌었겠지요?
그렇게 안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통탄해야 할지 과거를 잊지 않는 후손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