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 청빈과 이익 사이, 조선 선비들의 머니 스토리
곽재식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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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궁리한조선의선비들 #믹스커피

솔직히 말해서, 저는 '조선의 선비'라는 단어만 들어도 일단 고개부터 저어지는 사람 중 하나였어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제 머릿속의 그들은 민생보다는 자기들의 안위나 출세에만 눈이 멀어 있었거든요. 나와 정당이 다르면 무조건 깎아내리고 축출하는... 그런 피곤한 권력 다툼의 이미지 말이죠.

특히 그놈의 상복! 왕이 죽었는데 상복을 몇 년 입느냐를 두고 죽고 죽이는 예송논쟁 같은 걸 보고 있으면, "아, 조선이란 나라는 정말 망할 만해서 망했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곤 했습니다. 그런 제가 믹스커피 출판사에서 나온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는 책을 집어 든 건, 어쩌면 일종의 호기심이었을지도 몰라요. '아니, 이 사람들이 무슨 경제를 고민해?' 하는 반문이 먼저 들었으니까요.

이 책에서는 정도전, 하륜, 이지함, 유형원, 유수원, 박제가, 정약용까지 총 7명의 인물을 다루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순 인물, 바로 '토정 이지함'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도사인 줄 알았는데, 비즈니스 천재였다니?

우리가 '토정 이지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뭔가요? 아마 열에 아홉은 '토정비결'일 겁니다. 저 역시 그를 조선의 방랑자나 앞날을 내다보는 신비로운 도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이분의 삶을 들여다보니 이게 웬걸요? 현대의 '주식 시장' 개념을 이미 16세기에 실천하려 했던 어마어마한 경제 전략가였습니다.

사실 이지함의 인생이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에요. 1517년 양반가에서 태어나 서른 살까지는 평범한 삶을 살았죠. 그런데 1547년에 터진 '양재역 벽서 사건'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장인이 반역죄로 처형되면서 이지함도 모든 지위를 잃고 노비 신분으로 추락하게 된 거예요.


밑바닥에서 깨달은 '장사의 힘'

양반에서 노비로...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이었겠죠? 그는 막노동부터 온갖 잡일을 하며 조선의 가장 밑바닥 인생을 직접 겪어냈습니다. 그런데 아, 여기서 이지함의 진짜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그 고생 속에서 그는 깨달은 거죠.

"땅도 없고 뒷배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살 길은 오직 '장사'뿐이다."

출처 입력

그는 배를 이용해 물길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우리가 아는 그의 호 '토정(土亭)'도 사실 이 장사 수완과 연결되어 있어요. 마포 한강가에서 상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흙을 높게 쌓아 수십 미터 높이의 정자를 지었는데, 그게 바로 '흙더미 위의 정자'라는 뜻의 토정이거든요. 거기서 한강 물길을 보며 물류 흐름을 읽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더라고요.


16세기에 제안한 '주식회사' 모델

중년이 된 이지함은 이미 장사의 고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1574년 포천 현감으로 나랏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그가 조정에 올린 '이포천시상소'는 정말이지 충격적일 정도로 혁신적입니다.

포천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내놓은 대책은 '구걸'이나 '복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수산물 유통과 염전 개발이었죠. 서해안에서 소금과 수산물을 확보해 전국으로 유통하고, 이 사업의 권리를 포천시가 소유하는 방식을 제안한 겁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구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혜택을 구성원(포천 주민)이 나누는 현대적 의미의 '주식회사' 개념을 도입하려 했던 거예요. 심지어 포천이 잘살게 되면 이 권리를 다른 가난한 지역으로 넘기겠다는 '상생'의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었죠.


글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지함이 아니라 다른 선비들이 포천 현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백성들에게 검소함을 가르치고 유교 경전을 읽혀라" 같은 뻔한 소리나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고리타분한 성리학의 나라만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이토록 처절하게 '먹고사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고민했던 진짜 어른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의 모습도 사실 이런 '이지함' 같은 실천적 감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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