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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ㅣ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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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런 적 없어? 숙제처럼 떠맡은 일이 생각지 못한 선물이 되어 돌아오는 기분 말이야. 사실 오늘 소개할 책이 나한텐 딱 그랬거든.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엔 좀 망설여졌어. 리텍콘텐츠에서 나온 '문장의 기억' 시리즈를 몇 권 읽어봤는데, 버지니아 울프나 셰익스피어 같은 책들이 나한텐 조금 어렵고 난해했거든. "아, 이번에도 머리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야.
게다가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잖아. 일본 작가라는 점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미묘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책 표지가 너무 우울하더라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라니… 작가 본인도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다 서른아홉에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거 너무 염세적이고 무거운 거 아냐?" 싶어서 선뜻 손이 안 가더라고. 하지만 서평단에 당첨됐으니 책임감 하나로 책을 펼쳤지.
그런데 말이야, 읽다 보니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의 깊이에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2차 세계대전 전후의 그 혼란스러운 공기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좌절이나 패전 후의 고뇌 같은 것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특히 내 마음을 흔들었던 건 '직소(단독 직입)'라는 작품이었어.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가룟 유다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 유다 하면 보통 '배신자'의 대명사잖아? 근데 다자이 오사무는 유다의 속마음을 정말 기묘하고도 설득력 있게 풀어냈더라고. 예수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 삐뚤어진 사랑 때문에 느낀 배신감을 묘사하는데…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더라. 사실 청년 시절에 비슷한 내용의 연극이나 설교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 원형이 다자이 오사무였다는 걸 알고 정말 소름이 돋았어. 거의 100년 전 작가가 이토록 현대적이고 세밀한 심리 묘사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
'달려라 메로스'도 마찬가지였어.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그 뜨거운 이야기가 서양 동화인 줄로만 알았는데, 일본 작가의 손에서 나왔다니! 이쯤 되니 일본 작가라는 거부감이나 이전 시리즈의 안 좋은 기억은 눈 녹듯 사라지더라고. 나중에는 정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버렸어.
남성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인간의 내면을 건드릴 수 있는지, 읽는 내내 감탄했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문장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기분이었달까?
사는 게 문득 무료하게 느껴지거나, 누군가의 깊은 사랑과 이해가 간절한 날이 있다면 이 책을 꼭 한번 꺼내 봤으면 좋겠어.
우울할 것 같다는 내 편견을 깨고 찾아온 이 문장들이, 어쩌면 너에게도 예상치 못한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