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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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 출판사 #기묘한한국사 리뷰


 역사책을 읽다 보면 가끔 '정말?'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죠. 믹스커피 출판사의 『기묘한 한국사』는 그런 기묘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2장 ‘조선사를 관통하는 무덤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는데요. 특히,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400년 산송이야기는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왜 이 이야기에 이토록 관심이 갔냐고요? 사실 제 아들이 파주시 조리읍으로 군대 배치를 받았거든요. 은평구에서 국도를 타고 파주로 가다 보면 #심지원묘와신도비 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바로 옆에  #윤관장군묘 가 나란히 나옵니다. 길을 오가며 '두 가문이 참 사이가 좋은가 보다'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이게 웬걸! 이 두 가문이 무려 400년 동안이나 묫자리를 두고 지독한 싸움을 벌였다는 겁니다.


사라진 명장의 묘, 600년 만에 다시 찾다?


이야기는 고려 시대의 명장이자 재상이었던 윤관 장군의 묘가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개척의 위업을 달성한 인물의 묘가    후손들에게조차 잊혔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지만, 조선 초기까지 처가살이 풍습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상의 묘 관리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시간이 흘러 조선 영조 대, 파평 윤씨 가문은 조상인 윤관 장군의 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우리 문중을 대표하는 윤관 장군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건 가문의 수치다. 반드시 장군의 묘를 찾아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할 것이다!" 비장한 각오로 나선 윤씨 가문은 여러 역사 사료를 뒤지던 중 『동국여지승람』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냅니다. 


"윤관 장군의 묘는 경기도 파주 분수원 북쪽에 있다."


가문의 명을 받은 윤동규는 몇 년의 고생 끝에 마침내 윤관 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죠? 그 자리에는 이미 조선 시대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의 부친 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주변 사람들을 추궁하고 인근 땅을 파 본 결과, 깨진 윤관 장군 묘비 조각까지 발견되면서 두 가문의 400년 전쟁의 서막이 오릅니다.


왕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싸움, 핏줄의 비극

두 가문은 묫자리가 자신의 것이라며 서로 상소를 올렸고, 결국 영조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몹시 애매한 상황이었지만, 왕비를 여러 명 배출한 윤씨 집안은 내심 영조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길 기대했죠. 하지만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께서도 윤씨 집안의 핏줄이…"라며 은근히 핏줄을 내세웠던 윤희복에게 영조는 대로하여 곤장형을 내립니다. 결국 윤희복은 형 집행 도중 사망하는 비극까지 발생하고 말죠.


이 사건으로 두 집안의 원한과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산송 문제는 왕조의 몰락 후에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도 두 집안은 끊임없이 진정서를 제출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심지어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 집안의 묘비를 부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파묘를 시도하다 옥살이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윤관 장군의 묘 바로 위쪽으로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 심씨 집안의 묘가 위치해 있었다는 겁니다. 윤씨 집안에서 윤관 장군에게 절을 하다 보면 심씨 조상에게도 절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 거죠. 이에 윤씨 집안은 윤관 장군 묘역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10단에 이르는 담장을 쌓아 올렸고, 심씨 집안 조상의 묘는 완전히 가려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00년 악연의 종지부, 극적인 합의!


이 끔찍한 400년 싸움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은 것은 의외로 최근입니다. 2006년 4월, 두 집안은 마침내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심씨 집안이 자신들의 조상 묘 열아홉 기를 이장하기로 한 것이죠. 윤씨 집안은 심씨 집안 조상들의 새로운 묫자리를 위해 부지를 마련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400년 넘게 이어진 기나긴 산송은 드디어 마무리되었고, 이 놀라운 소식은 2007년 로이터통신에 보도되며 다시금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묫자리를 두고 400년 동안 싸웠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 왕 앞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도 이어진 이 집념은 정말이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기묘한 한국사』는 이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그냥 지나쳤던 한국사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달해 줍니다. 400년 산송 이야기처럼 인간의 욕망과 집념이 얽히고설킨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여러분은 이 기막힌 400년 산송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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